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김민식, 위즈덤하우스
처음 이 책을 읽고 났을 때, 나는 마침 부산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참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이렇게 여행을 제대로 뽐뿌하는 책을 읽고, 행여라도 떠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면 그건 또 다른 고통이리라 싶었다. 작가가 소개하는 서울의 둘레길, 울트라 트레킹이며, 대만 가오슝의 명소, 자전거 전국일주는 또 어떤가. 바로 떠날 수만 있다면, 그가 알려주는 대로 여행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충동질 쳤다.
나는 지금 부산을 여행 중이다. 이 글을 꼭 이번 여행 중에 쓰고 싶었던 것은, 여행기를 읽고 그대로 여행을 했을 때, 어떤 느낌일까. 그것을 글로 옮긴다면 생생한 여행기가 될 것이고, 다른 색깔을 가진 서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꼼꼼하게 짠 여행 일정이 아니라서, 아이들과 아내에게는 비밀로 해놓고서는, 이 책 한 귀퉁이를 접어놓은 페이지대로 부산여행의 일정을 조금 떼어놓았다. 작가가 소개한 부산 갈맷길 베스트를 걸어보는 것. 이 책이 내 마음을 충동질시켜 놓아서 꼭 그렇게 걸어보리라 마음먹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소개한 부산 갈맷길 세 군데 모두 걸어보고 싶지만, 가족여행이란 것이 어디 아빠의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던가.
여행 책을 읽고 작가가 소개한 대로 여행을 해보는 경험, 그렇다면 이 책은 내게 여행기로서는 최고의 효과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단언하건대, 이 책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여행기가 아니다.
일상을 뜻대로만 살아가기는 어렵지만 여행은 계획한 대로 꾸릴 수 있다. 여행자가 가장 원하는 모습대로 보고 먹고 쉬고 하는 모든 것을 계획하므로 여행은 여행자의 삶을 그대로 닮는다. 그래서 여행이 여행자의 삶을 닮는다는 명제는 진부한 것이 아니다.
김민식 작가는 “인생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신을 구해주는 3개의 요술주머니가 '영어, 글쓰기, 여행'”이라고 했다. 세 가지는 열 가지에 도전했다가 일곱 개는 실패하고 그중에 성공한 세 가지라고 한다.(255쪽) 그의 첫 책은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였고 다음 책이 '매일 아침 써봤니'다. 이제 그가 가진 세 번째 여행에 관하여는,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로 풀어졌다. 매년 한 권씩 책이 나왔다. 책을 내는 전업 작가도 아닌 그가 낸 이 세 권의 책은 그가 가진 세 개의 요술주머니를 하나씩 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요령으로 살아온 세 가지 요술주머니를 보물로 만들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시선을 바로 앞에 두고 매 순간 이뤄내는 작은 성취에 집중하며 헤쳐 나온 것이다. 세 가지 모두 그렇게 자신만의 보물로 쌓아왔다. 멀리 있는 길을 꿈꾸지 말고 당장 내 앞에 있는 길을 걸어보자는 다짐(25쪽)은 그래서 그가 알려주는 삶을 여행하는 방식이자 노하우처럼 다가온다.
김민식 작가의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는 여행자 김민식 작가를 닮은 여행을 통하여 그가 살아가는 방식을 알게 한다. 여행자 김민식 작가가 쓴 여행의 모습이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언뜻 보면,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노하우 같지만, 그가 살아가는 삶의 생각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직장에서는 쫓겨나기 직전의 유배지 생활을 하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스스로 즐거워지는 것뿐. 여행과 글쓰기와 영어공부를 통하여 그의 삶을 스스로 즐기는 것 외에는 그의 삶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마도 그는 도망치고 싶었으리라. 그가 그대로 도망쳤다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한 여행기(또는 여행 소개서)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책을 여행 안내서로 읽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여행에서 삶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한다.
<38쪽> 돌아가자. 돌아가서 다시 한번 도전해보자.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오늘 나는 내 몫의 돌을 쪼겠다. 뜻대로 안 되면 어때요? 그것 또한 인생인데.
