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정말 좋았다.
2년을 내리 집에만 거의 있었더니 집안에서의 생활이 그다지 반갑지 않고 아이들이 티브이 앞에 있는 것만으로 정말이지 이젠 활동적인 생활을 했으면 좋겠는 마음이 크다. 봄의 기운과 햇살을 그냥 지나치기에 참 아깝다. 첫째 아이의 친구 엄마와 친구, 나와 아이들은 근처 대공원으로 놀러 가기로 했다.
학교 생활에 재미를 느끼는 아이가 친구와 사적인 만남을 갖는다는 건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대공원 놀러 가자는 말에 흔쾌히 함께 하자는 친구. 대공원에서 우린 즐거운 시간을 갖기로 했다. 큼지막한 돗자리를 챙기고 목이 마를 수 있으니 아이들을 위한 물을 챙기고 집에 쟁여 놨던 과자들을 챙기며 즐겁게 준비를 했다. 혹시 놀거리가 없을까 봐 배드민턴과 캐치볼, 야구 방망이와 공을 챙기며 즐겁게 나선다.
둘째 아이가 나를 도와주겠다며 배드민턴을 담은 가방을 직접 매주며 한몫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엄마. 신발 뭐 신어야 해?"
아이들이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보며 고민하듯 얘기한다.
항상 내게 물어보는 아이들의 질문에서 처음엔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를 자꾸 물어보니 독립성이 부족한가도 싶었지만. 아이들의 속뜻은 엄마와 작은 것 하나라도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란 걸 알았다. 물론 엄마가 자신들에게 도움 되는 방향으로 결정해주는 것도 있지만 나와 함께 공유하는 순 간조차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알았을 때 참 행복하단 생각이 들었다.
"발이 아플 수 있으니 운동화 신자~!" 툭 던져준 엄마의 결정에 "응!" 하며 운동화를 신고 재빨리 나가는 아이들. 외출이 이렇게 기쁜 일인 줄 알았으면 대공원 자주 갈걸. 사실은 아이들도 집안에서의 생활이 많이 지겨웠나 보다. 나는 미리 챙겨둔 짐들을 양손에 들고 아이들을 따라 나갔다.
기분 좋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누가 봐도 어디라도 가는구나 싶었을 거다.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고 뒷좌석 차에 타는 아이들이 너무나 예쁘다. " 오늘 대공원 가서 콜팝 사줄게~"라며 시동을 거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네~!!!!!!"
뒷좌석에 앉아 바로 친구에게 전화하는 첫째 아이는 우린 벌써 출발했다고 언제 올 거냐고 재촉한다. 친구는 엄마의 할 일이 마무리 지어지면 빨리 가겠다며 들떠 얘기하는데 핸드폰 밖으로 즐거운 목소리가 흥얼거리는 노래처럼 들린다. 3학년 친구들. 아주 즐겁구나.
갑자기 둘째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엄마. 난 왜 친구가 없는 거야. 왜 친구들이 멀리 사는 건지 너무 속상해" 누나에 대한 질투 어린 시선을 보이며 친구 없이 형과 누나들과 놀아야 하는 둘째는 늘 불만이다.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동생에게 묘한 눈길을 주는 누나. 남매의 묘한 경쟁을 보고 있노라면 참 재밌다.
빵 하나를 가지고도 내가 더 먹니 네가 더 먹니 경쟁하는 아이들을 보면 이러면서 우위를 다투는구나. 사회생활의 시초가 아닐까 싶다. 한 뱃속에 나와도 이렇게 경쟁하는데 남들과 함께 있으면 얼마나 피곤할까 싶기도 하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 푸릇한 꽃길을 지난다. 아직 지지 않은 들꽃들 사이로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는 아이들. 차 창문을 열어젖히고 유리에 가려져 있던 창 밖 세상을 지켜본다. 봄이 되면 꽃과 풀의 향이 섞여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봄만큼은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창문을 열어놓고 그 분위기를 느껴도 좋은 것 같다. 집 근처 공원이라 창밖 세상을 관찰할 시간은 딱 5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더 큰 즐거움을 즐길만한 충분한 시간이었다.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아이들과 공원을 향해 걸어갔다. 귀여운 둘째. 테니스와 캐치볼 주머니를 멋지게 어깨에 메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누나와 손을 잡고 싶지만 누나의 칼 같은 거절과 함께 실망함을 가득 담고 툴툴 거리며 얘기한다.
"엄마. 나는 누나한테 맨날 잘해주는데 누나는 맨날 나한테 못해주는 것 같아." 남매의 밀땅은 차에 내려서도 계속된다. 좁은 길을 걸어 지하 도로를 지나니 공원의 초입이 보인다. 어느새 자리를 잡았는지 벌써부터 사람들은 텐트와 돗자리를 가지고 와 여기저기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차지하고 쉬고 있다.
캠핑을 온 것 같은 분위기로 예쁜 텐트를 치고 휴대용 식탁과 의자들을 놓고 각자 자리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공원 초입에 아이들이 원하는 콜팝을 파는 곳이 있다. 우린 콜팝을 사 가서 자리를 잡기로 했다. 친구의 콜팝까지 3개를 주문해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족 단위로 놀러 오는 가족들. 산행을 하기 위해 오신 어르신들. 알콩 달콩 예쁜 연인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대공원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알콩 달콩 예쁜 연인들이 참 눈길이 갔다.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껏 예쁘게 꾸미고 온 커플. 둘만 있어도 될 작은 돗자리를 깔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공유하며 얘기하는 커플.
