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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Nov 15. 2023

파리 근교 산책| 프랑스 바르비종과 시슬리 마을

소녀같은 친정 엄마가 좋아한 곳들 1

엄마는 가족들이 남긴 밥과 반찬을 아깝다면서 먹곤 했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맛도 처음 같지 않은 음식들을 단순히 처리하려고 먹는 것이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왜 잔반처리를 해야 하나. 화까지 났다. 아무도 먹으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러는 거냐고 역정을 내보기도 했고, 음식을 좀 덜 하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어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엄마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 서울에서 프랑스 우리 집에 놀러 오고도 여전히 13개월 둘째 손주가 남긴 밥을 먹겠다고 버리지 말라고 나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졌다 졌어.

나는 엄마가 갓 만든 맛있는 걸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말은 이렇게 곱게 나가지 않았다. 신경질도 벅벅 냈다. "아니 이걸 왜 먹는다고 하는거야. 다 짓이겨 놓고 다 식고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딸 집에 삼 주 가량 놀러온 엄마는 어디를 특별히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남은 밥을 처리하듯이.

"너네 안 가본 데 있으면 가자"

"너 가보고 싶은 데로 가자"  


그러다가 엄마가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단다. 심심해 하는 엄마를 베르사유, 몽마르트, 고흐마을을 묶어서 가는 투어를 보내드렸었는데, 그때 가이드가 시슬리 마을이 예쁘다는 얘기를 했고, 엄마는 드디어 그곳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 파리 근교 소도시는 두 어 군데 묶어서 다니는 것도 좋아서, 시슬리 마을에서 30분 떨어진 바르비종도 같이 골라봤다.


시슬리 마을에 있는 la Porte de Bourgogne (Moret-sur-Loing)


화장품 시슬리 창립자가 살았던 마을이겠지 라고 생각한 엄마는 막상 가보니 기대보다 작고 아담하며, 화려한 기업 창립자도 아닌, 인상파 화가인 알프레도 시슬리가 살았다는 것을 알고는 약간 실망한 듯 했다. 그럴 땐, 이곳과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서 엄마에게 해주면 된다.


알프레도 시슬리는 이곳 성당 (노트르담)을 배경으로 무려 14점이나 작품을 남겼다. 성을 지키는 성스러운 동물부터 돌로 된 바위벽 사이로 자란 잡초까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인상을 담아 경이로운 성당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이다. 


아름다운 성당이야 많지만, 한 화가의 애정이 묻어나는 곳은 다르게 보인다. 

공간을 채우는 것도 사람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끈덕지게 애정을 보이고 창작물의 영감으로 삼는 공간은, 그래서 다르게 보인다. 

고흐의 성당 그림도 떠오른다. 

아침부터 화구를 챙겨 하루 종일, 몇 달 씩 성당 그림을 그리면서 그들은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이 마을을 관통하는 두 개의 문은 12-16세기 만들어졌다. 두 개의 두꺼운 벽과 도로를 막는 수 백 년 된 거대한 나무 문. 실제로 보면 그 수 백 년의 시간이 그대로 문에 남아있어, 갑옷을 입고 말을 탔던 중세 시대 사람들이 적의 침공을 막기 위해 성벽을 열고 닫는 모습이 그려질 듯 생생하다.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파리 입성 전 머물렀다는 호텔까지. 이곳에는 성당부터 나폴레옹까지 역사의 생생한 증언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노트르담 성당 &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문

이곳의 특산물인 보리 사탕은 사탕계의 시초에 가깝다고 한다. 작은 포장이지만 무쭐했다. 너무 달지 않고 맛도 있었다. 역시, 오랜 기간 살아남은 것들은 대단하다고 감탄하면서 원료를 확인했다. 

99프로 설탕, 1프로 프랑스산 보리였다. 설탕 덩어리를 아주 맛있게 먹었군. 역사가 갖는 힘과 브랜딩의 힘을 보리사탕에게서도 배워본다.


밀레의 생가. 바르비종에 위치.


바르비종은 밀레가 살았던 마을이다. 그의 첫째 부인이 죽은 후, 콜레라를 피해 바르비종으로 여생을 보내러 왔다고 한다.

갤러리들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예쁜 곳이다. 스테이크가 기가 막히게 맛있는 집이 있다고 하여 갔지만, 역시나 예약을 안 했더니 먹지를 못했다. 프랑스에서 맛집은 미리 예약을 꼭 해야 한다. 그리고, 점심/저녁 시간을 꼭 지켜서 방문해야 뭐라도 먹을 수 있다. 


이곳에서 밀레의 생가는 마을 중심에 있다.

제자였던 반 고흐와 같은 모티브를 두고 다르게 그림 그림들. 200년이 넘은 밀레의 스케치들이 무심하게 걸려있다.


이렇게 그림만 보고 나왔다면 재미가 조금 덜 했을 지도 모른다. 


이곳 관장님과의 대화가 좋았다. 여행에서 그저 지나가면서 보고 듣고 먹는 것도 좋지만, 그곳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껍질이 없는 듯한 그들의 일상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아저씨와 할아버지 그 중간 즈음 나이에 있는 관장님은 내가 그림을 살 사람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내가 밀레 생가 앞집 갤러리에서 한참 구경을 하고, 샤갈 그림을 보면서 감탄하고,엄마한테 샤갈 그림은 역시 다르다, 이러면서 종알종알 말을 하고, 밀레 생가에서는 판매하는 그림들의 가격을 유심히 보는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누구나 다 알아보는 명품 가방도 제대로 사본 적이 없는 데, 5천 유로 (700만원)부터 수 만 유로까지 하는 그림들을 어떻게 덜컥 사겠는가. 그래도 궁금증이 발동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그림을 샀다가 되팔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샀던 갤러리에 다시 되파는 것, 경매에 내보내는 것, 그리고 다른 갤러리에 판매를 하는 것. 

그런데, 팔리는 순간은 부동산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놓으면, 그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날 때 비로소 팔 수 있다는 것이다.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갸우뚱하는 나에게 할아저씨가 한 마디 더 건넨다. 노련하시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도 갤러리와 그림 매매가 활발하지 않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그렇네요?! 

문외한인 내가 무슨 그림 구매야,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회사들이 어떤 비전과 기술을 갖고 있는지 모르지만 주식도 사고, 어떻게 메커니즘이 돌아가는지도 모르지만 가상화폐도 산다. 그에 비하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구매하는 것은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몇 백, 몇 천 만원을 한 번에 내야 하는 (할부로 살 수는 없다고 한다) 엄중한 현실 앞에 나는 다음에 또 올게요, 하고 나섰다.  


엄마가 돌아가는 길에 묻는다. 

"언제부터 그림을 좋아했어?" 

나는 또 마음과 달리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몰라" 

정말 나는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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