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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Jun 09. 2023

토스카나의 와인, 슈퍼 토스칸 | 이태리 토스카나

틀을 깨는 시도

프랑스로 이사를 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일등주의 같은 편협한 생각을 더 이상 신봉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서울에 살 때는, 일등주의에 매달렸다. 많은 부분에서 그 누구보다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는 것이 어디 그런가. 잘 하는 영역은 적고, 있다손 치더라도 곧 더 잘하는 사람이 늘 나타났다. 내가 일등주의의 수혜를 입을 수 없다면 아들이라도 누리게 해주자,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땐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지만.


몇 년 간의 시행착오와 험난한 시간들을 다 뒤로 하고, 지금은 그저 숨쉬고 먹고 마시고 웃을 수 있는 건강함에 감사하면서 산다. 일등은 할 수 있는 사람이 하세요, 엄마는 그저 아들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겠습니다. 하면서 말이다.


인생 철학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이건 와인을 마시거나 고를 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이태리 와인 중 일품은 피에몬테 지역의 와인이라고 한다. 와인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


그럼, 토스카나 지역에 가서도 피에몬테를 마셔야 할까? 토스카나의 대부분 레스토랑에서는 피에몬테를 포함한 이태리 전역의 와인을 팔기 때문에 물론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와인을 마시고 음식을 고르는 것을 알거다. 신토불이라고 해야할까, 그 땅에서 자라고 그곳 사람들이 일구고, 그 위도에 내린 햇살과 물을 먹고 자란 음식과 와인을 먹고 마신다. 멀리서 수입한 진귀하고 비싼 식재료보다 갓 수확한 곡식, 채소, 과일, 최근에 도축한 고기는 맛있고 신선하다. 게다가, 현지인들의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런 생생함을 느끼려고 이 먼 길을 온 것이 아닐까?

토스카나의 와인이 일등은 아니라지만, 알고 보니 혁신의 아이콘이다.


프랑스에 AOC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DOC(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가 있다. 와인 품질을 관리하고 생산 규정을 정해 등급을 매기는데, 예전에는 해당 지역에서 허용된 포도 품종을 사용해서 와인을 만들어야 했다고 한다. 끼안티 클라시코에서는 산지오베제, 까나이올로 등을 사용해야 한다는 식이다.

허용된 범위 내 품종으로 블렌딩 해야 그 이름도 유명한 끼안띠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라는 레이블을 붙일 수 있었다.

규정이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속박하기도 한다. 이곳의 품종만 사용하면, 맛이 뛰어나지 않아도 DOC 등급을 딸 수 있다는 허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1971년 까다로운 이탈리아 와인법을 따르지 않고,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품종(까베르네 쇼비뇽)을 토스카나의 산지오베제와 블렌딩하여 와인 애호가들의 열광을 받게 한 와이너리가 바로 토스카나에 있다. 안티노리 와이너리의 티냐넬로.



와인 애호가들은 열광했지만, 당시 DOC 규정에서 벗어나 최하위 등급을 여러 해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티냐넬로, 솔라이아 등이 연속해서 성공하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니 역으로 제도가 개선된다. 1992년 DOC 제도가 개정되고 이제는 이탈리아 전통 포도를 사용하지 않아도 DOC 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명성을 익히 들어서 방문했던 안티노리 와이너리에서 엄마와 아빠는 시음도 하고, 와인 쇼핑도 하고, 테이스팅룸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그렇게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다행히 티냐넬로와 솔라이아가 다 품절이라 지출은 줄이고 그날 저녁 푸짐하게 먹었지.



이렇거나 저렇거나 와이너리라는 곳이 열두살 아들에게는 하나도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을텐데, 기다려주고 동생도 봐주어서 너무나 고맙다. 도대체 여기를 왜 와야 하고 왜 이렇게 오래 있어야 하냐고 물었지. 미안하고 또 고마워서 이야기 거리를 좀 찾아보았다. 아직 여전히 재미없는 이야기겠지만 스무살이 되고 와인이라는 것을 조금 알 것 같은 시기에 이 글을 다시 읽어주겠니?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와인에는 특히 잘 적용되니 말이다.


그런데 아들, 일등주의가 왜 위험한지 아니? (물론, 네가 많은 분야에서 일등을 진심으로 하고 싶고, 즐겁게 노력해서 일등을 한다면 그걸 말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만)


사람이 일등을 하면 계속 그걸 지키고 싶어서 기존의 방식과 성공했던 방법에 집착하게 되는데, 이건 위험하다.

모순적이지만, 한 번 일등을 했다고 해서 일등을 차지한 그 방식을 굳건히 고수하면, 금새 그 자리를 내줘야한다. 또 한편으로는 옹졸해지거나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볼 수가 있다. 성공방정식이 분명 존재하기도 하고 그 방정식을 매번 쓰고 매번 잘 되는 것 같은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예상컨대, 그 방정식에 들어가는 x(input)은 탄력적으로 적용할 거다.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차고 넘쳐서,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방식으로 게임의 룰이 진행되기도 또 변경되기도 한다. 그러니 유연하게 틀을 깨는 시도가 종종 세상을 바꾸지. 일등주의에 사로 잡히기 보단 깨인 눈과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적극 포용하고 기여하려는 생각을 가져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참, 잊지 말자. 일등주의를 신봉하지 않는 것과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완전히 다르다. 재미있고 헌신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매몰되지 않되 시간과 정성을 다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등보다는 내가 속한 분야의 과제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나갈 것인지, 그걸 고민하고 매진하면 좋겠다. 혁신은 거기서 나온다고 한다. "무엇을" 할 것인지 결심하기 전에, "왜" 그리고 "어떻게"를 먼저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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