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비 Jul 28. 2022

시댁과 친정의 다른 풍경

가져갈 게 없어서 그걸 가져가니?

시댁과 친정의 풍경은 많이 다르다.

결혼을 하고 시댁의 풍경을 바라봤던 느낌들은 전체적으로 여유롭다는 생각이었다. 제주도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어머님은 펜션 관리를 하며 지내신다. 혼자 생활하셔도 씩씩하게 살아 가시는 어머님을 보면 어쩐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머님은 홀로 생활하시면서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은 마음이 크시다. 타지에서 살고  있는 두 아들에게 부담될까 경제 활동도 계속 이어가고 교회 식구들과 소통도 자주 하면서 멋있는 곳도 놀러 다니 신다.  몇 주 전 시댁에 갔다가 어머님의 마스크 줄을 보며 역시 우리 어머님은 잘 즐길 줄 아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님 마스크 줄 이쁘네요~"

"어. 이거 다이소에서 삼천 원 주고 하나 샀어~"

노란색 체인 줄에 끄트머리가 예쁜 캐릭터 모양이 자리 잡고 있다. 비싼 것도 아니고 그냥 손녀도 써도 될만한 아기자기한 마스크 줄인데 그것만으로 멋을 낸 것 같았다. 그냥 기분 좋게 구매해서 기분 좋게 쓰면 그만인 것이다. 나를 위한. 우선 내가 먼저임을 어머님은 잘 알고 계신다. 세상의 주체는 내가 돼야 하고 그래야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계셨다.


며칠 전 예쁜 손주들 생각에 어머님은 과일을 몇 상자씩 보내주셨다. 자두, 복숭아, 멜론이 우리 집에 배달 온 날에 둘째가 얘기한다.

"엄마. 제주도 할머니는 돈이 많은 것 같아. "

어린아이의 눈에 어머님이 보내주신 과일들은 그저 크게만 보인다.

" 할머니가 돈이 많은 게 아니야. 할머니가 돈 벌어서 혼자 생활하시니까 풍족해 보이는 거야. 우린 아빠 월급으로 네 식구가 살아야 하니 빠듯할까 봐 할머니가 이것저것 사서 보내주시는 거야~"

어머님은 항상 우리 월급으론 사 먹기 꺼려지는 비싸고 좋은 음식들을 많이도 보내주신다. 덕분에 전복도 흙돼지도 각종 생선도.. 우리 식탁은 즐거울 때가 많다.

결혼 10년 동안 어머님을 관찰한 결과  돈에 지배되기보단 돈을 지배하는 느낌이 더 들고 맺고 끊음이 아주 정확하다. 결국 이런 부분이 질질 끌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는 비결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런 시댁의 풍경을 바라보다 친정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힐 때가 많다. 그 답답함을 해소할 길이 없으니 계속 화가 나는 것 같다.  평생 동네를 벗어나지 못한 부부가 새로운 신문물을 보고 적응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느낌이 든다랄까. 다시금 세상의 넓이와 깊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정말 중요하구나 싶다.

살아온 배경과 개인차가 가져오는 가치관은 내가 결정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가는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친정 부모님은 내가 주최인 사람들이 아니다. 돈을 지배하기보단 지배되는 느낌을 더 풍기는 사람들이다.  평생 외로움과 돈에 시달렸던 기억에서 벗어났으면 했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신다.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두 분이 먹고 살만큼 충분한 돈이 있어도 옛날보다 더 궁핌함을 느끼며 사신다. 지켜보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사실 답답하기만 하다. 한편으론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 때문에 이해도 간다. 이해를 하는 부분은 자식이니까 가능한 얘기인 것 같다.

돈이 있어도 값어치 있게 쓸 줄 모르고  나를 위해 예쁜 걸 사본적이 없는 부모님이 사실 안타깝고 안쓰러울 때가 많다. 뭐든 그냥 흘려보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할 줄 모르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사실 잘 모르기 때문에 한 발 내딛기가 힘든 거다.