팔짱을 끼고 도보를 걸으며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있는 커플들. 정말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다. 핏이 나는 청바지와 하얀색 카라 남방에 검은색 로퍼만 신었는데 어쩜 저리도 시선이 집중되는지. 아이들이 어디 가서 놀고 있는지 시선을 놓치고 말았다. 어느새 콜팝이 나왔다고 얘기하는 점원에게서 콜팝을 받고 계산을 하며 아이들을 불렀다. 어디선가 금세 나타나는 아이들. 콜팝을 하나씩 들고 우리의 자리를 찾아서 또다시 걸어간다.
우린 소나무 밑 잔디밭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넓은 공간과 분수가 있어 적당한 자리로 보인다. 돗자리를 깔고 짐을 풀었다. 짐을 푸는 사이 첫째 아이의 친구가 저 멀리 엄마와 함께 걸어오고 있다. 기분 좋게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 콜팝을 사 왔다며 함께 먹자고 친구가 가져온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그냥 콜팝과 왕콜팝이 있는데 엄마는 그냥 콜팝을 가져온 것 같다며 다음에는 왕콜팝을 주문했으며 좋겠다고 소스를 묻힌 닭고기를 입에 물고 오물거린다. 소스가 왜 이것밖에 없는지 더 많이 소스가 있어야 콜팝은 제맛이 난다고 잔소리를 시작하는 아이. 닭고기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안쪽에 묻어 있지 않은 소스의 아쉬움을 얘기하며 말로는 불만을 터뜨리지만 먹는 걸 보면 제일 맛있게 먹는다. 콜라를 쭈욱 들이키는 아이들이 닭고기의 텁텁함을 내려보내고 배가 불렀는지 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본다. 더없이 맑고 청명한 날씨에 배도 부르고 친구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참 만족스러운가 보다.
야구를 하러 가자며 나를 졸라대는 둘째 아이에게 친구 엄마를 혼자 두고 자리를 일어서 머쓱해 좀 이따가 야구공 놀이를 하자며 얘기해 보지만 지금 놀고 싶다 해 못 이긴 듯 일어서서 빈 광장 한가운데로 갔다. 몇 주 전 야구장에서 신랑이 사준 장난감 야구 방망이와 공을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 처음에 공을 던져주면 한 번도 야구 방망이 맞질 않아 공만 주우러 다니다가 끝났는데 이젠 몇 번 해봤다고 공이 방망이에 제법 맞아 멀리 날려버린다. 방망이 맞는 공이 신기해 아이에게 엄청 칭찬해주면 어느새 야구선수가 된 것처럼 세상 멋진 폼을 하며 나의 공을 기다린다. 덕분에 나의 역할은 공을 줍고 던지고 줍고 던지고를 무한 반복하는 기계가 되었지만 아이가 즐거워하는 그 모습 하나를 보고 흔쾌히 함께해 주었다. 우린 야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첫째 아이와 친구는 캐치볼을 하며 깔깔 대며 웃는 걸 보니 이쪽도 정말 재미있나 보다. 3학년 친구들은 이제 많이 컸다고 공을 던지는 족족 참 잘도 받는다. 공을 던지는 내내 주우러 다니는 나의 신세가 참 힘들어질 즈음 둘째 아이가 엄마가 힘든 거 같다며 좀 쉬자고 한다. 다행이다 싶어 아이들과 다시 돗자리로 들어와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나무 밑 그늘에 앉아 있는 우리들. 오며 가며 즐겁게 놀고 있는 다른 가족들을 보며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족끼리 온 가족들을 보노라면 부모님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그 찰나를 느끼고 싶은지 내가 한 것처럼 공을 무한 반복 줍더라도 던져 주는 부모, 떠다니는 비눗방울이 없어질까 재빨리 다시 한번 비눗방울을 만들어내는 부모, 4인용 자전거를 아이 둘 태우고 공원 투어를 해주는 부모님들까지 가지 각색으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님들의 잔칫날이 된다. 이곳에 오면 모든 부모님들이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황금 같은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겠다는 의지가 있는 부모님이라면 더없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예쁘게 키울 것 같다. 야외에서 보는 이 모습들이 집안의 생활까지 이어가는 건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사실 아이들에게 행복함을 주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돗자리와 김밥만 싸가지고 공원만 놀러 와도 아이들은 그저 행복하다. 아빠와 엄마가 김밥 하나만 입에 넣어줘도 행복한 아이들인데..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엄마인 나도 접하는 소식이 긍정의 기운이어야 즐거운 마음으로 뭐든 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공원에서의 여러 부모들의 아이들을 아끼는 행동들이 내 마음의 힘이 되고 긍정적인 기운이 된다. 봄에 살랑살랑바람을 맞으며 뭐든 시작해도 좋을 느낌까지. 더욱더 아이들을 사랑해줘야겠다는 마음의 다짐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바깥나들이를 하게 된 건데 내가 덕을 보는 오늘이다. 사실 엄마로서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나의 판단과 방향이 아이들에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항상 고민하며 결정한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엄마는 많아. 그렇지만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없을 것 같아~" 하며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사랑해준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걸까 아이들이 나를 키우고 있는 걸까.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점점 자라고 성숙해지고 있다. 보이지 않던 나의 내면의 욕구와 모습까지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조금 더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른 노릇을 하는 아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아이들을 더욱 존중해주어야겠다. 그냥 나는 서른 살 많은 엄마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