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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Apr 01. 2020

마흔, 쫄지말자.

진격의 사십대를 시작하면서

'마흔' 온라인 교보에서 검색하면, 무려 512권의 책이 검색된다. 서른살도,  살도, 마흔 살만큼의 파괴력은 없다. 마흔은, 100 시대중요한 변곡점이다.   

 

마흔 전 내 집 마련, 마흔의 돈 공부, 마흔 살에 시작하는 주식 공부

(마흔 살엔 재정적 위기감이 더 엄습한다. '회사생활 몇 년 남았을까? 내가 언제까지 벌 수 있을까?')

마흔의 서재,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마흔이 되기 전에, 마흔 클래식에 빠지다

(취미를 갖거나 최소한 책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다)  

마흔,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아 (예전부터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새삼 부끄러워진다)

마흔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 (이미 40년을 그럭저럭 살았는데, 더 사는 데 용기까지 필요하군)

마흔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면 안될까?)

마흔 식사법 (먹는 습관도 바꿔야 한다)

걱정 말아요, 마흔 (갑자기 걱정이 시작되는 이 기분!)

마흔 공부법(공부법도 달라야 한다)

맙소사, 마흔 (맙소사, 마흔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나이였군요)


위아래로 치이는 불쌍한 '마흔살'을 핵심 독자로 타겟팅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한편으로는, 이만큼 마흔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이다. 세상 돌아가는 걸 어느 정도 아는 나이이기도 하고, 어른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앞으로 더 길게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불혹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귀가 팔랑거리며 유혹이 잘 되는 시기인 것!  



#도대체, 언제부터 마흔살이 이렇게 주목받는 나이가 되었을까?


19세기 유럽 평균 수명은 40-45 정도였다. 이후, 의학과 과학의 발달 덕분에, 1945 무렵 선진국의 평균 수명은 80세가 되었다. 40세에서 80세로 늘어나는  100년도 걸리지 않았다. 최근 연구 자료를 보면, 120세까지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인생 이모작이란 단어가 불과 십 수년 전에 나왔는데, 지금은 평생에 걸쳐 직업 서너개를 갖게 되는 시대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상당수 일자리는 AI로 대체할 수 있어, '좋아하는 일'을 하고, 퍼스널 브랜딩을 하며, 컨텐츠를 개발하고, 기술을 익히거나, 덕후가 직업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등 조언이 넘쳐난다.  

그러다보니, 19세기의 마흔 살은 차분히 생의 마감을 준비했다지만, 지금 마흔 살은 전례없이 빨리 발전하는 시대선조들은 미처 살아보지 못했던 생애를 길게 살아가야 한다는 명제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작 앞에 멈칫하게 되는 나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점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마흔은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해 방향성을 결정하기에 중요하다. 가족, 관계, , , 건강, 영혼, 삶에 필요한 구성요소들을 지금까지 열심히 일구고 체화시켜왔다. 이제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마흔인생 주기로 놓고 봤을 , 가장 바쁜 시기다.


골드만삭스에서는 임원 보고를   15 단위로 일정을 정한다고 한다.  15분이 1 unit(단위)인데, 왠만한 보고는  1unit, 그러니까 15 내에  끝내고, 진짜 중요한 보고는 무려 30, 2unit 할애한다고 한다.


하지만, 평범한 40 워킹맘도 15 단위로 시간을 쓴다. 15 내로 온라인 주문을 해서 냉장고를 채우고, 아이 학교 가기 15 전부터 막판 준비를 해서 보내고, 남편과의 통화도 15분을 넘지 않는다. (남편과 통화가 2unit을 넘는다면, 필히 심각한 일일 것이다) 미팅을  때도 2unit 지나면 팀원들 표정을 살핀다. 출근 준비를  때도 힘을 줘야하는 날이 아니라면 , 1unit 안에 화장과  입기를 끝낸다.

