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읽고
내 말의 온도는?
“국을 끓일 때 간을 좀 미리 보면 안돼? 너무 싱겁잖아. 이건 그냥 미역 넣고 뜨거운 물 부은 것 같아.”
나는 그렇게 종종 아내의 마음에 부아를 지르곤 했다.
째째하게 국에 간이 맞다, 안 맞다를 가지고 투정하는 못난 남편이기도 했고.
음식투정은 정말 사소한 축에 속할 것이다.
만난지 18년, 결혼하고도 12년째인 우리 부부 사이에 내가 아내에게 못 박은 잘못된 말이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어렵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세심하게 마음을 살펴야한다.
날카로운 말의 가시에 상처받지 않도록 더 주의해야 한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고 안에서는 ‘못난 남편’.
쓰면 쓸수록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래서 작가의 이 문장은 아프게 남았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얼마 전 충청도 지역에 많은 비가 온 다음 날이었다.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집 앞 작은 길가에 꽃을 심어놨는데, 바로 옆 밭주인이 비가 많이 와서 물고를 낸다고 꽃을 갈아 엎었단다. 단단히 화가 나셔서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난 엄마 편을 확실하게 들어주지 못했다.
마땅한 해결책도 없었을 뿐더러 그냥 넘어가시지 하는 귀찮은 마음 내 편한대로의 마음이 컸던 까닭이다.
어쩌면 나는 엄마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나보다. 다 큰 자식, 결혼해서 분가하여 제 살림을 살아가고 있는 이름 뿐인 아들이지는 않았나 반성한다. 아마도 엄마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자식이 나이가 들고 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내 품안의 자식으로 평생을 그렇게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
하관, 문인수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쿵 하고 벼락치듯 쏟아지는 눈물이 가슴 속으로 깊숙이 흘렀다.
작가가 지인의 모친상을 얘기하며 남긴 이 시 한 줄이 가슴 깊이 남았다.
작가의 따뜻한 말에 기대어
작가의 섬세한 감정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 책은 어떤 특별한 얘기로 채워진 것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한번쯤 봄 직한, 들어봤음 직한 것들을 작가의 얘기로 채워진 책이다. 참 마음이 편했다. 읽는 내내 글자가 나를 조여오지 않고 책 안에서 슬며시 풀어지는 듯 했다. 작가의 따뜻한 마음에 기댔다고 해야할까.
한글자 한글자, 문장 한줄 한줄 꼭꼭 눌러 쓴 작가가 느껴졌다.
호흡은 길고 느리며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게 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속도가 아까울 지경이다. 마치 시인의 감정을 대하는 것 같았다.
한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고치는 행위의 연속일 뿐이다.
문장을 완성하고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서 괜찮은 글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날 리 없다.
좀 더 가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찾아낼 때까지 펜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지루하고 평범한 일에 익숙해질 때,
반복과의 싸움을 견딜 때 글은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작가의 오랜 고침으로 단단해진 글을 만났다.
참 좋은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