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J는 알고 있었을까? 남편 H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2015년 어느 날, 남편이 찍은 사진을 같이 보면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뜬금없이 남편이 H와 함께 뚜껑 열린 스포츠카에서 엄지척 하고 찍은 사진이 튀어나왔다.
딱 보니, 포르쉐였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H는 애들이 5살, 3살인데 왜 2인용 포르쉐를 샀을까?"
"타고 싶었겠지. 개인의 자유잖아."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해서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자유, 평등, 묵비권 이런 단어가 나오면 촉을 세우고 긴장해야 한다. 이걸 더 파서 끝을 볼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묻을 것인지 판단도 해야 한다.
그날따라, 낱낱이 밝혀내고 싶었다.
엄청난 부자도 아닌데, 아이 둘을 뒤에 태우지도 못하는 포르쉐 컨버터블을 굳이 추가로 리스한 이유가 무엇인지말이다.
H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그렇지. 갑자기 스피드광이 되었을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연한 기회로 H는 동창A를 모임에서 만났는데 감정이 발전했단다. 심지어 남편까지 동행해서 셋이서 저녁도 여러 번 먹었다고 한다. 둘이서만 맨날 놀기는 심심한데 다른 사람들은 부를 수 없으니, 비밀 지켜줄 절친을 부른 것이다. 그리고 A는 본인의 존재에 대해 남자의 절친에게 알리고 싶었단다.
그래서 평소보다 H를 자주 만난 거구나. 이유 없는 행동은 없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H와 J와는 애들까지 동반해서 가끔 만나는 관계였다.
그 집 분위기는 정상적이냐고 물었다.
J는 주말마다 애들 데리고 시부모님 찾아가고, 종교에 심취했다고 했다. 시부모님이 이혼은 죽어도 안된다고 못 박으셔서, 거기에 매달린다고도 했다.
남편에게 다그쳤다. 그래서... 그래서 오빠는 바람난 베프에게 뭐라고 했어?
"뭐라고 하긴 뭘 뭐라고 해. 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거지. 다 큰 성인인데"
남편의 거짓말은 티가 난다.
일단 알았다고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날 밤, 나쁜 짓인 줄 알지만, 남편과 H의 카톡을 봤다.
남편은 H에게 J와 헤어지라고 얘기했다. 마음이 떠났다면, 사랑이 끝났다면, 더 이상 같이 할 이유가 없다면서.
머리가 하얘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신의, 사랑, 가족이라는 의미, 책임감. 이딴 단어들은 불타는 감정 앞에 가치를 잃고 낙엽처럼 굴러다녔다.
가정을 버리고 옛 동창과 정분 난 남자를 제 3자인 내가 어찌할 수는 없다. 더구나 J에게 티도 낼 수 없었다. 그녀가 무너질까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걸 내 입에서 발설했을 때 몰아칠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디테일을 모르면 좀 덜 고통스러울거야 라고 합리화했다.
그 뒤로 2년간 J의 표정은 점점 더 우울해졌고, 우리는 그들을 만나면 할 말이 없었다.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별 말을 안하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한 두번 끌려서 만날 수도 있다. 가정 밖에 멋진 이성은 차고 넘친다. 도처에 깔려있다.
그래도 2년은 아니다. 가정을 정리하던지. 불륜 감정을 정리하던지. 포스트잇처럼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하는 건 진짜 감정이 아니다.
부인에게도 동창 불륜녀에게도 못할 짓이다. 분명.
2-3년 정도 지났을까.
"아직 만나?" 물어보니, 헤어졌단다.
"그렇게 죽고 못사는 사이라더니, 왜?" 입을 씰룩거리며 도끼눈을 하고 나는 캐물었다.
"둘째가 너무 예쁘데. 그리고 관심 못 둔 사이에 애들을 너무 잘 키워놨더래."
“.........”
할 말은 많지만 다 하지 않겠다.
힐러리의 유명한 말이 생각났다. 빌 클린턴 성추문 이슈가 터졌을 때,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고.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중국인은 결혼을 성(城)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성 안에 있으면 공고한 성벽으로 보호를 받지만, 끊임없이 성 밖의 생활이 궁금하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변장하고 튀어나가 보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나가봐도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비슷하다.
성 밖에서는 성 안의 사람들을 동경한다. 하지만, 성 안의 생활은 성주의 지시에 따라야 하고, 규모에 따라 뒤따르는 노역, 부역, 감시도 감내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어디에 있느냐가 사람을 규정하는 것 같지만, 어떤 마음으로 있느냐가 우리를 규정한다.
왜 그렇게 남의 일에 열불을 내느냐고. 가만히 있었으면서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
부부의 세계 인기가 급상승하니, 이를 두고 많은 글들도 돌아다니는데, 그 중, 왜 가정두고 뻔뻔하게 바람피는 저 남자와 헤어지지 않냐고, 부인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는 평면적인 내용도 접했다.
며칠 전 남편에게 온 카톡을 우연히 봤다.
프사를 보니 20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젊음의 싱그러움이 사진 밖으로 뚫고 나오는 여자였는데, "OO님,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잘생기셨어요" 라는 말을 남편 카톡에 남겨놓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일로 만난 이성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되는 분위기인가?
아닌 것 같다. 요즘 사람 다 그렇게 살아도, 선을 넘는 '여지'를 남기는 대화는 안하는 게 맞다.
화딱지가 났다. 그녀의 의도도 의심스럽고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흘리고' 다닌 건지, 아니면, 남편이 그런 말을 하도록 '유도하고 다니는'건지도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 수 가 없었다. 잘 생기지도 않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길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단 한가지 확실한 것에 대해 쓰려 한다.
유부남이 멋있어 보인다면, 그건 그 유부남이 부인이라는 존재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했기 때문이다. 부부의 현재 모습은 그 둘의 상호작용과 일상 생활의 결과값이다.
분명히 그 유부남에게는 부인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 '균형', '정제됨', '배려'가 돋보인다면, 서로 잘 살아보겠는 피나는 노력, 그 가운데 피어나는 싸움과 화해가 만든 모습일 것이다. 무한 반복되는 정반합의 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성 밖에서 성 안의 사람과 생활이 궁금하다고, 성급히 담넘어 진입하면, 원치않던 지시와 부역과 세금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성 안에서 성 밖의 사람이 멋져 보인다고, 기를 쓰고 나가서 만난다 해도, 허니문 기간(honeymoon period)이 끝나고 나면 성 안이든 성 밖이든 공간의 차이가 주는 매력은 본질이 아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차이고, 믿음의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