이렇게나 지금 당장 끝장을 내거나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정작 마음 속부터 하고 싶었던 것, 노후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리고, 살던대로 살는 것이 편하고 좋은 것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이제와서 도전을 하기에는 실패도 두렵고, 위험은 큰 부담이며, 지금 바짝 벌어야 노후를 안정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마흔, 마음의 지진을 받아들여도 되는 나이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앞으로 나가봐야 크게 다를 것 없고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예단.

지금까지의 삶이 곧 내 삶이고 정체성이라는 생각과, 마흔에 변화를 꾀했다가 부적응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고정관념도 멈칫거리게 한다.

그런데, 사회 돌아가는 것도 어느 정도   같고, 일상의 루틴도 어느 정도 잡혀 있고, 자꾸 다른 생각이 난다.  마음이 예전 같지가 않다.

한 벤처투자자가 툭 내뱉은 말이 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반쯤은 사실이고, 반쯤은 화가 나서다.

"이건 사견이긴 한데요, 여성분들은 보통 삼십대 중반이 넘어가면 이 업계에서 흔히 쓰는 말로 '전투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야심차게 시작하지만, 일상이 너무 바쁜거죠. 챙겨야 할 것도 많구요. 그래서, 투자를 할 때 아주 신중하게 접근합니다."

여자라는 조건을 걷어내니, 전투력이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나머지는 사견으로 뭉갰다. 그리고, 마흔 이후 전투력을 높여 자신만의 커리어 패스를 일군 사람들을 찾았다.




#박완서의 마흔  


나는 은근히 마흔 살을 기다렸는데, 그건 순전히 소설가 박완서의 글에 반해서 마흔 살이 되면 나도 나의 우상처럼   있지 않을까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철저히 엉터리 예측이었고, 충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비록 나라는 개인은 마케팅이라는 소비자행동을 둘러싼 효율과 효과의 세계에 인을 박았지만, 완서라는 존재는 꿈꿀  있는 자유를 놓지 않게  버팀목이었다.  


23살 무렵,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을 읽으면서 꺽꺽 거리면서 소리를 삼키며 울었다. 그녀의 따뜻한 시선과 필요한 묘사를 적절히 배치한 문장들, 과하지 않지만 몰입하게 만드는 사건들, 그 모든 것을 존경한다. 그래서, 꿈꾸는 자유가 있던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좋다.


편안하면서 섬세한 표현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위대한 능력을 그녀는 마흔 , 1970 여성동아 <나목> 당선되어 등단하면서부터 발휘한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마흔  

나의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사과를 좋아했다. 그래서, 무심코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집어들고 읽어줬는데, 읽을수록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책의 작가 역시 마흔 살에 이 첫 책을 출간하고 22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요시타케 신스케,  세계에 그림책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그는 광고회사에서 촬영용 인형이나 건물  미니어처를 만들었다. 그림은 퇴근 , 자신을 위해 그렸다고 한다.


사과를 깎아도 보고, 구멍을 뚫어도 보고, 사과 안에 들어가서 보기도 한다. 사과 행성을 그리기도 하고, 사과가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소리 내서 읽으니, 내 안의 어른이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사과를 대할 때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씻고 잘라서 입안에  넣기 바빴던 행동이 스쳤다.

매사에  그렇게 도구적인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어른을 위한 철학적 그림책을 작가는 마흔 살에 썼다.



#칸트의 마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삶은 대기만성 사자성어와 딱 어울린다.

가정교사, 시간강사,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철학을 연구했던 그는, 1770 46살에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정식 임용된다. 당시 46살이면 삶을 마감하던 사람들이 많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는 임용되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13년간 연구 계획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실제로 57살때부터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을 내놓음으로써 칸트의 삼대 비판철학서가 완결되고, 철학적 성찰의 결과물을 쏟아낸다.

