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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l 22. 2024

아빠라는 존재는.

모임이 있었다. 가족들끼리 함께하는 모임에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성인 남성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고 큰 키에 덩치도 있는 남자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데 아빠와 아들도 더위를 식히려 수영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아들이 뭔가 특별해 보였다. 성인 어른답지 않고 아빠의 이끌림에 따라 행동하며 스스로 뭔가를 해내는 게 부족해 보였다. 성인의 모습에 어린아이의 부족함을 보였다.


사연이 있는 장애가 있는 아들이었다. 아빠의 아들에게 단호하지만 다정한 아빠였다. 장애가 있는 아들이 혹여라도 크게 발작이라도 할까 조율을 하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에너지 조절도 해가며 페이스를 조절해 나가고 있다. 특별한 아들을 돌보는 아빠는 어쩔 수 없는 독단으로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데 그 독단이 내 눈에는 전문가처럼 보였다. 혹여나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아빠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을 단호하게 알려준다. 장애가 있는 아들은 아빠의 말을 믿으며 네네. 얘기한다.


식사 시간에 모두가 삼겹살을 구우며 즐기고 있었다. 장애가 있는 아들도 한 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그 아들이 먹는 양을 조절하지 못해 구토를 하게 되었다. 아빠가 옆에 있지 못한 사이 아들이 통제가 안됬던 것이다. 밥 먹는 도중 구토를 하는 아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었고 어떤 도움을 줘야 하나 안절부절못하는 이도 있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며 그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아빠는 머쓱해하며 아들 곁에 오더니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아들을 황급히 씻기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는 주위에 있던 후배들이 정리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마무를 짓게 되었다


 그날 나는 아빠와 아들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장애를 가진 부모의 마음.

아빠는 아들을 컨트롤하기 위해 매 순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들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게 많이 없기에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빠는 장애를 가진 아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알고 인상을 찌푸릴만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안다. 그런 아들을 외면하지 않고 인격체로 대하는 아빠의 모습. 아빠가 아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아빠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삶이 너무 버겁고 힘들 것 같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나의 아이는 장애를 가진 아이인 걸까. 벗어나고 싶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들이 매 순간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을 텐데.. 성인이 되어 훌쩍 커버린 아들이 아직도 두 살짜리 아이라면 끝도 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지 않을까 싶다. 

아빠는 아들을 감당해야 하는 엄마도 챙겨야 한다.

아빠가 아들을 모임에 데려온 이유에는 아내를 위함도 있을 것이다. 장애아들이 가끔 성질을 부리고 통제가 되지 않을 때 엄마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아빠가 없을 때 감당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까 늘 걱정되는 아빠는 당직도 서지 않는다. 장애 아들의 버거움을 못 이긴 아내의 도움에 바로 달려가는 아빠. 힘겨워 보이는 아내를 위해 아빠는 장애 아들을 데리고 모임에 참석을 한다. 


아빠는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아들을 지키는 아빠가 되기 위해 어떤 상황도 고사하는 것이다. 그런 아빠를 보며 나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빠를 보며 느꼈던 독단적인 행동들. 내면의 힘. 고집. 인내..

아빠가 가질 수밖에 없는 힘들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저절로 생겨나버렸다. 아빠는 앞으로도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지금처럼 곧게 나아갈 것이다. 


나는 속으로 많은 응원을 했다. 

세상의 편견이 이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 반대편에 서지 않고 나는 그들의 세계를 인정해 주고 함께 해야겠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에서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편견에 개념치 않고 살아갈 것이다. 나의 삶이 너와 다르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다. 조금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 삶 또한 내 몫이고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길과 방법을 찾아 나아가고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동정의 눈빛이 아닌 한 인격체로 바라보고 함께해 달라. 

함께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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