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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죽거리는 A과장

by 단호박

올해 승진자 교육을 준비하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교육 프로그램 하나를 기획하려면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프로그램 구성, 강사 섭외, 자료 준비, 진행 동선까지 챙겨야 하는데, 이번에는 교육 마지막에 퍼포먼스까지 있었다.


‘ 퍼포먼스 진행은 누가 하지? 멘트는?’
지금까지는 총괄부장이 맡아오던 일인데, 얼마전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부장이 오면서 그 일을 부탁드리기에는 죄송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맡기로 했다.


“이 정도야 뭐… .”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참고할만한 진행 원고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사무실 문이 ‘철컥’ 하고 열리더니 A과장이 나타났다.

원고를 힐끗 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이거 그냥 하면 되는 거잖아요. 뭐 연습이 필요해요? 그냥 순서대로 하면 되는데, 뭐 어려운 거라구요.”


순간 나는 화면 속 컴퓨터 마우스 포인터처럼 멈춰 섰다.

‘…어?’

‘아, 그럼 다음엔 A과장한테 부탁드려야겠다~’


그렇게 농담처럼 흘려보냈지만,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열이 올랐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깐죽거리는 A과장이었다.

그 표정, 그 말투.


“그냥 하면 되는데 뭐 어려운 거라구요~”


귀에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사실 조직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종종 있다.

비집고 들어오는 동료의 한 마디가 내 자존심을 톡 건드린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첫째, 남의 노력을 가볍게 보지 말자.
그리고 둘째, 다음번 승진자 교육 퍼포먼스 진행은 꼭 A과장에게 양보하자.


왜냐고?


그분 말씀대로, “그냥 하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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