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마카오에는 카지노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서울시간으로는 새벽 1시. 마카오는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왼편으로 내내 까맣게만 보이던 창이 금빛 야경으로 빛났다. 어느 영화였을까. 까마득한 사막을 헤매다가 모래언덕 너머에 믿기지 않는 신기루처럼 화려한 도시가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장면. 딱 그랬다.
마카오는 그렇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딸아이와 여행을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 아이가 좋아하는 문구점, 잡화점을 구경할 생각으로 일본 오사카 여행을 생각했었다. 한일관계 악화로 여행지를 바꾸겠다 마음먹고는 비행시간이나 항공료, 숙박의 편리성을 생각해서 마카오로 정했지만 처음부터 이곳을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마카오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여행할지 쉽게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마카오 하면 카지노의 도시, 포르투갈이 오랜 기간 식민 지배했던 도시로만 알고 있었다. 남들은 홍콩에 갔다가 가까운 마카오에 들러 함께 여행을 하고 온다는데 몇 차례 홍콩에 여행을 다녀오고도 나는 한 번도 마카오에 가본 적이 없었다. ‘카지노’라는 심리적 담벼락이 높다랗게 쌓인 탓이었다. 그런 곳을 아이와 함께 가려고 하니 잠시 막막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 마카오에 나는 카지노 한번 가지 않고도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카오에 아이와 함께 간다면 호텔 수영장이 최고라고 조언했지만 호텔 수영장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준비한 하루 한 가지 프로그램만으로도 마카오는 생각보다 즐거운 도시였다. 우리가 즐긴 마카오 여행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마카오 세계문화유산 투어
마카오의 간판스타이자 마카오를 대표하는 사진 한 장으로 나타낼 수 있는 ‘성 바울 성당’과 ‘몬테 요새’ ‘세나도 광장’을 둘러볼 수 있는 투어다. 투어비용도 저렴해서 한 사람당 1만 5천 원 내외면 4시간 정도의 투어 프로그램을 가이드와 함께 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마카오에 도착한 다음날, 그러니까 여행의 초반에 투어 프로그램을 일정에 넣었는데 나름 이유가 있었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구경할지 정하지 못한 여행인 탓에 가이드와 함께한 투어로 시작해서 마카오 여행의 감을 잡으려고 했다. 4시간의 투어 중에 다시 돌아볼 곳을 생각해두고 다음날부터 하나씩 자세하게 돌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계획은 꽤나 유용했다. 우리와 함께 했던 가이드는 세나도 광장을 중심으로 아이와 함께 가볼만한 식당(굴국수를 파는 ‘무이’ 식당, 매케니즈 음식을 잘한다는 ‘에스카다’, ‘돔갈로’ 같은)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또 처음에는 어색했던 호텔 셔틀버스 이용 방법을 익힐 수도 있었다.
4시간 정도 걷는 프로그램이었지만 4시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시간은 금세 흘렀다. 아이가 힘들이지 않고도 걸을 만한 코스였고 마카오의 역사와 도시의 분위기를 익히기에 딱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마카오의 화려함, ‘댄싱 오브 워터쇼’에 있었다.
티켓을 예매할 때 나는 조금 놀랐다. 가격 때문이었다. 어린이 표 1장이 포함되었음에도 2명의 티켓이 20만 원 가까웠다. 나는 앞자리를 앉으려고 할인 혜택이 거의 없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매했다. A석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B석 맨 앞자리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비싼 티켓 값만 한 가치가 있을까 의심이 가득했지만 공연이 끝난 뒤 나와 딸아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다음에 오더라도 이건 꼭 봐야겠다고 했다. 보는 내내 이것을 어떻게 준비하고 연습했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우리가 생각한 공연의 화려함이 5미터에서 뛰어내리는 놀라움이라면 이것은 15미터에서 날아들며 상상력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시가 보여준 치장된 겉모습과도 딱 통하는 공연이었다. 이런 규모의 공연이 펼쳐지는 도시라니.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겉모습만큼이나 거대한 공연이었다. 어쩌면 나는 마카오 하면 이 공연을 우선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호텔 구경, 코타이 센트럴 구경하기
마카오는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 섬, 코타이 섬 지역으로 나뉜다. 본래 마카오는 중국 본토와 맞닿은 반도 지역만 있었고 나머지는 매립으로 만들어진 도시라고 했다. 호텔은 대부분 코타이 섬 지역에 몰려 있는데, 커다란 대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높다란 호텔들이 줄지어 섰다. 11월은 마카오의 초겨울 날씨라고 했지만 낮 기온은 25도 정도로 걷기에 좋았고 아침저녁으로는 가벼운 가디건이 필요할 만큼 선선했다.
우리는 낮에는 호텔 수영장에서 놀거나 가까운 카페를 찾아가 시간을 즐기고 오후가 되어 선선해지면 밖을 한 바퀴씩 돌았다.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마카오 반도로 나가 투어 때 봐 두었던 몇몇 곳을 돌아보고 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해가 지고 코타이 센트럴 전체가 환히 빛나기 시작하면 아이와 호텔 주변을 걸었다. 에펠탑을 세운 파리지엔 호텔 근처에서는 사진을 찍느라 오래 머물기도 했다.
워낙 화려한 야경이다 보니 한 바퀴 걷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공간을 느끼고 새로운 마음이 찾아드는 것 같았다.
나는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여행에 아이가 지쳐할까 봐 조금 걱정이었다. 혹은 너무 빈약한 여행 계획에 호텔방에서만 놀지나 않을까 싶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생각해둔 일정을 보내고 나머지는 생각나는 대로 호텔 아케이드를 돌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잠깐잠깐의 시간도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을 만큼 즐거움이 가득 찬 도시였다.
마카오는 우리가 살던 일상과는 다른 화려함이 빛나는 도시였다. 오래 머문다면 화려함에 눈이 부시거나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을 즐길 수 있는 작은 여유를 발견한다면 일상의 고단함을 쉬어갈 공간,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줄 기분전환이 가능한 도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마카오의 화려함은 다음번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온다 해도 그때의 그 모습과는 다른 도시로 느껴질 변신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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