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세 번의 시도, 두 번의 실패, 그리고 세 번째 성
사실, 이번 여행은 꽤 오래전에 생각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3년 전이었다.
우리 가족은 휴가차 제주여행을 하면서 올레길을 걸었다. 네 식구가 나란히 걷는데도 딸아이와 나는 앞서 나가고 아내와 큰아이는 뒤쳐졌다. 15km쯤 되는 한 코스를 걷는데 가장 힘들어한 것은 아내였고 다음으로는 아들, 그리고 가장 앞서 나간 것은 딸아이였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엄마보다도 잘 걸었다. 그때 내게 희망사항이 생겼다. 다음에 딸이랑 둘이서 제주올레길을 한번 걸어보면 좋겠다 하는.
아이에게도 의견을 물어봤는데 흔쾌히 간다고 했다. 몇 번을 '아빠랑 둘이서 가는 건데 괜찮아? 엄마 없이도 괜찮겠어?' 그렇게 물었다. 물어보는 내가 무안할 정도로 딸아이는 '응, 좋아!!'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 대답을 철떡 같이 믿었다. 그리고 혼자서 "아빠와 딸, 단둘이 떠나는 여행"에 대한 환상을 그렸던 것 같다. 제주도 올레길을 종일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중간중간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앉아 멋진 풍광을 앞에 두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그래서 나는 2년 전에 적당한 때를 잡아 제주도행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했다. 물론 아이에게 한번 더 의사를 물었다. "갈 거지?" 이번에도 아이는 뭐 이런 아빠가 다 있냐는 듯 약속했으니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나는 '우리의 약속'을 믿고는 여행을 준비했지만, 결국 우리는 떠나지 못했다.
출발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왔더니 딸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곁에 있을 뿐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소리 없는 목소리만 들렸다. 이유인즉 아이가 아빠랑 둘이서 여행을 가려니까 겁이 난다고 했단다. 엄마 없이 아빠랑 둘이서 가려니까 씻는 것도 혼자서 씻어야 하고 잠도 혼자 자야 하고 몇 가지 핑계가 더 있었지만, 어쨌든 싫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대했던 아이와의 여행이 무산된 것보다 물어야 할 항공편 수수료에 더 화가 났다. 어르고 달래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한번 터진 울음은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딸과 여행을 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딸아이의 이 말 때문이다.
"아빠, 아빠는 왜 오빠랑은 자전거도 타러 가고 야구장도 둘이 가고 하면서 나랑은 왜 둘이 아무것도 안 해?"
할 말이 없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아들과 캐치볼을 하고 있었고 아들이 하고 싶다던 한강에 자전거 타러 가기도 했다. 아들과 둘이서만 자전거 대회를 나가기도 했다. '아빠와 딸'이라는 이유로, (같은 성별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지만) 혹은 아직은 더 어린 딸과는 '다음에, 다음에' 하며 미뤘다.
아이의 말이 아프게 다가왔고 미안했다. 한방에 큰 만회를 해보리라는 생각으로 '그럼 둘이서 여행을 떠나보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아들에게도 동의를 구했고 그때는 분명 아무렇지 않게 그래도 된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문제지만)
제주도 여행이 무산되고 한동안은 '아빠와 딸의 여행 이야기'는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아마 내게도 상처가 된 듯하다. '아빠랑 둘이 있는 게 무섭다니.'
그렇게 잊힌 이야기가 되어갈 무렵, 문구에 관심이 많아진 딸아이가 오사카에 가면 돈키호테에 들러 마음에 드는 문구를 잔뜩 사고 또 어디를 가서 마스킹 테이프와 다이어리 속지 스티커를 사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오사카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딸아이와 둘이 간다고 해도 힘들지 않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 둘이 오사카 여행을 다녀올까."
일 년이 지나 아이는 그만큼 컸나 보다. 제주도 여행을 무산시킨 그때보다는 한 뼘 정도 컸는지 아니면 아빠를 실망시킨 마음이 짐이 있었던 까닭인지 딸아이는 나름 혼자서 여행 준비를 착실하게 해 나갔다. 심지어는 일본어를 혼자 공부하기도 했다. 맛있다는 식당이 있다고 하면 메모를 해두고 당연히 본인이 가고 싶은 문구점, 쇼핑센터도 찾아놓고.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항공편과 숙소도 모두 예약을 마쳤고.
이번에도 우리는 떠나지 못했다.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일본 여행을 가지 않는 흐름이 계속되자 딸아이는 내심 신경이 쓰였나 보다. 그렇다고 먼저 가지 말자고 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지난번의 일이 있었으니까. 나 역시도 그랬다. 아이와의 약속이고 내게도 큰 기대였으니. 결국에는 취소 수수료가 더 커지기 전에 조심스럽게 내가 이야기를 꺼냈고 아이는 동의했다. 다만, 다른 곳을 가자는 조건하에.
그렇게 두 번의 실패를 거쳐(두 번의 취소수수료를 물어낸 끝에) 우리는 마카오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 5월 1일. 아내는 출근을 하던 날이었고 사기업에 다니는 나는 쉬는 날이었다. 큰아이도 학교를 가는 날이어서 딸아이와 둘이 있어야 했는데 무엇을 할까 고민스러웠다. 생각 끝에 둘이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다녀왔다.
간이 유모차를 끌고 도시락을 챙겨서. 내내 아이가 아빠랑 둘이 있는 것을 어색해하거나 심심해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관심이 다른 곳에 머물도록 코끼리 기차를 타고 물개 쑈를 보고 비눗방울 장난감도 사주고 그랬다. 그저 내게는 피곤했던 하루로 기억하는데, 아이는 아빠가 자기에게 젤 잘해줬던 가장 오래된 첫 기억이라고 했다. 그때가 너무 좋았단다.
나의 희망사항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 기억을 이번 여행으로 바꾸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가 오래도록 이 여행을 꺼내 즐거워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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