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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l 30. 2022

내가 식집사가 될 줄이야.

큰맘 먹고 꽃집에서 맘에 드는 꽃을 사 왔다. 정말 잘 키워보고 싶어서 꽃집 주인이 얘기한 데로 물도 정기적으로 주고 햇볕도 쬐어주고 정성을 다했다.

아무리 열심히 키우려 해 봐도 식물들은 내 손안에 들어오면 금방 죽어버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식물들도 지금까지 살아 있는 식물이 없었다. 몇십 년 동안 단 하나의 식물도 건지지 못했다는 게 다소 충격이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늘 내게 오면 한 달도 안 되는 죽어버렸던 식물들을 보며 난 생각했다. 난 식물을 키우는 재주가 없으니 절대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그러던 어느 날.

식물에 쌀뜨물을 주면 잘 자란다는 정보를 듣고 한번 실천해 보기로 했다.

그땐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니 지나가다 보이는 꽃도 너무 이쁘고 식물을 다시 키워보고 싶단 욕구가 막 올라올 때였다. 어차피 내게 오면 죽을 텐데 키울 필요가 있을까 싶어 고민도 많이 했지만 쌀뜨물을 믿어보자 싶어 큰맘 먹고 시도를 해보았다.


쌀뜨물을 시도했던 1호는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긴 머리카락처럼 긴 줄기가 매력적인 식물이다. 바구니에 작은 잎이 주렁주렁 아래로 퍼뜨려지는 식물인데 걸어놓으면 정말 예쁘다. 거실 벽에 걸어두고  죽지 말고 잘 자라라 하며 아침마다 주문을 외웠던 것 같다.


쌀뜨물을 받아서 1호 식물에 충분히 주고 물 빠짐도 확인했다. 음지 식물이라고 하지만 햇볕도 쐬어 주었다. 물을 너무 자주 주면 썩는다는 말에 일주일 간격으로 쌀뜨물을 주었다. 신생아를 보듯 정말 소중하게 다루어 주었다.

3주쯤 됐을까. 이쯤이면 그동안의 식물들은 죽기 직전의 모습을 보여왔다.

뭔가 힘이 없고 조금씩 생명의 기운이 꺼져가는 느낌적인 느낌......


나는 나의 1호 식물이 잘 자라고 있나 해서 살짝 들춰 보기로 했다.

잎을 살짝 건드려 보는데 마디만 한 잎 줄기가 말라서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공을 들였던 나의 1호 식물의 줄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지다니.. 그 실망감과 자책감이 너무나 컸고 역시 난 안되나 보다라며 포기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더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 조금 말라버린 부분만 제거하고 그대로 두고 쌀뜨물을 주면서 늘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인고의 과정을 겪은 나의 1호 식물이 5달째 살아 있다!!!!! 줄기가 여전히 한 두 개씩 떨어지긴 하지만 분명 살아 있다. 내가 5달째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여전히 우리 집 벽면을 빛내고 주고 있는 나의 1호 식물.


그동안 무수히 키워보려 노력했던 식물들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의 원인은 영양이 없었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그냥 물만 주면서 잘 자라고 빌기만 했으니 건강하게 자랄 수 없었던 것이다. 꽃집 주인은 항상 물을 며칠에 한 번씩 주라고만 얘기한다. 분갈이도 해줘야 한다고 얘기는 하지만 늘 정확하게 얘기해 주지 않는다. 얘기한 대로 화분에 옮기고 물도 열심히 주며 물 빠짐 확인은 필수에 햇볕도 쬐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지만 늘 한 달 안에 죽는 식물들.... 이제 알았다. 물만 주면 안 된다는 것을. 영양은 처음부터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늘 식물들이 한 달 안에 죽었기 때문에 미쳐 영양에 대한 생각까지 갈 수 없었던 나도 참 원망스러웠다.

또한 꽃집 주인들은 왜 하나같이 며칠 간격으로 물만 주라하고 분갈이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안 해줄까......

그간 방문했던 꽃집 주인들이 참으로 원망스럽고 상술에 내가 넘어가기만 한 것 같아 괘씸해진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죽음으로 내몰지 않은 1호 식물을 계기로 나의 식집사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실습으로 가져온 식물들을 정성스레 키우고 시작했다. 그간 키워보고 싶었던 품위 있고 잎이 흐드러진 꽃들을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1호 식물을 키워냈다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화원에서 식물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정말 특허를 내도 좋은 쌀뜨물의 위력을 또 한 번 보고 있다. 정말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의 식물들이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언니와 통화를 하면서 나의 반려 식물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난 이제 식물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고 잘 키우는 사람이라고 아주 뿌듯하게 말하면서 쌀뜨물의 위력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런 나의 얘기를 듣고 언니도 키우고 있던 식물에 쌀뜨물을 주기 시작했다. 정말 잎이 살아나더란다. 근처 꽃집 사장님께 쌀뜨물의 썰을 풀어놓았더니 동생이 식물 키울 줄 안다며 그냥 물보다 쌀뜨물이 훨씬 낫다고 칭찬을 하셨다고 한다.


나의 어깨는 그새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뿜 뿜~~

과학자들이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를 몇십 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험하고 해결하며 풀어서 정답을 도출해 내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나에겐 과학자들의 문제 해결의 끝을 보는 것만큼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식물을 키워 낸다는 것만으로도 요즘 나의 식집사 생활은 즐겁다.


오늘도 나의 지극정성에 힘입어 일광욕을 하고 있는 나의 반려 식물들.

요새 나의 머릿속엔 타샤의 정원이 떠오른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서 키우고 싶었던 모든 식물과 꽃을 심어

하나의 정원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 노부부가 집 앞마당을 숲처럼 꾸며 놓은 동영상을 보며 나는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예쁜 정원을 만들자. '


식물을 죽이지 않고 키워낸지 5개월뿐이 되지 않았는데 스스로 식집사라고 칭하는 내가 살짝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 허들을 넘어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나의 식집사의 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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