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비 Apr 06. 2022

1화. 땅과 하늘. 그리고 꼬맹이.

주변을 살피다.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윗동네, 아랫동네 해가며 아이들을 구분하고 집안에 숟가락, 젓가락 수를 셀 수 있을 만큼  서로

친근하게 지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면서 학교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내가 어렸을 땐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와 버스를 타고 학원차를 타고 등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딸 중 셋째로 자란 나는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새싹이었다.

물가에 내놓기 아직 어린아이를 초등학교 입학시킨 후 한동안 아빠는 자전거로 학교까지 항상 태워주고 데리러 오셨다.

자전거로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30분도 넘게 걸리는 길.  오르막 언덕도 많은데 참 힘드셨을 것 같다.

어느 날 동네에 사는 친구가 하원하고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고  친구 따라 버스를 타고 하원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나는 혼자서는 독립을 시작하게 됐다.



학교에서 집에까지 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회수권을 내고 버스를 타고 이 동네 저 동네를 지나 친구들이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앞으로 다닐 길을 

파악하기도 했다.

늘 동네에서만 지냈던 내가 스스로 버스를 타고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데 새로움을 만끽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벨을 누르고 정류장에서 내리면 둑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간다.

그 10분이 사실 나에게는 재미난 시간 들었다.



장마철이 되면 우리 동네는 흙냄새로 가득하고 집 앞 개울은 넘실넘실 바다 같았다.

비 오는 날의 초1 나의 모습은 작은 책가방을 매고 리듬을 타듯 걷는 귀여운 곰 같았다.

학교가 끝나고 부슬부슬 비가 오면 교문 앞에 우산을 가지고 기다리던 엄마들.

그 틈에 우리 엄마는 항상 없었다. 늘 바쁘신 부모님을 이해하는 정도는 어렸을 때부터 은연중 해왔던 것 같다.

나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쯤은 아무렇지 않게 맞고 버스를 타고 내려 또 걸었다.

걷다 보면 물에 젖어 흔들리는  풀들과 빗물 가득 개울이 넘치듯 해도 나는 굳이 둑길을 걸어갔다.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어린 나의 마음에도 비가 오면 감성이 항상 충만해 비에 제일 걸맞다고 생각하는

동요를 부르면서 즐겁게 비를 맞고 걸어갔던 추억이 있다.

집에 오면 항상 혼자였지만 깨끗이 물을 털고 따뜻한 안방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심심하면 집 앞으로 나와 하우스 근처 또랑의 물고기를 보면서 없던 친구가

생기는 것처럼 즐거워하던 어린 날의 나의 모습.



사실 나는 지금도 비가 오면 이런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때 내가 가졌던 따뜻했지만 한구석에 그늘이 져 있던 나.

오늘도 비가 내려 창밖을 보는데  지금의 안정적인 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조금은 불안하면서도 비를 한껏 즐겼던 감성적인 초1 어린아이가 차를 마시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나 그때나 비를 이벤트처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여전히 가득한 흙냄새. 여전히 생각나는 동요.

그때와 다른 건 넘실 거리는 개울과 또랑의 물고기가 없다는 것뿐.

지금도 그때처럼 비를 맞고도 툭툭 털어낼 수 있는 여유쯤은 상비약처럼 지니고 있다.



워낙 여유로운 시간들을 많이 보냈다.

거실 바닥에 누워 창밖만 바라봐도  하늘이 보였다. 뒹굴 뒹굴 하다 보면 심심해진다.

언니들이 만들어놓은 연을 가지고 바람이 제일 잘 드는 곳으로 향했다.

연의 실을  푸르며 뛰어가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 떠 있는 나의 연.

혼자서 늘 날리던 연이다 보니 내 손을 잘 탄다. 이때만큼은 연날리기 달인이고 고수다.

연을 날리면 날릴수록 성취감도 높고 내가 뭔가 된 것처럼 우쭐한 느낌도 든다.

아무도 날리지 않는 연을 심심할 때마다 날리던 난 하늘과 교감하고 하늘의 기운을 누구보다 많이

받는다.

나처럼 하늘을 많이 봐왔던 아이는 없었을 것이다.

하늘의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느끼고 있었다.

연을 아무리 높게 날려도 내가 원하는 곳까지 가진 않았다. 높이 올라가는 건 그만큼 힘든 것이다.

연을 정리하고 가려해도 한참을 되감기를 해야 한다. 실이 꼬이진 않는지 연이  전봇대에 걸리진 않는지

확인하면서 감아본다. 다음을 위해서 실타래가 꼬이지 않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건 연을 날리는 것만큼

중요한 과정이었다.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건 없다.

연의 삶 조차도 가치가 있다.

손이 타지 않는 아이에게 소중한 보물 같은 존재이고 공백을 함께해줄 수 있는 친구이다.

늘 지나치던 하늘의 소중함을 은연중 알려준다.

구름의 크기를 보며  바람의 세기를 확인하고  곧 뿌려질 비의 양을 예측하면서 하늘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 준다.

바쁜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하늘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보아왔다

혼자 있던 시간들. 공상을 좋아하고 혼자를 즐겼던 꼬맹이.

그때 느꼈던 어린날의 추억들. 

성인이 되고 보니 그동안 너무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하늘을 본지 오래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우리는 점이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 복작대면서 살아가는 게 버거울 수 있지만 그것도 잠시.

"지나간다.

새로움이 또다시 찾아온다.
그러니 기다리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시댁이 제주도 입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