칸트는 천재잖아, 라고 열외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 남들은 죽음과 마무리를 준비할 , 정교하게 설계한 연구 계획을 짜고 규칙적인 삶으로 이뤄낸 모습을 주목하고 싶다.  모습은 일반인도 충분히 따라할  있으니 말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마흔

파울로 코엘료는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음반회사 중역으로 활동하다, 마흔살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 길이 지금 그 유명한 산티아고 길이다. 이 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고, 첫 작품 <순례자>를 써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박혜란의 마흔

 아이를 키우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엄마가  적성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니 '학부모 노릇' 싫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지적 호기심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마흔, 여성학을 공부하여  이후 여성운동에  도움주고 계신 박혜란 박사, 호기심이 이끈 도전하는 이다.



# 라거펠트의 다섯

칼 라거펠트, 지금은 고인이 된 그는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지만, 전문 사진작가로도 명성을 쌓았다. 그가 사진을 시작한 년도는 1987년, 55살때였다. 샤넬 컬렉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시작했는데, 패션은 물론 인물, 누드, 정물, 풍경, 건축 등에서 상업성과 실험성을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테크닉 역시, 아날로그부터 디지털까지 다양하게 연구하고 실험했었다.



#화가 황규백의 일흔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이경성은 "황규백만큼 미국 화단과 세계 화단의 중심 깊숙이 파고든 사람도 없다"고 했다. 평생 송곳 바늘을 쥐고 판화를 새기던 황규백 화가는 70살에 회화를 하기로 결심한다. 결정을 내리면 단번에 했다는 그. 쉽지 않았기에 준비를 단단히 했고, 3개월간 이태리어를 공부한 뒤 이태리 전국을 돌며 프레스코화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물감 쓰는 법에 대한 감을 익혀 완전히 새로운 분야인 회화 화가가 된다. 그리곤, 나이 들어 붓으로 그리니 송곳 바늘로 한 달을 작업하는 것 보다,  오히려 크고 자유롭고 빠르게 작업할 수 있다고 한다.




아프락시스, 그리고 파격.  

모두 모아보니 ‘아프락시스’ 개념이다. 다른 세계로 가려면 스스로의 힘으로 벽을 뚫고 나가야 한다.

그러면,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다.

바둑에서는 파격라고 한다. 만화 <미생>에서는 지배적인 형식을 넘어서는 힘은 격식을 깨는 데서 나오며, 격식을 깨지 않으면 고수가   없다고 했다.



새로운 분야에 무턱대로 뛰어들자는 건 아니다. 경험을 토대로, 하고 싶었던 것,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증폭시켜줄 것, 아니면, 적어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 있으면, 그것을 얻기 위해 시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옌스 바이드너는 지적인 낙관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심사숙고 – 결정 – 추진 – 비판 무시의 4단계 프로세스를 충실하게 따르라고 한다.  


그는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는 게 더 견딜만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혼율이 높다고, 폐업률이 높다고 결혼이나 사업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시도하는 게 더 낫습니다. 삶엔 고통이 따르고 그 고통이 매우 빈번하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다만 그중 스스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난관을 보지 말고 난관에 부딪힐 때 마다 기회를 보세요.”


아직도 마흔살이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는 늦은 나이라고 할텐가!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오늘을 반복해서 사는 것이지 내일은 없다.

계산하고, 결정하고, 돌진하고, 성취한다. 한 손에는 낙관주의, 다른 한 손에는 체력을 겸비한 성실함을 쥐고 말이다.

준비는 유연하게, 생각은 진중하고 깊게, 행동은 빠르고 단단하게.  


큰 결정에 의외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나 둘씩 쌓인 생각과 경험이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촉발되고, 손가락 튕기듯이 가볍고 경쾌하게 새로운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김혜자 선생님의 '지금, 눈앞에 주어진 시간을  붙들어요. 살아보니 시간만큼 공평한   없어요' 되뇌이마무리를 하고 싶다.



사진 출처 : Unsplash 외

요시타케 신스케 및 황규백 출처: 김지수 <자존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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