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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냄새로 시작된 아침

by 단호박

10여년전 아침 출근길, 아직 사무실 문도 열기 전이었다. 멀리서 술 냄새가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곧, A씨가 사무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복지사 양반, 있잖아… 나 억울해서 죽겠어.”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밤새 쌓인 설움과 한을 쏟아냈다. 처음엔 그저 하소연이었는데, 어느 순간 목소리가 높아졌다.


“담배 값 좀 줘! 술 한 병만 사줘!”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동료 한 명은 서류를 들고 슬쩍 창고로 들어갔다. 또 다른 동료는 어느새 뒤문으로 사라졌다. 남은 직원들은 모르는 척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마치 시간 속에 나 혼자만 남은 듯한 순간이었다.


어느 날은 사무실 안으로 소주병이 굴러 들어왔다. 창문턱에는 담배꽁초가 날아들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내 일이 맞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때 내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불쾌감이 가득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 한쪽에서 다른 감정이 스며왔다.


버려진 방 한 칸, 끊어진 관계, 되풀이되는 빈곤. 알코올은 그에게 남은 마지막 피난처였을 것이다. 욕설과 위협 뒤에 숨은 건 세상을 향한 분노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한 깊은 절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는 어디까지 이들을 이해해야 할까. 그들의 욕설과 위협, 무례까지… 다 받아들여야 할까.”


사회복지사의 일은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일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다 품기에는, 내 마음도 이미 여러 번 부서져 있었다. 이해와 피로 사이에서 흔들리던 시간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세상이 조금 달라졌다. 비상벨과 직원 보호 매뉴얼, 심지어 호신용 도구가 생겼고, 알코올 의존자를 위한 전문 상담과 지원 체계도 조금씩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술 취한 얼굴과

창고로 숨어버린 동료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저릿해진다.


사회복지사는 슈퍼맨이 아니다. 때로는 지치고,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연민이
다시 나를 그 자리에 서게 한다. 무조건 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선을 세우고, 그 선 안에서 진심으로 연민을 품고, 오늘도 한 걸음… 그들의 곁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사회복지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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