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사람에서 살아내는 사람으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수년째 몸담고 있는 나는, 수많은 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수많은 ‘강사’들을 만나왔다. 인권강사, 장애인식개선 강사, 성인지감수성 강사, 다양성 교육 강사 등등. 강사들의 이력서를 보면 놀라울 정도로 화려하다. 박사학위, 다년간의 강의 경력, 각종 자격증과 인증서들. 강의자료는 세련됐고, 표현력도 뛰어나다. 분명히 ‘잘 짜여진 강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에 남는 게 없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대체 우리는 ‘실천가’를 만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지 말을 잘하는 ‘이야기꾼’을 소비하고 있는 걸까?
며칠 전, 한 인권강사의 강의를 들었다. 말은 유려했고, 아이스브레이킹도 그럴듯했으며, 참석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강사는 과연 인권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일까?” 그저 인권이라는 주제를 머리로 공부하고, 말로 풀어내는 데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권’이라는 단어는 무겁다. 현장에서 수많은 이용자들이 겪고 있는 부당함, 차별, 불평등. 그 한가운데에서 말하는 것이 진짜 인권강사다. 강단에서의 강의가 아닌, 거리에서의 연대, 조직 내 권력 구조와의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동료와 클라이언트의 권리를 위해 불편한 이야기를 꺼낼 줄 아는 태도. 이것이 진짜 강사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강의는 기술적이다.
퍼실리테이션이 어쩌고, 참여형 수업이 어쩌고, 재미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작 강사가 살아온 이야기, 그가 싸워온 현장, 그가 감내한 아픔은 보이지 않는다. '인권은 이러이러해야 합니다'라고 설명은 하지만, 그 말에 피가 통하지 않는다.
왜냐면, 실천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바란다.
우리 사회복지 현장의 강사들이 다시 실천가이자 운동가가 되기를.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말한 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장애인식개선 강사라면, 장애인의 노동권과 이동권 문제에 어떤 입장을 갖고 싸우고 있는지, 인권강사라면 동료 복지사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강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사회 변화의 촉진자’여야 한다.
지식은 책으로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행동하는 사람을 만나야 마음이 움직이고, 세상이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