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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장프로젝트 Oct 12. 2020

지구와 동행을 생각하는 과일가게

[당장만나] 공씨아저씨네 

과일을 고를 때 색깔과 모양이 예쁜지 눈으로 살피고, 짙은 향이 나는지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무농약’이나 ‘유기농’ 스티커가 붙어있으면 안심하고 대가로 값을 더 치렀다. 그런데 크고 달콤한 과일이 우리집 식탁으로 오는 과정은 친환경적이었을까? 

ⓒ공씨아저씨네 제공

상식적인 과일장수 

공씨아저씨네 

ⓒ공씨아저씨네 제공

공씨아저씨네 공석진 대표는 자신을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과일장수’라고 소개한다. 일을 시작해보니 농산물 유통구조가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고, ‘외모지상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농산물 시장에 큰 충격을 받았다. ‘크기’ ‘모양’ 중심이 아닌 ‘맛’과 ‘향’ 중심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에 맞게 과일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과일상점 공씨아저씨네에서는 아무 때나 과일을 살 수 없다. 나무에서 잘 익어서 가장 맛있을 때 수확한 과일을 정해진 만큼만 팔기 때문이다. 모양과 색이 예쁘지도, 크기가 고르지 않지만, 게다가 때로는 불편한데도 소비자는 줄을 서고 준비된 수량은 금세 동이 난다. 온라인 상점에 접속하면 상품 설명이 구구절절하다. 과일은 날씨에 따라서 더 맛있는 해도 있고, 맛이 떨어지는 해도 있다. 특정 수치의 당도로 과일 맛을 규정하지도 않지만, 날씨 때문에 맛이 떨어진다면 그 점을 알린다. 그리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려고 농민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올해 봄 추위로 ‘아리수’ 품종 사과 껍질이 울퉁불퉁하고 색도 균일하지 않았다. 일반 시장이었다면 B품으로 팔렸겠지만, 공씨아저씨네 회원들은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이렇게 된 건 공씨아저씨네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쌓인 덕이다. 공 대표는 ‘맛있는 과일의 전제조건은 사람에 대한 신뢰’라는 믿음으로 농민과 소비자를 설득해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 과일 맛이 변했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 유통자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차츰 늘고 있다.  www.uncleggong.com 


안전한 먹거리 이전에 지구와의 동행을 생각해요. 

- 공석진 공씨아저씨네 대표 인터뷰 Q&A  

ⓒ공씨아저씨네 제공

공씨아저씨네에서 파는 과일은 어떤 기준으로 입점하게 되나요?

저의 상식에 부합하는 맛있는 과일을 골라요.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과일은 우선 선발 대상이고요. 부득이하게 친환경 재배가 어려운 과일의 경우라면, 잡초를 제거하는 제초제, 크기를 키우는 호르몬제, 색을 잘 나게 하는 착색제를 쓰지 않고 농사짓는 농민들의 과일을 선택합니다. 즉 크기와 모양보다는 맛 중심으로 농사짓는 농민의 과일을 선별합니다. 결국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에요. 

그리고 가공품을 최대한 배제하고 1차 생산물 위주로 팔아요. 과일 본연의 맛과 향을 온전히 즐기셨으면 하는 과일장수로서의 욕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과만 해도 껍질을 벗겨서 드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사과 향은 껍질에 다 들어있거든요. 아이들도 과일의 제대로 된 맛을 잘 몰라요. 생물보다 가공품에 더 익숙하니까요. 

농산물은 수확하는 시점마다 맛이 달라요. 가공품은 늘 동일한 맛을 내야 하죠. 보관 기간도 늘려야 하고요. 그러면 첨가물이 들어가는데, 건강과도 직결되는 문제라 조심해야 해요. 가공품을 만들 필요 없이 1차 농산물로서 모두 소비하는 게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일은 1차 생산물 그대로 소비되는 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 지론입니다. 오래 보관해서 먹으려는 것 또한 인간의 욕심이 아닐까 합니다. 

