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으로 이사온지 2년이 넘었다. 함께하는 사람 없이 2년을 지내다 보니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만남과 인연을 등한시한 죄로 외롭게 거의 혼자만 있었다. 역시나 사람은 함께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요즘이다. 외로움과 우울함의 감정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실어준다.
새로운 인연과 카페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다. 맛있는 빵을 고르고 음료를 챙겨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너도 나도 빵을 너무나 좋아한다. 크림치즈가 들어 있는 커피 빵과 피자빵은 너무 맛있다고 얘기하며 함께 시킨 음료들을 마신다. 난 청귤 음료를 시켰는데 청귤 음료를 시킨 이유에 대해 시시콜콜 얘기한다. 시댁이 제주도이다 보니 제주도의 귤 농가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 청귤 음료를 시켰다며 사소하지만 즐겁게 얘기를 나눈다. 별것 아닌 얘기에도 대화가 이어지며 서로를 공유하기 시작한다.
전업주부의 흔한 아이 엄마의 생활은 사실 다 비슷하다. 오전 시간에 아이를 원아에 맡기거나 학교를 보내고 3~4시간 동안이 전부인 나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참 여러 가지를 한다. 카페에 가서 나를 위한 커피를 마시고 필라테스나 요가를 하며 하루 시작을 개운하게 맞이하는 등 나만의 방법으로 즐기기 시작한다. 전업주부니 집안 살림만 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접은 지 오래다. 그러기엔 삶이 너무 길고 참을 수 없는 화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티브이 프로를 보는데 50대 여성의 친구가 하는 말을 듣고 슬프단 생각을 했다. 집에서 숨을 쉬고 살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남편에게 감사하다고. 전업주부로 오랜 세월 살면서 소위 말하는 방귀도 못 뀌는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전업주부로 살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지만 보통 육아로 인해서 집에 눌러앉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더욱더 안타깝단 생각을 해본다. 나도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들 육아로 인해 전업주부로 들어선 경우라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뿐인데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눈치를 보게 되고 내 주장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와 얘기하면서 그런 건 눈치 볼 일이 아니라며 나보다 더 살림을 안 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친구를 보며 자신감을 회복하곤 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간 다시 직장을 잡고 나가야만 내가 더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
나의 남편은 내가 전업주부로 살기 원한다. 전업주부로 살았으면 한다는 그 말은 사실 여러 가지 뜻이 내포되어있다. 아직 어린아이들의 빈자리를 항상 매워줬으면 하는 바람과 본인 직업의 특성상 바쁜 생활과 스트레스가 많으니 집안에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직장 생활을 유지하게 되면 나는 즐거울지 모르나 본인이 가져갈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되니 전업주부로 사는 삶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남편이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던 내가 전업주부로 살길 원하는 건 불행일까 다행일까 생각해본다.
요샌 재정의 부담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맞벌이를 원하는 남편들이 많다고 한다. 현실이 너무 팍팍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어린아이를 두고 일을 나가는 엄마의 마음도 안타깝고 육아와 살림을 반반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여자가 더 많이 감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억울함에 억울함을 더하게 되는 시기가 온다. 부부끼리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엔 할머니의 투입은 당연하게 되고 창살 없는 감옥을 견디는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자식으로서 힘든 일이다. 이런 모든 부담을 떠안고 일을 해야 하는 엄마들의 현실은 참으로 비참하다. 내게 일어난 현실은 아니지만 안 봐도 훤하다.
자신의 커리어와 욕구를 포기하고 전업주부로 나선 여성들.
그 여성들은 원해서 전업주부가 된 걸까 아니면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업주부가 된 것일까.
주위의 여러 엄마들을 보면 사실 각양각색이다.
더 이상 사회생활을 원하지 않는 엄마들도 많다. 이미 사회생활을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결혼해서까지 그 부담을 떠안고 싶지 않은 엄마들의 부류이다. 이런 경우는 남편의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본인 주장대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나선다.
또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이 어리고 엄마손에서 키우고 싶어 재정의 부담이 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동의하에 그만두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사실 엄마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사실 많이 안타깝다. 아이들이 어린 경우에는 워낙 육아에 바쁘니 일에 대한 간절함이 덜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재정에 대한 부담과 아이들이 친구를 찾아 떠난 후의 빈자리는 우울함으로 다 갈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로 나선 이유를 딱 하나로 정의할 순 없지만 참 각양각색의 이유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각각 개인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테고 그에 맞는 선택은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들어보면 남편이 다시 사회생활을 하길 원한다고 하는 엄마들이 꽤나 많지만 이미 그만둔 직장을 다시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려 사회생활은 꿈도 못 꾸는 엄마들이 많다.
이 많은 엄마들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남편이나 아이들만큼이나 많은데 꿈을 내려놓는 게 참 안타깝다. 모두들 결혼 전에는 너무나 예쁘고 자신만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여성이었을 텐데..
문득 이곳에서 이사 오기 전 마지막 직장생활의 아쉬움을 생각하게 된다. 육아를 하다 다시 찾은 직장생활은 나에게는 정말 행복함이었다. 그동안 입지 못했던 예쁜 옷을 꺼내 입고 예쁜 구두를 신으며 단정한 모습으로 직장에 가는 나의 모습. 그 이면에는 남편의 수고로움이 물론 많았지만. 그간 남편과 함께 살면서 그때처럼 공평하게 부부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전업주부로 살 때 무조건 육아가 내 몫이었고 위가 찢어지는 고통을 안고서도 혼자 감당해야만 했던 그 시간들. 육아로 미친 듯이 힘들어도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가능성을 묵인하고 무시하는 시선을 받아야만 했던 나날들. 잊을 수가 없다. 그 6년을.
육아 후 1년 좀 넘게 생활했던 나의 직장 생활은 나에게 힘듬보다 힐링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직장 거처를 옮기면서 무산되고 또다시 그만두게 되었다. 직장생활 그 1년은 나와 남편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자신감을 다시 회복하게 되어서 큰 장점이었고 남편이 육아의 고된 삶에 대해 알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내가 직장생활을 한 후 아이들을 둘이 봐야 한다는 고단함과 내 빈자리를 좀 느꼈는지 남편은 내가 직장생활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을 좀 더 굳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건 나이기를 포기하는 삶과 같다고 생각한다. 수시로 변하는 세상을 살면서 어떠한 것에도 대처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삶은 나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짧은 육아의 6년만 봐도 은근한 시댁과 남편의 무시를 느껴야만 했고 남편에게 매달려 사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마는 삶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간 내가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날이 오길 기대하며 나는 나의 일을 시작하고 또 시작하려고 한다. 지금은 나의 전업주부로의 삶이 남들과 다르지 않게 늘 이렇게 쳇바퀴 돌듯이 흘러간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상황에 맞춰 내가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가능성의 끈은 절대 놓고 있지 않다.
때론 자신감도 떨어지고 우울함이 몰려올 때도 있지만 극복하며 살라고 여러 가지 감정을 조물주가 보내준 것을 깨달으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