<66쪽>
이제는 국외 도피로 답을 찾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문제가 여기 있다면, 해결책도 여기에 있을 테니까요. 유배지에서 근무하는 하루하루를 여행을 즐기는 일상으로 바꾸며 살자고 결심했지요. 도망쳐서 달아난 곳에 천국은 없으니까요.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김민식, 위즈덤하우스
여행에는 여행자의 삶이 반영되어 있으니, 여행에서 삶을 돌아본 그의 생각은 행간에서 읽힌다. 나의 밑줄은 일상을 떠난 여행에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본 생각에 그어졌다.
어느 날 출근길,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앞사람의 손에 시선이 머물렀다. 여행책을 들여다보다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한다. 아마도 곧 여행을 떠나려는가 보다.
여행을 떠나는 직장인, 늘 여행을 꿈꾸는 직장인. 나 역시 그 무리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왜 여행을 꿈꿀까.
여행은 삶과, 일상과 다르리라는 기대.
반복되는 일상은 즐겁지 않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직장인의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여행에는 일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다. 일상과 삶은 원하는 대로 만들지 못하지만 여행은 그렇지 않다.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으로만 계획하고 꾸려갈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은 늘 즐겁다. 매번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직업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수도 없이 생각했다.
생각을 바꿔보자. 일상이 여행과 같다면, 여행의 기쁨을 조금 일상에 가져올 수 있다면, 나는 굳이 여행을 꿈꾸며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런 내게, 작가가 전하는 충고다.
<70쪽> 장기 여행을 즐기는 이들 중에 여행을 떠나는 순간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믿는 이도 있어요. 1년 동안 일하고 열흘 휴가를 가는데, 그 열흘이 낙원이고 1년이 지옥이면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게 되지요. 하지만 무조건 떠나는 게 답은 아닙니다.
충고는 또 이어진다.
<246쪽> 과정을 즐기는 게 진짜 여행입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삶의 목표는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꿈을 좇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소중하지요.
그럼 어떻게 삶을 즐겁게 할까.
작가는 일상을 즐겁게 하는 방법, 즐거움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떤 일을 꾸준히 오래 하는 비결이라고 한다.(280쪽) 내가 좋아하는 일,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즐겨야겠다. 매일 반복하리라. 무엇이든 가능하게 할 것이다. 즐거우기까지 하다면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다. 산을 오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라고 했으니까.(295쪽)
그렇게, 나는 또 여행 중이다. 이제는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이 아닌, 일상에 가져갈 여유를 찾는 여행을 하고 있다. 그가 알려준 부산 갈맷길 중에 태종대 둘레길과 해운대 삼포길을 걷는다.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고,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이 길을 소개한 그의 성품이 이 길에 비친다.
여전히 그의 책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 아버지와도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고, 딸아이와 둘만의 여행도 떠나고 싶다. 매년 한 번씩은 아내와 둘이서 여행을 하기로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책에서 여행의 방법만을 얻어 오지 않았다.
그는 생각한 바를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꿈꾸고 생각하는데에서 머무르지 않았고 여행을 통해서 얻은 바를 삶에서 실천한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여행"을 모조리 지우고 나면 보이는 것, 그것이 작가 김민식이 유배지에서 버텨온 삶의 노하우고 힘이었다. 매일 반복하며 그의 삶을 즐겁게 만든 것은 여행이 아니라 한결같은 습관이고 그가 삶을 살아온 방식이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그의 말은 그가 삶에서 실천하는 행복의 습관을 말하는 것이다. 여행에서 얻어 온 것이 아니라 여행을 통하여 한발 멀리서 삶을 바라보는 방법을, 늘 찾아오는 행복을 통하여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그는 이 책을 통하여 내게 전하고 있었다.
이 책이 여행기가 아닌 김민식 작가의 삶을 쓴 책으로 읽힌 까닭이다.
*덧.
혹여나 내가 지운 여행자 김민식의 여행을 알고 싶은 분을 위하여, 그가 소개한 여행 코스를 첨부파일로 붙여놓았으니, 이 글을 본 것을 비밀로 하겠다면 열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