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찾아왔다. 나는 이미 마흔을 넘었고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기쁨이라고 생각할 새도 없이, 수 만 가지 걱정이 밀려들어 쉽사리 임신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도 못했다. 피검사를 하고, 임테기를 해보고, 그래도 못 미더워 초음파로 '세포'를 확인한 뒤에야 인정했다.
올해 2~4월까지 임신 초기였다. 극도로 조심을 해야 하는 고령의 산모이지만, 2월 말에 한국에서 프랑스로 이사를 했고, 3월 말에는 박사과정 qualification 시험이 있었다. 나이 많은 여자가 임신했다고 일(공부) 소홀히 한다는 말 듣기 싫어서, 하루에 열 시간 이상 매일같이 공부를 했고, 학교에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14시간 비행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비행 경로가 변경되어 길어졌다...)을 해서 다시 서울에 다녀왔다.
그런데도 아무런 불만없는 듯 건강하게 잘 자라줬다. 그리고, 이제 23주라서 눈코입 선명하게 얼굴이 보였다.
진짜 왔구나, 네가. 기쁨아.
그리하여, 둘째의 태명은 기쁨이.
자꾸 부르다 보니, 그냥 기뻐졌다.
이제 기력도 좀 떨어졌고 바쁘기는 더 바빠졌는데, 이 쪼그만 아이를 언제 어떻게 키울 것인가.
여전히 걱정은 많지만, 오늘에 집중하기로 한다.
<파리에 위치한 초음파 병원 대기실>
파리에서 임산부로 정기 checkup을 받는 것은 한국보다 불편하다.
주위에서 좋은 산과 의사를 소개받았는데, 무조건 doctorib이라는 사이트에서 예약을 해야지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일명 '헝데뷰'를 해야 하는데, 명망있는 의사이다 보니 4월에 예약을 하고 6월에 진료를 받았다.
한국이었다면, 2주~4주에 한 번 가서 슥 받고 오면 될 일이었는데, 검진없이 깜깜이로 2달을 그저 보냈다.
다행히 딱히 아픈 곳이 없었지만, 혹시라도 아팠다면 앰뷸런스 타고 응급실 가서 영어할 줄 아는 사람 찾아 힘겹게 상황을 설명했었어야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 거린다.
한국에선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낳는 일, 피검사 등 제반적인 검사와 진행을 다 한 번에! 할 수 있는데, 여기는 다 따로 예약을 잡고 방문을 해야 한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한 번 가서 끝낼 일을 정말 여러 번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2달만에 겨우 6월에 만났다는 그 '사반'이라는 나의 의사가 피검사를 해서 그 결과지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럼 나는 집 근처에 랩에서 피검사를 예약하고, 그 날 방문해서 검사를 하고, 그 결과지를 받으러 다음날 또 운전해서 갔다.
그걸 받아야 다음 검진 때 산과 의사 '사반'과 미팅을 제대로 할 수가 있다.
게다가 초음파는 또 초음파 전문 의사에게 가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병원에 찾아갔었다.
아니 왜 한 번에 끝낼 일을 이렇게 여러 번 사람을 오라가라 하는거야!!! 라고 외쳐봐야, 내 정신건강만 힘들어지고 이곳 엄마들은 다 이런 과정을 거쳤다니.. 참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오늘은 초음파 검사를 했고, 영어를 거의 못하는 초음파 전문 의사가 봐주었다.
나에게 무얼 물어봤으나, 알아들을 수 없어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도 물어볼 만한 게 뻔하니, "지금 23주 정도 됐다."라고 영어로 짧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질문이 아니었는지 뭐라뭐라 또 물어본다. 나는 똑같은 답을 또 해주었다. 다시 물어봐야 소용이 없을 거라는 엄중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 할아버지 의사샘은 무려 40분간 초음파를 봐주었다. 계속해서 !@%#$^ 정상, #$%$&$&$ 정상 이러는데, "정상"이라는 단어 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둘째가 진짜 궁금하고 계속 지켜보고 싶었지만, 나는 잠들어버렸다.
그렇게 다 "정상"이라는 말만 끝으로 듣고, 잠에서 깨 나왔다
이제 빨리 큰 아들 픽업하러 가야 하는데, 이 병원은 신용카드를 받지 않았다. 총 180유로가 나왔고 (초음파 보고 20만원 넘는 금액이라니!!!) 체크 또는 현금만 받는데, 수중에 100유로 한 장 있었다. 이거라도 일단 받아주시고, 담에 3차 보러 왔을 때 나머지 주겠다. 하고 나왔다.
후. 정말 단 하나도 쉬운 것이 없구나.
하지만, 기쁨이, 너 얼굴을 보니 이젠 진짜 실감 난다.
105일 뒤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