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 김금희
제주라는 섬을 좋아하고, 법원이라는 직장에 다니는 내게, 이 소설은 특별했다. 게다가 김금희의 산문집 '사랑밖의 모든 말들'을 얼마 전 기분 좋게 읽은 터였다. 소설은 제주의 어느 섬 '고고리섬'이 배경이다. 고고리섬? 추자도나 우도처럼 제주의 섬이 또 있었나? 나는 서귀포 앞바다에 떠 있는 범섬이나 형제섬, 한림 앞의 비양도처럼 제주의 또다른 섬이었을까 싶어 찾아 봤다. 기껏 검색된 말이, '고고리'는 이삭이라는 의미의 제주 방언.
읽으면서 나는 제주의 가을이 그리워졌다. "단풍나무 위로, 잘 익은 감귤 위로 떨어지며 섬의 톤을 농익게 만드는 빛(179쪽)"이 드리워진, 좋아하는 곳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의 즐거움이란 어떤 것일까 했다. 살아온 사람이 쓴 것이 아님이 분명하지만, 제주에 마음을 기대본 사람이 갖는 섬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만져졌다. 제주를 좋아하는 내 안의 감정이 꺼내 올려 만져지는 것 같았다.
소설은 곳곳에서 제주의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게 했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현실의 어느 사건과도 관련 없는 허구라고 했지만, 나는 강정의 구럼비 바위가 떠올랐고, 북촌 너븐숭이의 아이들 무덤이 생각났다. 새별오름에 올라 바람을 맞던 일이며, 성산 광치기해변에서 일출봉을 바라보던 것하며, 종달리에서 수산리로 들어설 때 길게 늘어선 나무들, 대정 알뜨르 비행장의 넓은 무밭, 당근밭 사이 생경맞은 시멘트 격납고가 생각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느 때고 마음의 위로를 얻었던 제주의 푸른 바다가 어른거렸다.
주인공 이영초롱은 어릴 적 부모의 파산으로 고모가 있는 제주의 '고고리섬'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친구 '복자'를 만나고, 할망당에 인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영초롱에게 복자는 제주의 모든 것이다. '복자를 통해서만 섬의 대부분의 것들을 받아들인(80쪽)' 영초롱은 '당연히 거기 있어야 하는 것처럼, 당연히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처럼(92쪽)' 복자를 생각한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보듬음이었는지, 영초롱은 제주를 떠난 이후에도 자주 생각했다.
다시 서울로 온 영초롱은 판사가 되고, 재판 중에 욕설을 참지 못해 징계성 인사이동으로 '성산지원'에 발령난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어릴적 친구들, 영초롱을 좋아해서 영초롱이 속인 서울 주소로 내내 편지를 보내고 답장이 없자 그 집 주소로 영초롱을 만나러 서울에 가기도 한 고오세와 단짝 친구였지만 사이가 멀어졌고, 제주의 영광의료원 간호사로 일하다 산업재해로 재판을 시작하는 복자. 영초롱은 복자의 재판을 담당하는 합의부로 구성되고, 재판을 둘러싼 갈등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영초롱은 영낙없는 '판사에고'를 가진 법관이었지만 어릴 적 친구를 만나서 자신을 좋아하는 고오세에게 다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복자를 만나 애틋함을 그리고 미안함을 갖기도 한다. 모두가 법정 밖의 감정들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까지 '강경'에서 나고 자랐다. 골목 담벼락에는 친구 태호가 '수홍아, 놀자'라고 쓴 연필글씨가 남아 있었고, 학교가 끝나면 옥녀봉 밑에 경섭이네 집에 놀러가던 동네를 6학년이 되던 해에 '논산'으로 떠났다. 친구 태호가 먼저 논산으로 갔고, 경섭이도 떠난 동네였다. 아직 '논산'에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내가 살던 골목에 가본지가 오래다.
소설의 행간으로 나의 어릴 적이 자꾸 오버랩됐다. 제주만큼은 아니더라도 강경의 옛골목 정취는 따뜻한 오후의 햇살 같았으니까. 어릴 적 친구는 친구 그 자체뿐 아니라 함께 뛰어놀던 곳의 추억이 동반된다. 영초롱이 느꼈던 복자에 대한 감정, 떠나온 자의 애틋하고도 애잔한 감정은 제주에 대한 영초롱의 특별한 기억과 함께 묻어 느껴졌다.
소설 곳곳에 있는 나의 직장 '법원'에 대한 묘사는 관찰 이상의 무엇이었다. 코트넷이며, 골무, 그런 것쯤은 이제 금방 알 수 있는 법원의 모습이라지만, '퇴직을 앞둔 동료가 마지막 판결을 마치고 나면 법복을 갖춰 입고 재판정에서 기념사진을 찍는(40쪽)' 일이며, 법원 직원들도 다 알지 못하는 '벙커'라는 은어까지. 민사소송법 교과서에서나 살아있을 '기피', '회피'라는 제도가 소설 속에서 등장할 때는 이것을 기대하는 법원 밖의 시선이 그렇겠구나 싶었고, 책상 위에 쌓였다가 금세 사라지는 신청서에 담겼을 간절함을 생각했다.
작가의 가까운 친구나 가족 중에 판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만큼 정교하다고 느꼈다. 도대체 이 작가는 어디까지 준비를 해서 소설을 쓴 것일까.
김금희 작가의 글은 산문 뿐 아니라 소설도 어쩌면 이렇게 잔잔하고도 뭉클하게 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부드럽게 읽힌다. 인간의 감정을 한 올 한 올 건져서 세세하게 살려 세우는 장인의 손길 같은 신중함마저 있다. 책을 읽으며 그어 온 밑줄을 옮겨 놓으니 내가 그은 형광펜은 작가가 남긴 한 문장 한 문장의 감정을 길어 올린 흔적이 되었다. '사탕처럼 곰곰이 녹이다 보면 알게 되는 뜻(13쪽)'이라든가, '슬픔은 차갑고 마음을 얼얼하게 하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17쪽)'이라든가. '불행의 표피가 너무 단단해서 말이 그 안을 드러낼 수 없을 듯한 부분(130쪽)'처럼 그간 내가 쓸 수 있던 표현의 범위가 이처럼 초라했었나 싶을 만큼 소설의 말들은 구체적으로 아름다웠다.
어느 작가의 책을 다 읽고 덮으며 '이 책이 이렇다'하는 나의 느낌 중에 최고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바로 읽어봐야겠다"하는 것이다. 김금희 작가의 산문 '사랑 밖의 모든 말들'도 그랬는데, 이 작품을 덮고서 나는 '오직 한사람의 차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다 쓰고 난 지금,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