어느 날 친정에 간 날. 본인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죄책감에 빠진 엄마를 보며 딸의 입장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걸 잘 알고 있기에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길 반복하던 그때였다. 내 눈에 쇠그릇이 눈에 보였다. 한참 옛날 빙수를 예쁜 쇠그릇에 담아주는 사진들을 보고 올드하지만 느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정 엄마는 40년이 넘은 쇠그릇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다. 사기그릇처럼 쉽게 깨지는 것도 아니고 다루기도 편해서 시골 아줌마가 쓰기엔 적당했다. 새롭고 예쁜 그릇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엄마는 그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한다. 결국 쇠그릇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다른 그릇에 비해 주둥이가 길고 넓이가 넉넉해 보이는 쇠그릇이 내 눈에 가치가 있어 보였다. 물론 옛날 쇠그릇이라 볼품도 없고 닳아 있는 느낌마저 드는 건 사실이었다. 그날에 쇠그릇에 담긴 팥빙수가 내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엄마. 나 이 쇠그릇 가져가도  돼?"

물끄러미 쳐다보는 엄마는.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가 올라가며 말하신다.

"가져갈 게 없어서 그걸 가져가니?"

나는 이 쇠그릇을 유용하게 써보고 싶었다. 쇠그릇에 옛날 팥빙수라고 예쁜 게 담아 판매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내 맘에 쇠그릇에 담긴 팥빙수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간식으로 쇠그릇에 옛날 팥빙수를 만들어 줘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낡은 쇠그릇이라도 무언가 줄 수 있다는 꺼리가 있다는 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의 마음속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작은 것에서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 기분 좋은 일이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모르는 엄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오래된 쇠그릇이라도 기분 좋게 받아가는 것뿐이었다.


무엇 때문일까.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하고 나보다는 타인의 기준을 맞추게 된 엄마의 삶 속에서 궁금증을 풀어본다. 내가 내린 결론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아도 외롭고 서글프다는 말이 친정 부모님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나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 움직이다 보면 외로움은 커져만 간다. 돈이나 자식들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일까? 도움은 되겠지만 방법은 아닐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서면서 즐거움을 찾아 시선을 돌려야 하는 것 같다. 남보단 내가 내 인생의 주최자가 될 수 있게. 좀 더 이기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제주에 혼자 지내시는 어머님도 외로움을 늘 안고 살지만 외로움에 늘 잡아먹힐 만큼 자신을 방치하진 않으신다. 사회생활도 하면서 권사님들과 멋있는 곳에 놀러도 가시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가신다. 홈쇼핑에 맘에 드는 제품이 나올 땐 당신을 위해 구매도 하고 "나"를 생각할 줄 아신다.

때때로 제주도에 혼자 있다는 설움에 어깨가 축 처지곤 해도 금세 회복하려 노력하고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아신다. 내가 관찰했을 때 어머님의 "아신다"라는 의미는 처음부터 당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기대감과 실망감을 겪으면서 터득한 연륜의 노하우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친정엄마와 다르게 시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답답해 오지 않는다. 자식 된 입장에선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어떠한 방식이든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을 때 즐거운 삶을 좀 더 누릴 수 있다. 엄마의 오래된 쇠그릇을 보며 갖고 싶다고 말했던 그때도. 어머님의 노랗고 귀여운 마스크 줄을 볼 때도.. 방식이 다를 뿐이지 내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은 비슷하다. 40년이 넘은 쇠그릇을 버리지 않고 지금껏 가지고 쓰고 있다는 뿌듯함이 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다이소에서 삼천 원하는 노랗고 귀여운 마스크 줄을 하나 사서 내 목에 걸었을 때 블링해 보이는 나의 모습이 만족스러우면 그게 소확행인 거다.


결국 "내가" 주최자가 돼서 결정하고 만족할 때 나의 외로움과 서글픔은 극복되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모두가 알아야만 하는 사실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