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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09. 2022

취향저격 반반 국숫집

이른 아침부터 먼저 일어나 동화책 음원을 틀어놓는다.

아이들을 소리에 취해 자연스럽게 깰 수 있는 나만의 방법 중에 하나다.

제일 내용이 길고 일정한 소리보단 대화하는듯한 동화를 틀어놨다.

단연 과학 동화가 최고인데

가을 편에선 매미소리도 리얼하게 들려준다.

봄, 여름, 가을까지 갈 때도  아이들은 전혀 미동을 하지 않는다.

벌써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 미동을 안 한다는 건.

반역이다.

무의식 중 나를 향한 외침이다.

그럴 때면 아주 친절히 거실의 불빛이 더 환하게 느껴지도록 방문을 더 활짝 열고

매미소리가 단전에까지 울릴 수 있도록 볼륨을 높여 본다.

첫째 아이가 발을 꿈틀댄다.

희망이 보인다. 못 이기는 척 일어 나주는 센스쟁이.

"엄마 안아줘~"

기회다. 아이를 안아주면서 오늘 입을 옷들을 안겨주었다.

둘째 아이는 이불을 더 뒤집어쓴다.

이건 괴롭혀 달라는 이 아이만의 신호이다.

양손을 세우고 겨드랑이를 향해 돌진해본다.

한참을 간지럽히다 보면 " 또 해줘. 또 해줘. 또 해줘."

세상 즐거운 표정과 웃음으로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우리의 아침은 시작된다.


잘 구운 토스트를  접시에 하나씩  놔주면 딸기잼과 버터를 발라서 야무지게 입에 넣는다.

아이들이 토스트에 딸기잼과 버터를 발라 먹을 때마다 제주도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한다.

시댁이 제주도인데 어머님이 관리하시는 펜션에 조식으로 구운 토스트가 나온다.

토스트를 딸기잼과 버터에 발라서 먹는데 그 맛이 엄청 특별하게 느껴지는지 이 조합을 너무나 좋아한다.

제주도의 맑은 하늘과 상큼한 공기는 이 작은 토스트에 밀리고 말았다.

아이들은 언제나 제주도 하면 너나없이 얘기한다.

구운 토스트에 딸기잼과 버터를 바르면 제일 맛있는 곳.

그런 특별한 감성을 우린 아침마다 자주 느끼곤 한다.

구운 토스트의 그리움을 한껏 느끼고 나면 아이들은 부지런히 학교 갈 채비를 한다.


아이들을 보내고 난 후 빈집에 앉아 홀로 하루를 시작한다.

여기저기 내 손길을 기다리는 빨래들과 코를 간지럽게 하는 먼지들을 쓱~ 스캔하고 나면

'하기 싫다..'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내가 오늘도 이겨주겠어'

다짐을 하며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오늘은 내 눈에 겨울 내내 먹다 남은 귤들이 보인다.

'저거다.'

겨우내 먹다 남은 귤을 다 꺼내기 시작했다.

상한 것과 아직 먹을 수 있는 귤들을 구분했다.

겨울에 어머님이 보내주신 귤들은 언제나 너무 많았다. 나눠주고 먹고 나눠주고 먹고를 반복하지만

결국엔 또다시 원점인 귤들. 우리 집 신선 칸에는 귤나무가 있는 것 같다.

보내주신 정성을 잊어선 안된다. 고민 고민하다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 냈다.

껍질을 깨끗이 벗겨내 여름에 갈아먹을 수 있도록 분리해 얼려두거나 귤잼을 만들어서 식빵에 발라 먹는 방법!

제일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은 여름에 얼린 귤을 갈아서 아이들 간식으로 내놓는 것이다.

더운 여름에 못 먹는 비싼 귤을 갈아서 먹을 수 있으니 참으로 지혜로운 방안 아닌가!

밀린 일을 해결했다는 해방감으로 기분을 만끽하고 즐겁게 커피타임을 맞는다.


이제 하루 중 제일 바쁜 오후 시간이 돌아왔다.

아이들의 방과 후와 학원 스케줄로 챙겨야 할게 많다.

시간 텀이 짧기 때문에 그 시간을 최대한 이용해야 일찍 집에 들어올 수 있다.

오후 시간부터는 엄마의 기동력과 아이의 재빠른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서로 호흡이 맞아야 제시간에 움직 일 수 있다. 마치 10년 동안 호흡을 마친 동료처럼

주거니 받거니 참 열심히도 소통한다.

데려다주고 데려오고를 두어 번 반복하고 나면 딱 한 시간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그때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국숫집을 간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는 싶은데 혼자 먹는 밥은  일단 맛이 없다.

식당에서 밥을 먹기엔 한 시간 동안 못 먹을 것 같은 괜한 불안감이 들어

국숫집을 가게 되었다.

원래 족발집이었는데 국숫집으로 바뀐 걸 보고 잘됐다 싶었던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홀이 아주 넓었다.

메뉴판을 보니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계절메뉴로 콩국수와 열무 국수 등을 판매하고

꼬마김밥도 맛의 종류 별로 판매를 했다.

잔치국수를 먹기엔 뭔가 자극적인 게 필요하다..

비빔국수만 먹기엔 국물이 아쉽다..

이런 나의 필요욕구를 채워줄 반반 국수.

정말이지 취향 저격이다.

특수 제작된 쇠그릇에 가운데 딱 알맞게 봉합된 선이 보였다.

정말 집에 하나 들여놓고 싶은 반반 쇠그릇!

잘 이용하면 여러모로 참 쓸모가 많아 보인다.

그 쓸모에 숟가락을 얹은 국수.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는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칼과 방패 같은 느낌을 풍겼다.

멸치 국물로 우려낸 육수를 먼저 맛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

오늘 처음으로 느끼는 후련함이었다.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다.

한 젓가락 해야겠다. 유부와 함께 잔치 국수를 들려 올린 순간 스르르 미끄러지는 국수.

'반항하지마라. 그렇다고 봐줄 내가 아니야'

보이지 않는 사투 끝에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탱탱한 면발을 끊어가며 음미하는데 비빔 국수가 보인다.

'다음엔 너다.'

양념장을 뿌려 면발 하나하나에 양념이 베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

양념이 튈 수 있으니 조심히 들어 올리려는데 삶은 계란이 보인다.

문득 궁금해졌다.

'삶은 계란은 왜 늘 반개만 줄까. 누구 코에 붙이라고..'

짧은 순간에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건 주인장 마음이야.'

참 맘에 드는 결론이다. 지금 이 순간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시 마음을 잡고 비빔국수를 정복하러 간다.

한 젓가락 먹고 보니 내가 얼마나 오늘 하루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매콤한 양념을 따라 부산하고 긴장했던 마음을 떠나보내고 나니 또다시 시작할 힘이 솟았다.

그렇게 반반 국수를 비워내고 기분 좋게 일어섰다.


반반 국수의 착한 효과를 보았다.

한 번에 두 종류의 국수를 정복했다는 승리감이 오늘 하루 더 열심히 살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반 국숫집은 더 자주 방문할 가치가 있다!

이거야 말로 사람들이 얘기하는 소확행 아닐까 싶다.

하루가 힘들고 지침으로 시작할지라도 예상치 못하게 발견한 즐거움.

나는 오늘 그걸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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