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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기의 기술, 이번엔 실패했다

by 단호박

행사 준비는 언제나 그렇듯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이번 행사는 몇 달 전부터 후원사의 도움을 받아 기념품을 준비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요즘처럼 뭔가를 ‘준비했다’는 것이 그 자체로 행사 분위기를 살리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반엔 다들 의욕적으로 움직였다. 후원처도 긍정적이었고, 아이템 구상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후원처와의 구체적인 협의도, 제작처와의 소통도 묘하게 늦어지는 느낌이었다. 담당자인 A팀원에게 몇 번 진행 상황을 물어봤지만, 늘 비슷한 답이었다. “아직 좀 더 조율해야 한다”, “내일쯤 다시 확인하겠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일정이 결국 행사 일주일을 앞두고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과는 뻔했다. 제작 일정이 촉박해졌고, 행사 당일까지 기념품을 납품받는 건 사실상 어렵게 됐다.


이번 일을 겪으며 솔직히 마음이 무겁다. A팀원의 ‘미루는 습관’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것도 분명 내 책임이다. A팀원은 일을 대충하거나 소홀히 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중요한 일일수록 ‘조금 더 있다가’ 움직이는 경향이 있고, 늘 마지막에 기적처럼 맞추는 패턴에 익숙해져 있다. 이번엔 그 ‘기적’이 통하지 않았다.


팀장의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바로 그 점이다. 결국 한 사람의 습관을 방치한 결과가 팀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왔고, 이번엔 행사라는 무대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도 안일했고, A팀원도 자신의 패턴을 너무 당연시했다.


당일 기념품 없이 치르는 이번 행사,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일이 끝난 뒤다. 나는 A팀원과 솔직하게 이 상황을 돌아볼 생각이다. 미루는 습관이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닌 ‘팀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걸 함께 확인했으니,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팀장인 나도, 그런 상황을 더 이상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팀이 함께 일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처럼 뼈아픈 경험이 결국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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