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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Jun 23. 2022

나는 파리의 고령 임산부입니다.


둘째가 찾아왔다. 나는 이미 마흔을 넘었고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기쁨이라고 생각할 새도 없이, 수 만 가지 걱정이 밀려들어 쉽사리 임신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도 못했다. 피검사를 하고, 임테기를 해보고, 그래도 못 미더워 초음파로 '세포'를 확인한 뒤에야 인정했다.


올해 2~4월까지 임신 초기였다. 극도로 조심을 해야 하는 고령의 산모이지만, 2월 말에 한국에서 프랑스로 이사를 했고, 3월 말에는 박사과정 qualification 시험이 있었다. 나이 많은 여자가 임신했다고 일(공부) 소홀히 한다는 말 듣기 싫어서, 하루에 열 시간 이상 매일같이 공부를 했고, 학교에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14시간 비행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비행 경로가 변경되어 길어졌다...)을 해서 다시 서울에 다녀왔다.



그런데도 아무런 불만없는 듯 건강하게  자라줬다. 그리고, 이제 23주라서 눈코입 선명하게 얼굴이 보였다.



진짜 왔구나, 네가. 기쁨아.


그리하여, 둘째의 태명은 기쁨이.


자꾸 부르다 보니, 그냥 기뻐졌다.


이제 기력도  떨어졌고 바쁘기는  바빠졌는데, 이 쪼그만 아이를 언제 어떻게 키울 것인가.


여전히 걱정은 많지만, 오늘에 집중하기로 한다.


                    <파리에 위치한 초음파 병원 대기실>


파리에서 임산부로 정기 checkup을 받는 것은 한국보다 불편하다.


주위에서 좋은 산과 의사를 소개받았는데, 무조건 doctorib이라는 사이트에서 예약을 해야지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일명 '헝데뷰'를 해야 하는데, 명망있는 의사이다 보니 4월에 예약을 하고 6월에 진료를 받았다.


한국이었다면, 2주~4주에 한 번 가서 슥 받고 오면 될 일이었는데, 검진없이 깜깜이로 2달을 그저 보냈다.


다행히 딱히 아픈 곳이 없었지만, 혹시라도 아팠다면 앰뷸런스 타고 응급실 가서 영어할 줄 아는 사람 찾아 힘겹게 상황을 설명했었어야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 거린다.

한국에선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낳는 일, 피검사 등 제반적인 검사와 진행을 다 한 번에! 할 수 있는데, 여기는 다 따로 예약을 잡고 방문을 해야 한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한 번 가서 끝낼 일을 정말 여러 번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2달만에 겨우 6월에 만났다는  '사반'이라는 나의 의사가 피검사를 해서  결과지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럼 나는  근처에 랩에서 피검사를 예약하고,   방문해서 검사를 하고,  결과지를 받으러 다음날  운전해서 갔다.

그걸 받아야 다음 검진  산과 의사 '사반' 미팅을 제대로  수가 있다.


게다가 초음파는  초음파 전문 의사에게 가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병원에 찾아갔었다.


아니   번에 끝낼 일을 이렇게 여러  사람을 오라가라 하는거야!!! 라고 외쳐봐야,  정신건강만 힘들어지고 이곳 엄마들은  이런 과정을 거쳤다니.. 참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오늘은 초음파 검사를 했고, 영어를 거의 못하는 초음파 전문 의사가 봐주었다.


나에게 무얼 물어봤으나, 알아들을  없어 대답할  없었다. 그래도 물어볼 만한  뻔하니, "지금 23 정도 됐다."라고 영어로 짧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질문이 아니었는지 뭐라뭐라 또 물어본다. 나는 똑같은 답을 또 해주었다. 다시 물어봐야 소용이 없을 거라는 엄중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할아버지 의사샘은 무려 40분간 초음파를 봐주었다. 계속해서 !@%#$^ 정상, #$%$&$&$ 정상 이러는데, "정상"이라는 단어 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둘째가 진짜 궁금하고 계속 지켜보고 싶었지만, 나는 잠들어버렸다.


그렇게 다 "정상"이라는 말만 끝으로 듣고, 잠에서 깨 나왔다


이제 빨리 큰 아들 픽업하러 가야 하는데, 이 병원은 신용카드를 받지 않았다. 총 180유로가 나왔고 (초음파 보고 20만원 넘는 금액이라니!!!) 체크 또는 현금만 받는데, 수중에 100유로 한 장 있었다. 이거라도 일단 받아주시고, 담에 3차 보러 왔을 때 나머지 주겠다. 하고 나왔다.


후. 정말 단 하나도 쉬운 것이 없구나.


하지만, 기쁨이, 너 얼굴을 보니 이젠 진짜 실감 난다.


105뒤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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