 

스스로 ‘쓰레기를 파는 과일장수’ 라며 반성문을 올렸어요. 환경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우연히 형이 보는 '월간 과학'이라는 과학잡지에서 오존층 파괴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냉장고의 냉매재, 헤어 무스, 스프레이 등에 포함된 프레온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기사였는데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기사가 꽤 충격적이고 강한 임팩트를 남겼어요. 그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온라인 과일가게에서 환경 문제까지 생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맛있는 과일과 환경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저는 '제철에 수확해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잘 익은 과일'이 맛있는 과일이라고 생각해요. 크기를 키우려고 인위적으로 호르몬제 처리를 하지 않고, 모양과 색을 예쁘게 내려고 약품 처리도 하지 않아야 해요. 그저 잘 익었을 때 수확하면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맛있는 과일인 거예요. 그런데 시장에서 이런 과일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시장 기준에서 크고 예뻐야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농민들은 시장 기준에 맞춰 재배하거든요. 그래서 농민을 비난할 수도 없어요.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거 먹이려고 ‘유기농’ ‘무농약’ 농산물 많이 찾으세요. 친환경 인증 농산물이라고 해요. 그런데 친환경 농업의 본질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계신 분들은 잘 없더라고요. 유기농업의 본질은 땅을 살리는 농업입니다. 지구를 살리고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것이 첫번째 목적입니다. 안전하게 먹일 먹을거리 생산은 부수적인 문제이고요. 

유기농산물은 작고 못 생긴 게 정상이에요. 크고 예쁜 것은 정말 가끔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거죠. 유기농업에 대한 이해가 없이 유기농산물을 찾으니 크고 예뻤으면 하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커져요. 심지어 생협 매장에서도 소비자들의 이런 요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친환경 농업을 하는 농민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죠. 유기농산물에서도 일반 농산물의 등급 기준과 선별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니 농민 입장에서는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굳이 소비자가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면 이 부분이 바뀌었으면 좋겠네요. 유기농산물을 먹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말이죠. 안전한 먹거리 이전에 지구와의 행복한 동행이라는 것을 말이죠. 

ⓒ공씨아저씨네 제공

상품마다 품절 사태를 이어가는 걸 보면, 관행적 소비습관을 바꾸기에 충분할 만큼 소비자를 설득시키고 있는 걸까요?

워낙 판매하는 물량이 적어서 품절 사태로 인식하시는 것 같아요. ‘구멍가게’잖아요. 올해로 딱 10년 차입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특히 최근 2~3년간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변한 것 같아요. 환경 부분에 있어서 의식 수준이 높아졌고, 가치 중심으로 소비하는 층이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MZ세대의 소비 트렌드 중 하나가 미닝 아웃(meaning out)이라고 하잖아요. 관행적 소비 습관이 지금 세대에게는 별로 의미 없는 구시대적 유물이 되더라고요. 판매자 입장에서는 모양이나 외형에 대해 끊임없이 변명과 해명을 하는데, 오히려 소비자가 ‘전 그런 거 상관없는데요?’ 라며 쿨하게 반응해요. 여전히 어려움은 있죠. 숫자로 보면 기존 유통구조와 등급 선별 방식이 많은 소비자들에게 익숙하니까요. 

 

농민과 소통할 때 여전히 어려움이 있겠죠? 기존 시장 유통구조의 불합리성을 인지시켜야 하고, 또 나름의 경험과 철학으로 다져진 생산방식의 변화를 유도해야 하니까요. 

맞아요. 언뜻 생각하면 대부분의 농민들이 제 방식을 선호할 것이라 생각하실 텐데요.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A급은 A급대로, B급은 B급대로, 큰 거는 비싸게, 작은 건 싸게 판매하는 걸 훨씬 더 편하게 생각하시는 농민도 많아요. 너무나 오랜 시간에 걸쳐 몸에 밴 습관과 관행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려울 일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물론 지속적인 노력이 어느 정도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좀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 분위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씨아저씨네 제공

최근 새벽배송 시스템이나 생산자와 소비자 직거래가 늘고 있어요. 공씨아저씨네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온라인 농산물 시장이 굉장히 커졌습니다. 새벽배송 시스템이 그 중심에 있었고 올해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공씨아저씨네의 차별점이라면 '구멍가게' 라는 것이죠.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놓치는 부분도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 시장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새벽배송이 가장 신선한 농산물과 완전 동일시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새벽에 오는 것뿐이죠. 농장에서 바로 수확해서 중간 물류 과정 없이 소비자에게 직배송되는 것이 신선도 측면에서는 더 강점이고요. 사람 손을 덜 타니까요. 

