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일을 시작했을 땐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거워질 줄은 몰랐다. 그냥 내 자리에서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달장애인 정책’, 특히 ‘탈시설’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서부터 이건 단순한 행정이 아니란 걸, 점점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 수없이 오가는 공문들. 그 속엔 늘 ‘숫자’가 있었다. 지역사회로 나간 인원 수, 자립지원 주택 입주 현황, 지원 예산. 그런데 그 숫자들 뒤에 숨겨진 얼굴들을 나는 현장에서 직접 보고 말았다.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는 사람들, 그저 한 번의 사인으로 시설을 떠나고, 그 이후 삶이 무너져버린 사람들.
나는 현장에서 그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참담했다. 탈시설을 이상적으로 포장한 사람들이 얼마나 현실을 모르고 있는지, 혹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아무런 선택권 없이 거리로 내몰리고, 보호도 돌봄도 없는 상태로 자립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엔 사망, 노숙, 가족의 절망 같은 씁쓸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장에서 분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이들,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면서도 중증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버티는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 위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내겐 거창한 권한도, 정치를 바꿀 힘도 없다. 다만,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었다.
사실, 이 싸움은 외롭다. 탈시설이라는 단어는 마치 모두가 꿈꾸는 이상처럼 포장돼 있다. 거기에 반대하는 순간, 마치 ‘반인권적’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진짜 인권은 당사자의 선택에서 시작돼야 한다. 강요된 자립, 준비 없는 탈시설은 인권이 아니라 방임이고, 그 대가는 가장 약한 이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오늘도 내 책상 위엔 또 다른 수치와 계획들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제 나는 숫자만을 보지 않는다. 그 숫자 뒤에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 그들의 말 없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반드시 버틸 것이다. 때로는 고립되고, 때로는 벽에 부딪혀도,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싸움은 결국 반드시 이긴다고 믿는다.
그 시작은 분명하다.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현장의 실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수다. 특히 말을 할 수 없는 중증·의사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 보호가 최우선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탈시설을 강요하는 정책이 아닌, 당사자의 선택권을 온전히 존중하는 정책 추진만이 진짜 변화의 길임을, 나는 믿는다.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정말 외면하지 않을 거냐"고. 그리고 나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대답한다. "그래, 더는 외면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