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여행자의 삶을 닮는다'
어떤 여행기를 보면, 축복과도 같은 행운이 함께하는 여행이 있다.
의도치 않은 행운이 펼쳐진다. 비행기 좌석이 승급되어 비지니스로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고 호텔방이 업그레이드 되거나 호텔방의 뷰라도 바뀐다. 이런 행운이 함께하는 여행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러움 일색이다. 들어가는 곳마다 맛집이고 쇼핑하는 곳마다 최대 할인이다. 도움을 주는 사람도 꼭 나타나고 날씨는 또 어떤가. 신마저 축복을 내린다.
우리에게 그런 행운은 없었다.
수 없이 찾아 본 블로거들의 마드리드 공항에서 솔광장으로 향하는 방법에 등장하는 '표 발매기 옆의 친절한 직원'조차 우리는 만날 수 없었다. 우리에게 의도치 않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조차 만나기 어려운 여행이었다.
여행은 내내 그렇게 소소한 일상의 것들로 채워져 갔다. 스페인이 아니더라도 서울에서도 있음직한 일들이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그런 일상의 것들을 찾아 나섰다. 일상을 여행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특별했으니까.
마드리드에서 둘째날이었다.
공백으로 채워가자던 여행이었고 여유, 여유, 여유를 찾은 여행이었건만, 둘째날 저녁이 되니 마트를 구경하고 시장을 돌아보고 동네 한바퀴를 돌아 광장을 지나다니는 것이 전부인 평범한 여정만 남아 있었다. 하나라도 더 봐야 하나 하는 조바심이 생겼다. '마드리드의 어디어디를 다녀왔어'라는 여행담을 늘어놓자면, 무언가라도 빼놓으면 안될테니까.
블로그나 여행책자의 '마드리드의 그곳'을 놓치면 손해볼 것 같은 "여행 본전심리"가 슬며시 찾아왔다. 애써 무시하며, 다른 사람의 여행에서는 찾을 수 없는, 우리에게만 의미있는 특별한 무언가는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덮어 담았다.
오후 5시가 넘어 갈 무렵, 잠시 숨을 돌린 후에,
아이들을 살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딸아이가 무척 졸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의 시간으로 하면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딜을 제안했다.
"테블릿 PC와 엄마의 휴대전화를 놓고 갈테니 숙소에서 둘이서 쉬고 있을래?"
여행을 다니며 아이 둘만 두고 나간 경우는 없어서 반쯤은 그냥 해본 말이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이들 둘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동네 산책을 나서더라도 아이들만 두고 나갈라치면 마음이 조심스러웠는데. 이제 열네살, 열한살 되는 아이들이 못미더워서였을까. 스페인 여행에 와서 아이들만 두고 나간다니.
그렇게 너무 쉽게 얻은 자유에 마음이 들떴다. 여행의 계획에는 없었지만 혹시나 시간이 된다면 가볼까 했던 '데보드 신전'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마드리드 시내에서 일몰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데보드 신전은 원래 나일강 근처에 있던 고대 이집트의 신전을 스페인으로 옮겨 놓은 유물이었다. 거리가 너무 멀다 싶으면 동네나 한바퀴 돌아보자 했는데, 숙소에서도 20분 거리였다. 시간도 딱 일몰을 앞두고 있었다.
그저 둘이서 나선 것 뿐인데도 해방감이 몰려왔다. 손을 꼭 붙잡고(잃어버릴까봐서...ㅎㅎ) 걷는 길은 오랜만이었다. 외국에 나와서 아내와 단둘이 데이트라니. 셀렜다. 참 별 것 아닌데도 이게 이처럼 마음을 흔들고 발걸음을 가볍게할 줄이야.
서울에서 명동거리를 지나 남산에 이르는 길처럼 데보드신전을 향해 걸었다. 평범한 일상의 것들이었다. 데보드신전이 있는 언덕에 오르니 해는 저편으로 지고 있었다. 낮게 펼쳐진 마드리드 저편을 넘어가는 일몰은 바쁜 마음을 잔잔하게 했다. 평화로움이었다. 크기로 따지자면, 소소한 평화로움이었다. 우리가 여행에서 얻고 싶어 했던 것이 바로 이 마음이 아니었을까. 여행에서 얻고 싶은 특별함. 일상에서는 무뎌져 특별함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별 일 없는 평온함이 여행지의 일몰에서 잔잔한 감동으로 밀려왔다.
