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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왜 나르시시스트를 선택하는가?

그들은 유능해 보일 뿐이다.

by 단호박

어느 기관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나는 팀장이었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없었다. 회의에 참석해도 내 의견은 고려되지 않았고, 주요한 결정은 이미 다른 통로를 통해 이뤄진 후였다. 팀원들은 나를 거치지 않고 일했고, 어느 순간부터 A부장은 나를 생략한 채 팀원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팀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선 A부장을 이해해야 했다.

A부장은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였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강했고, 자신의 영향력이 조직을 움직인다고 믿었다.

비판에는 민감했고, 자신의 권위를 흔드는 듯한 모든 행동에 강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보통 권한이 약한 누군가에게 투사되곤 했다.


내 팀의 모든 팀원들은 A부장의 ‘무리’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A부장의 기대를 빠르게 읽고 먼저 움직였고, A부장은 그런 그들에게 정보를 먼저 흘려주며 신임을 쌓았다. 나만 그 흐름에 속하지 못했고, 아니 어쩌면 속하지 않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는 예상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A부장이 메신저에 전 직원 대상의 지시사항을 공지했지만, 그 내용은 애매하고 모호했다. 직원들 모두가 이해에 혼란을 겪었다. 나는 그 상황을 보다 못해, “이런 뜻으로 이해됩니다”라는 정리 메시지를 조심스럽게 남겼다. 그러나 잠시 후, A부장은 사무실로 들어와 전 직원이 있는 자리에서 내게 묻지도 않고 공개적으로 나무랐다.

“왜 내가 쓴 걸 당신이 해석해서 다시 공지했냐”는 말과 함께.

나는 당황했지만 침착히 답했다.

“직원들이 혼란스러워해서, 제가 이해한 바를 정리했을 뿐입니다. 뜻이 달랐다면 죄송합니다.”

그는 나를 눈으로 위아래로 훑더니 짧게 말했다.

“그럼 그 일, 팀장이 하세요.”


그 순간 나는 더욱 확신하게 됐다.

A부장에게 내가 한 행동은 협력이나 보완이 아닌 ‘권위에 대한 침해’였다는 것.

그에게 있어 조직은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도구여야 했고, 해석은 곧 통제력 상실로 느껴졌을 것이다.


조직은 왜 나르시시스트를 선택하는가?


그들은 겉보기에 유능해 보인다.

회의에서는 누구보다 자신감 있게 발언하고, 항상 일을 ‘내가 하겠다’며 앞장선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자신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강조하고, 상사에게는 듣고 싶은 말을 정확히 전달한다.

문제는 그 모든 태도가 실제 성과보다 권력 확보에 초점을 둔 전략이라는 점이다.


내가 겪은 A부장의 무리 중 한 사람도 그랬다.

그는 회의 전에 A부장을 찾아가 안건을 ‘정리해드리고’, 회의 중엔 마치 즉석에서 떠올린 듯 A부장의 말을 재정리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 장면만 보면 완벽한 호흡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전 조율된 각본이었다.

그는 동료와의 협업보다 A부장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고, 회의 뒤에도 종종 A부장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며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그는 늘 상사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 있었고,

조직 내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포장됐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와 협업하기를 꺼렸고, 정보는 닫혔으며, 소통은 위계로만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그런 인물을 신뢰했다.

포장된 유능함, 과시적 자신감, 그리고 상사를 향한 과잉 충성이 조직 내에서는 능력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인물이 속한 팀은 잦은 불협화음과 책임 회피, 권위 중심적 분위기로 흔들리게 되었다.


조직이 나르시시스트를 선택하는 순간, 협업은 위계에 가려지고, 성과는 충성에 묻힌다.

건강한 조직이란, 누가 큰소리를 내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말이 공감되고 협력으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어야 한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팀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경험은 내가 조직을 보는 눈을 새롭게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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