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우리의 여행은 '비행기모드'를 켜 둔 느낌이었다.
비행기에 타면 휴대전화를 끄거나 ‘비행기모드’로 바꿔 놓는다. 전자기기가 비행장치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깥세상과 연결된 네트워크를 닫아 둔다. 한시도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고는 살 수 없듯하다가 비행기에 올라 '비행기모드'로 전환하면 그때부터는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준비해 간 책을 읽거나 비행기에서 제공되는 영화를 보거나 혹은 휴대전화나 USB, 다른 기기에 담아 둔 동영상을 보거나.
생각보다 꽤 지루한 일이다. 준비해 간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 '비행기모드'는 언제 어느 때고 손을 뻗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터넷과 단절된 것 자체로 답답이 느껴진다.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다른 것이 필요하면 어쩌지. 준비한 동영상 말고 다른 게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 누군가에게 전화할 일이 생각나거나 혹은 무엇을 검색하고 싶어 진다 해도 '비행기모드'에서는 아무것도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다만, 차단된 세상 안에서 나름 열심히 찾다 보면 그간 알지 못했던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지 못할 만큼.
4박 5일간의 마카오 여행은 '아빠와 딸만이 존재하는 비행기모드'로 전환된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기분이었다. 필요한 게 생기면 '엄마' 혹은 '가족'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도움을 받다가 오로지 딸과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하면 어쩌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어쩐다? 평소에 준비했던 '아빠'라는 역할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나는 조금 걱정이 됐다.
딸아이가 무언가 필요해서 손을 내밀 사람도 나뿐이고 나 역시 여행 중에 도움을 받을 사람은 딸뿐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면, '이것 좀 잠깐 들고 있어 봐' 하며 카메라를 맡길 사람도 딸뿐이다. 무엇을 먹을지 상의할 사람도 내 옆에는 오직 한 명뿐이었고 잠시 숙소에서 휴식시간을 보낼지 밖에라도 나가 구경을 할지 의견을 나눌 사람도 딸내미 외에는 없었다. 우리는 철저하게 둘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 놓였다. '아빠와 딸만의 비행기모드'였던 셈이다.
평소에는 알지 못하던 딸의 모습이 더 세세하게 보였다. 이렇게 흥이 많은 아이였나. 이렇게 간단명료하고 흔들림 없이 자기의 의사를 밝히던 아이였던가. 아이는 호텔방에서도 또 밖에 나와서도 쉼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BTS며 아이돌 노래를 흥얼거렸다. 종종 거울 앞에 서서 춤을 추기도 했다.
네 식구가 함께 있을 땐 보이지 않던 딸의 기분이며 감정의 흐름도 모두 느껴졌다. 오빠에게 가려 보지 못했던 아이의 취향, 아내에게 맡기고는 좀체 살피려 하지 않았던 여자아이의 섬세함. 네 식구가 함께 있었다면 딸아이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발견하는 역할을 아내에게 맡겼을 것이다. 아들과 딸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찾느라 딸아이가 좋아하는 것 자체를 알아차리는 것도 힘들었을 법하다.
그런 것들을 하나 둘 느끼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척 흥미로웠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아내와 나는 다니던 직장을 쉴 수가 없었다. 백일이 지나자마자 강릉에 있는 처가에 아이를 보냈다. 매주 가보지도 못해서 아이가 어릴 때, 나는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그런 탓인지 어릴 적 아이는 유난히도 아빠에게 오지 않았다. 안아주거나 업어주면 허리를 꺾어 강하게 거부의 몸짓을 보였다. 아이가 잠이 든 후에야 아이의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얼마나 쓰다듬었던지. 여행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꾸만 그때의 기억이 난다. 너는 그때 그랬단다. 지금은 어떻니.
아이에게 좋은 아빠로 거듭나는 그런 시간이기보다 아이와 아빠, 서로가 더 잘 알게 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아빠가 네 식구 속의 한 명이었다가 ‘아빠’라는 하나의 존재로 다가가 '우리 아빠가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면서 아빠를 조금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라면 좋겠다. 내게 딸도 마찬가지다.
마치 '비행기모드' 덕분으로 그간 잘 알지 못했던, 인터넷의 연결 없이도 사용 가능했던 휴대전화의 숨겨진 게임을 잘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면 또 이렇게 나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아마 아이는 자신의 삶을, 자기의 시간을 살아갈 테지. 아이의 시간 속에서 내 몫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존재 자체야 남아 있겠지만 역할은 점점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이 여행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기보다 훗날 아이가 이 시간을 돌아봤을 때 이 여행이 넉넉한 위로와 따뜻한 기억이 되기를 나는 바란다.
사진출처: Photo by Suhyeon Cho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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