내게 그 순간이 더욱 특별했던 것은, 이 자리에, 이 공간에, 일몰이 펼쳐지는 이 시간에,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 그것이었다. 부족함 없이 마음을 가득 채워오는 행복한 마음이, 붙잡고 있는 아내의 손을 타고 전해졌다.
이처럼 소소한 행복이라니. 내가 이처럼 욕심없는 사람이었나.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것은 여행자의 삶과 닮아 있다.
나의 삶이 그랬다. 이십대를 채웠던 사법시험 수험생활은 끝내 합격하지 못했다. 사기업을 다니다 뒤늦게 공무원이 되어 나이 40이 넘도록 여전히 말단을 전전한다. 집 한 채 번듯하게 갖고 있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쌓아놓은 통장 잔고는 있던가. 훤하게 닦아놓은 인생의 탄탄대로를 꿈꾸다 잊은지가 언제인지 셈하기도 어려웠다.
크게 얻어 화려한 행복은 없더라도 내게 있는 것은 소소한 행복이었다.
아이들의 손만 잡고 걸어도, 아내의 손만 잡고 있어도 행복한 내가 있었다. 일상은 어떤가. 이른 아침 매일 하는 운동으로 시작만해도 기분 좋았다. 출근 전 들르는 스벅에서의 커피 한잔에 세상 모든 평온을 얻은 듯 하지 않았던가. 저녁이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꼭 지키려 하는 내가 있고, 주말이면 카페에서 또 도서관에서 책 읽으며 보내는 평범함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우리 가족이 있었다. 종종 떠나는 캠핑과 여행은 또 어땠나. 수천킬로를 날아 온 이곳에서 만난 일몰에도 이처럼 행복해하고 있지 않은가. 소소하고 작은 것들로 채워진 삶이었다. 뚜벅뚜벅 걸어 채운 삶의 소소한 행복이 내게는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여태 살아온 삶을 평가해 본다면, 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B+"정도 주고 싶다고 했다. 대학입시 때도 원하는 대학을 간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원하는 직업을 갖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일에 만족하며, 아직 큰 재산을 얻지는 못했지만 더 소중한 가족과의 행복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평가의 이유를 남겼다.
'무엇이 되었나'하는 결과의 관점으로 보면 점수는 더 낮아 질 지 모른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하는 과정의 관점으로 본다면, 어쩌면 나의 평가는 더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과정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향해, 아내와 아이들과의 우리의 삶을 향해 환한 마드리드의 보름달이 빛나고 있었다.
해가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고 우리는 데보드 신전을 크게 돌며 이곳 사람들의 평범한 저녁 일상을 함께했다. 마치 우리가 이곳에 사는 사람인 것처럼. 또 우리가 서울의 일상에서 하던 그것과 마찬가지로.
한가지 남긴 아쉬움은 마드리드의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그 모습처럼 잔디에 앉아 진한 키스를 아내에게 건네지 못한 나의 쑥스러움이었다.
이집트 외부에 있는 유일한 진짜 이집트 신전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이 고대 이집트 신전은 원래 나일 강변에 서 있었다. 오늘날 이 신전은 스페인의 마드리드 시 한복판에 서 있다.
아스완 댐을 건설하는 도중 신전이 원래 서 있던 부지가 홍수와 파괴의 위기에 처했기에 옮겨왔던 것이다. 유네스코는 댐 건설로 인해 위험에 처한 아부 심벨 대신전과 데보드 신전을 비롯한 많은 유적들을 보호하게 도와 달라고 전 세계에 호소했다.
스페인은 이전에도 재정적인 면과 고고학적인 면에서 이집트에 적극적인 원조를 제공했으므로(이는 아부 심벨 신전을 포함하여 많은 소중한 유적을 보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이집트 정부는 데보드 신전을 스페인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프리카의 땅 위에 서 있던 신전은 1968년 마드리드로 옮겨졌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데보드 신전 [Temple of Debod]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리처드 카벤디쉬, 코이치로 마츠무라,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