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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닌다는 말이 왜 어색했을까?

소명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언어와 정체성에 대하여

by 단호박

며칠 전, 신입직원과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했다. 프로그램 중 한 가지 순서로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 중 몇몇은 자신이 소속한 기관을 “회사”라고 표현했다. 순간, 나는 문득 ‘우리는 회산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회사(會社): 상행위 또는 그 밖의 영리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사단 법인. 주식회사, 유한 회사, 합자 회사, 합명 회사의 네 가지가 있다.”


사전적인 정의에서 보듯이, 회사는 본질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복지 조직은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다. 단순히 명칭의 차이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작은 언어의 차이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요즘 들어 동료들 사이에서도 “우리 회사는요…”, “저희 임직원들은…”과 같은 표현을 종종 듣는다. 물론 ‘직원’이라는 단어는 일정한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니 틀린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그 어감이 자꾸만 불편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서로를 부를 때 흔히 쓰는 말은 ‘동료’이고, 때로는 ‘선배’, ‘후배’라는 말로 마음을 나누는데, 언제부터인가 스스로를 ‘임직원’이라 지칭하며 점점 낯설고 건조한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아닐까.


언어는 조직의 문화를 반영하고, 때로는 문화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단순한 말버릇을 넘어서,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에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는 독일어에서 ‘직업’을 뜻하는 단어 Beruf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단어는 rufen(부르다)의 수동태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름을 입은 것’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는 직업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의 부름’이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부름을 입었다’는 감각은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갖느냐 못지않게,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느냐를 말해준다. 그 일이 고상한 일이든, 소박한 일이든, 하느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라면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소중하다.


고대에는 노동이 천박한 일로 여겨졌다. 노동은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라 여겨졌고, 자유 시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고귀한 삶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세 수도사들은 땅을 갈고 밭을 일구며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졌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영혼에 해롭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바로 그 정신이 수백 년 뒤 산업화의 초석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믿음이다. 단순히 월급을 받는 수단을 넘어, 하느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라면 그 어떤 일이든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회사를 다니는 ‘임직원’이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부름을 입은 ‘동료’이고, 함께 걷는 ‘사명 공동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그 믿음과 정체성에 맞게 다시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그 작은 단어 하나의 변화가, 우리 조직을 더 따뜻하고 살아 숨 쉬게 만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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