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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운 것은 쓰레기였을까, 그분의 삶이었을까

by 단호박

나는 신입 사회복지사 시절, 아직 세상을 온전히 다 알지 못한 채 열정만 앞섰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만난 한 어르신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다.


그분은 굽은 허리로 하루 종일 골목을 돌며 폐지를 주워 생활하셨다. 국가유공자였지만,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렵게 사셨다. 내가 처음 찾아갔을 때, 어르신의 집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쓰레기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동네 주민들은 악취가 난다며 민원을 넣었고, 나는 서둘러 현장으로 향했다.


“이거 다 치우셔야 해요.”


조심스레 말씀드리자, 어르신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하셨다.


“이건 다 내 거야. 다 돈 되는 거라고. 남의 집에 신경 쓰지 마!”


그때의 나는 어르신의 삶과 마음을 다 들여다보지 못했다. 나는 청결과 안전만을 생각했고, 주변 민원 해결에 급급했다. 몇 달 동안 설득을 이어가 결국 청소를 허락받았다. 봉사자들과 함께 반나절 동안 집안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니, 집은 한결 깨끗해졌다. 그날 나는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 어르신의 생활이 조금은 나아지겠지.’


하지만 몇 달 후, 어르신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서 묵직한 죄책감이 올라왔다. 혹시 내가 그렇게 밀어붙인 청소가 어르신께 큰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어르신의 삶이었는데, 정작 그 삶의 호흡을 내 마음대로 바꿔버린 건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회복지사는 누군가의 삶에 함부로 들어가 변화를 강요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의 역할은 그들의 삶과 보조를 맞추어 함께 걷는 것이어야 했다. 쓰레기처럼 보였던 것들은 어르신의 생존의 흔적이었고, 세상과 연결된 마지막 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 깊이 남아,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한 발짝 물러서게 한다. ‘이 사람이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함께 걷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살아가는 길을 붙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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