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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란, 말 잘하는 자리가 아니다.

좋은 회의는 준비된 질문에서 시작된다

by 단호박

전국 단위의 큰 기념행사가 끝난 직후, 전국의 실무자들이 모여 종합 평가회의를 가졌다. 몇 달간 함께 달려온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노고를 인정하고, 결과를 정리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회의를 준비한 담당자는 그간의 진행 과정과 성과를 잘 정리한 회의자료를 공유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자료를 바탕으로 회의가 진행될 거라 예상했다. 실무자로서 느낀 점들을 조리 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정리도 해두었다.


그런데 회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회의를 주관한 대표자는 전체 회의 자료에 기반한 흐름보다, 본인이 정한 질문을 참가자에게 하나씩 던지며 ‘순서대로 돌아가며 답하는’ 방식으로 회의를 이끌었다. 질문은 사전 공유되지 않았고, 공통의 프레임 없이 즉석에서 질문과 응답이 이어졌다. 당연히 참가자들은 당황했다. 어떤 질문은 너무 포괄적이었고, 어떤 질문은 갑작스러웠다. 질문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서둘러 답을 하다 보니, 핵심을 벗어나거나 맥락이 어긋나는 답변도 나왔다.


진행자는 그런 답변에 대해 “질문을 제대로 이해 못했다”며 참가자를 나무랐다. 분위기는 조금씩 경직되었고, 그 자리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흐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많은 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꺼내지 못한 채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 자리를 나오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질문을 미리 공유했더라면 어땠을까.”

질문을 하루 전이라도 공유했더라면, 참가자들은 회의에 더 진지하게 임하고, 본인의 경험을 정리하며, 맥락 있는 이야기를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에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회의가 되었을 것이다.


좋은 회의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더 좋은 회의는 준비된 질문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에서 비롯된다.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려는 회의가 아닌, 각자의 시선으로 경험을 나누고 미래를 함께 모색하는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회의란 ‘잘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성장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실무자들이 중심이 되는 회의라면, 그들의 목소리를 꺼낼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짜 평가가 일어나려면, 먼저 진짜 경청이 가능한 구조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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