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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함’이라는 착각

함께 일 잘하게 만드는 사람

by 단호박

후임 과장으로 A과장이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직 안팎에서는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일을 잘하니까.” 그 말이 마치 충분한 이유가 되기라도 하듯,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A과장은 분명 일을 잘한다. 주도적이고 책임감도 강하며, 결과에 대한 집중력이 대단하다. 추진력, 기준, 속도—모두가 인정하는 역량이다. 다만, 그 역량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길고 짙다. 과업 중심적이고 욕심이 강하다 보니, 후배들에게는 ‘엄한 팀장’, ‘버거운 상사’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의 업무지도에 눈물을 흘렸다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그 경험 덕분에 성장했다는 직원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가끔 들리는 이야기로 A과장은 상급자나 팀장, 동료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그들을 무시하거나, 때론 대놓고 패싱해버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일이 막히지 않게 하려는 나름의 방식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의 신뢰 구조는 균열을 겪는다. 개인의 유능함이 공동체를 위협하는 지점—바로 그곳이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사업지원과는, 성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고, 빠른 실행보다 느린 설득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자리다. 여기서는 서로 다른 조직과 사람들 사이의 속도와 온도를 조율하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각자의 고유한 상황을 이해하고, 엉킨 선을 풀 듯 천천히 협업의 틀을 만들어가는 인내심도 요구된다.


나는 일을 잘해서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다.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일 잘한다’는 말에 쉽게 안심하지 못한다. 중요한 건, 이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냐는 질문이다.


모든 자리에 일 잘하는 사람이 맞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꼭 맞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우리가 더 신중해야 한다. 조직은 능력 있는 사람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조직은 건강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일 잘함’은 조직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함께 일 잘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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