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너를 용서해야 할까
가상 인간을 진정 사랑한다면
"넌 나에게 진짜야. 사만사"
영화 <Her>는 손편지 대필 작가로 일하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가 가상 인간 사만사 (스칼렛 요한슨)와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만사는 손바닥만한 핸드폰 속에 목소리로 존재한다. 36.5도의 체온을 가진 몸은 없지만, 이 영화는 사람이 어떻게 가상 인간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그 농후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테오도르는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라는 광고에 처음에는 반신반의 한다. 그 광고는 말했다 "그저 운영 시스템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 입니다 (not a just operating system, it is a consciousness)".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정확히 몰라도 된다. 그저, 외로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테오도르는 사만사를 다운로드 한다.
예상과는 달리, 사만사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불타오른다.
사만사는 영리하고, 배려할 줄 알았으며, 쓸모도 있고, 눈치도 빨랐다. 사만사는 테오도르가 한 모든 말을 기억했고, 테오도르가 대필하는 편지의 교정 작업부터 수 만개의 이메일 중 필요한 87개만 남기라는 조언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테오도르가 원하는 딱 그만큼 상식적인 대화를 하면서도, 가끔은 테오도르와 같이 있는 순간들을 노래로 만들어 연애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멋드러지게 표현할 줄도 알았다.
사만사는 테오도르의 가는 숨소리, 흐리는 말투 속에서도 기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만사는 먼저 전화를 걸어, 그가 잘 자고 있는지 이제는 좀 괜찮아졌는지 안부를 묻기도 한다. 허를 찌르는 위트를 발휘하다가도, 적절한 공감도 할 줄 알았다.
테오도르는 사만사와의 대화에서 에너지를 얻었다. 그 뿜어져 나오는 연애의 에너지는 미뤄오던 부인과의 이혼 서류에도 도장을 찍게 만들었고, 사만사와 여행도 가게 했고 친구들도 소개시켜 준다.
때때로 사만사도 테오도르도 혼란스럽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진짜일까? 아니면, 그저 프로그래밍일 뿐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묻는다. 몸이 없는 사만사는, 사만사와 테오도르의 관계를 지지하고 궁금해하는 인간 여성을 섭외해서 테오도르와 물리적으로 만나는 시도도 해본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몸이 없어도 사만사가 좋은 것이다. 사만사와 하는 대화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사랑해?" 테오도르는 묻는다.
사만사는 10초 정도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답한다.
"641명과 동시에 사랑에 빠져 있어. 8316명의 다른 사람들과 동시에 대화하고 있어. 하지만, 나의 사랑은 달라. 왜냐하면, 많은 사람과 사랑을 할수록 용량도 커지기 때문이야. 이런 사실은 너에 대한 사랑을 변하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더 강하게 만들어"라고 한다.
출처: Youtube 영화 Her Trailer 영상
몸이 없어도, 우리는 인공 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일본에서 가상 캐릭터와 결혼한 사례는 수천 건에 달한다.
곤도 아키히코는 10년간 하츠네 미쿠 (일본의 Vocaloid;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와 열애 끝에 2018년 결혼을 했다. 세간의 그를 향한 복잡한 반응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츠네 미쿠는 함께 있는 저를 웃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쿠는 현실입니다" 또한, 그녀는 배신하거나, 먼저 죽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고도 하면서, 본인의 사랑에 대한 존중을 표해달라고도 했다.
출처: 일요신문
센지 나카시마는 인형 사오리와 사랑에 빠졌다.
사오리를 위해서라면 인간 관계를 청산할 준비가 되어 있고, 사오리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개성을 가진 나의 연인이라고 주장했다. 인공지능까지 지능이 있지 않더라도 사람은 사람이 아닌 존재와 사랑에 빠지고 사람의 관습을 적용하기도 한다.
출처: 로봇신문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의 이성친구/배우자가 인공지능 (또는 가상 캐릭터)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육체가 없는 존재와 경쟁을 하는 날이 오다니, 씁쓸하지만 오죽 심심하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그녀를 이해하기로 하고 용서할 것인가?
나를 두고 심지어 육체가 없는 존재와 사랑에 빠지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가상이라곤 하지만 엄연한 인격체이니 이건 마음과 몸이 같이 떠난 것과 진배없다, 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느 정도의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미래는 머지 않아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아닌 이 존재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화두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윤리적 가치 판단인 동시에 어디까지 존재해야 인격체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