그리고 새벽배송은 어차피 대형 물류센터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중간 과정에서 배출되는 포장 쓰레기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물류의 이동에 따른 탄소 배출 측면에서 보아도 편리함 뒤에 환경오염 문제가 숨어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거죠. 아직까지 공론화되지 않았지만 새벽배송으로 인한 포장 쓰레기 문제는 분명 환경적인 측면에서 큰 이슈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늘 해왔던 대로 기본에 충실해서 운영하려고요. 

 

온라인 상점은 포장과 배송이 필연이잖아요. 개인 생활과 브랜드 운영 과정에서 환경을 위한 어떤 실천을 하고 계시는지?

일회용품 쓰지 않기, 시내에서 자동차 운전하지 않기, 음식물 쓰레기 최소화 하기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 자동차는 2001년식인데, 10만km를 조금 넘게 탔어요. 지금은 일회용품이 널브러진 카페 풍경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기후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얼마나 큰 환경오염인지는 최근 많은 자료를 통해 소개가 되어서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쓰레기를 파는 과일장수'라 칭하며 온라인 택배로 인해 발생하는 포장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덜 사용하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레스 웨이스트’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사실 포장재를 친환경으로 바꾼다고 해도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일 뿐이죠. 생분해성 소재 포장재에 관심을 가졌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 역시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더라고요.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현실적인 상황을 알게 된 이후에는 ‘안 쓰기’ ‘덜 쓰기’ ‘재사용하기’ 이외에는 그 어떤 행위도 친환경적인 것은 없겠더라고요.

 

공씨아저씨네와 함께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행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정상적으로 행해지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씩 정상으로 되돌리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뿐이죠. 드라마 <미생>(12화)에 나온 대사이기도 한데요. 기존의 관습과 틀에 얽매이다 보면 꼭 드러나야 할 것이 가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의 판매 방식, 하고 있는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하고 있는데 주목받는 것이 오히려 더 슬프고 불편한 일이니까요. 

ⓒ공씨아저씨네 제공


환경 문제 관심있는 여러분에게, 공석진 대표가 추천합니다! 
ⓒ공씨아저씨네 제공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1998년 학교 앞 청맥서점에서 대학교 선배에게서 선물 받았는데, 다시 꺼내보았다. 절판되어서 구할 수도 없는, 빛 바랜 책 한 권에서 지금 다루고 있는 환경과 쓰레기 문제의 답을 찾아볼 수 있겠다 싶었다. 개발은 곧 파괴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청동 항아리가 분홍색 플라스틱 바구니로 대체되고, 야크털 신발이 버려지고 값싼 현대적 신발이 환영 받는 것을 보았을 때 저자는 끔찍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문명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답은 스스로 찾으시길 바란다. 편리함의 끝은 어디이며 인간은 과연 만족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환경오염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엄청나게 훼손된 자연환경을 담은 영상물일 것이다. 미국의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은 조금 다른 방법을 택했다. 농업을 전공하지 않았고, 농산물 유통 경험도 전혀 없는 내가 과일장수가 된 이후에 제일 먼저 읽었던 책이다.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셨으면 한다. 농약이 유해하냐 무해하냐의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장도 농약을 파는 회사와 종자 파는 거대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시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먹는 것은 무엇일까? 새벽 배송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아가 지금의 쓰레기 문제로 불거진 환경오염의 시작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농경사회로 돌아갈 수 없지만 농업이 갖는 가치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제 봄은 사라졌다. 봄이 제철인 과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참외라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답이 되어버린 2020년의 대한민국이다.


맘앤앙팡이 운영하는 당장프로젝트는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할 행동들을 알린다. 환경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좋은 습관 형성을 돕는 아이템이나 서비스를 찾아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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