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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May 30. 2022

해 질 녘 바다와의 만남

바다 내음이 난다.

숙소를 도착하기도 전에 도착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바다의 특유한 습함과 바다 내음이 풍기기 시작한다.

즐거움과 동시에 도착하는 내내 좁은 공간에 매여 있던 우리들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출발부터 대천 앞바다에 갈 생각에 들뜬 아이들은 저세상 텐션으로 수다를 떨다 어느 순간 잠이 들어 버렸다. 남편이 운전을 하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는데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고층 건물도 줄기 시작하고 논과 밭들이 많기도 하다. 가는 곳마다 한가로움이 느껴지는  주변 풍경은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어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대천 앞바다는 우리 가족에게 추억이 있는 곳이다. 일전에 대천 앞바다의 매력에 푹 빠져 다시  찾게 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기분 좋게 짐을 풀고 조개구이를 먹으러 갔다.

조개구이 집 앞에  우리 집 와서 드시라며 손짓을 하는 호객꾼들. 우린 우리만의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천 앞바다에 조개구이집은 싱싱한 조개들로 가득이고 곁들여 나오는 반찬마저 우리들의 마음을 홀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조개를 굽는 내내 아이들은 조개를 먹기 시작했다. 불판 위에 조개는 우르르 끓더니 입을 쩍 벌린다. 작게 지글지글 끓고 있는 조 개 안의 바닷물.  끓인 바닷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오늘뿐이다. 커다란 키조개는 조금 더 많은 바닷물과 조개가 정신없이 익고 있다. 초장을 뿌리고 치즈를 얹어 놓으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키조개 요리가 완성된다.

놀러 온 날은 말이 없던 남편도 술술 말이란 걸 하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미래를 그려보며 나중에 가족끼리 라면 가게 내자고 기약 없는 얘기를 시작한다. 아빠라면, 엄마라면, 아이라면.. 우리들의 라면은 각자 색깔이 있고 역할이 있는 그런 라면을 만들고 재정 담당, 서빙 담당, 돈 세는 담당 등 여러 가지 역할을 서로에게 부여해 가며 깔깔거리면서 웃는다.

해가 질 무렵 우린 바닷가를 거닐어 보기로 했다. 바다를 보고 뛰어가는 아이들은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해가 지려던 찰나는 정말 장관이다. 바다가 해를 먹고 있는 건지 해가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건지 서로의 호흡에 즐기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로맨틱하게 자아낸다. 아빠와 함께 하는 바닷가 시간을 만끽하는 아이들을 보니 바닷가를 너무 늦게 왔구나 싶었다. 오며 가며 바닷물을 적시는 아이들이 아직 초여름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은 됐지만 뒷일은 의학적 힘을 빌리기로 했다.

한참 놀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페트병 쓰레기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편이 하나 줍더니 이런 건 다 중국배에서 나온 쓰레기라며 쓰레기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때부터 아들은 남편과 함께 쓰레기를 주우러 모래사장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나라를 생각하는 취지는 좋으나  꼬맹이가 쓰레기를 자꾸 주어서 가지고 다니는 게 엄마 입장에서는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산교육은 좋으나 바다의 기운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는 오늘이 되기만을 바랬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린다.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래들을 아주 기분 좋게 부르고 있었다.

계단에 앉아 무명가수의 노랫소리에 기분 좋게 즐기는 사람들. 바닷가를 앞에 두고 듣는 노래는 저절로 분위기에 취하게 된다. 무명가수를 업으로 삼는 사람을 보는데 참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업을 삼는 일은 좋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할까 싶었다. 역시나 나는 예술인이 아니기에 그들을 이해 못 하는 것 같았다. 아트를 하는 사람들은 뭔가 좀 다르긴 한가보다. 역사 속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부유한 환경 속의 천재들도 많지만 가난 속에서 괴짜의 삶을 살다가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하다 후세에 인정받으며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도 많다. 당시 그 시대에 살면서 힘들었던 순간을 이겨내 가며 생을 마쳤던 예술인들. 지금 저 사람도 좋아하는 노래를 하며 현실의 고단함은 넘겨 버리고 언젠간 밝혀질 나의 진가를 생각하며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대천에 도착해서 조개구이를 먹고 바다 모래사장만을 거닐었을 뿐인데 그동안의 불만들은 싹 사라진 기분이었다. 취객들이 많아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아니고 불량 청소년들이 있어 분위기를 흐리는 곳이 아닌 대천 앞바다는. 그저 오늘을 즐기고 오늘을 살며 오늘을 느끼러 오는 사람들의 모임 같았다. 그중에서도 중년의 부부 커플이 눈에 띄는 건 나의 미래를 그려 볼 수 있음이다. 중년의 부부 커플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바다를 즐기러 온 것 같았다. 더 이상 자녀들의 무거운 책임도 없고 현실적인 부담감도 줄어들 때 온전히 둘에만 집중할 수 있는 대천 앞바다의 풍경은 어떤 감정도 녹아 있지 않은 그냥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며 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바다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속 시끄러운 일이 많을 때 보는 바다의 모습과 행복한 일들이 가득할 때의 바다의 모습이 서로 다르듯이. 나의 바람은 바다가 온전히 바다이기를 느껴지는 그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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