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응답한 사람

선교사의 시간 속으로

by 단호박

한 달에 한 번 있는 직원교육.
이번 강의자는 50대 여성 평신도 선교사님이었다. 볼리비아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분.
강의가 끝난 뒤, 선교사님을 기차역까지 모셔 드리게 되었다. 차 안에서 선교사님은 창밖을 바라보다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선교를 시작한 곳은 에콰도르였어요. 10년을 그곳에서 살았죠. 그곳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이었어요.”


10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는 말보다 훨씬 깊게 전해졌다. 그 뒤에 이어진 말은 더 묵직했다.


“선교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복지관에서 1년 정도 일했어요. 그런데…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었거든요.”

잠시 차 안에 고요가 흘렀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타국에서 살아온 선교사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한 문장은 이날 대화의 핵심이었다.


“그때… 어떤 신부님이 저에게 연락을 주셨어요. 볼리비아 쪽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누군가가 가서 거들어줘야 한다고… 그래서 제가 응답했죠.”


추천도 아니고 제안도 아니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청함’. 그 청함에 대한 선교사님의 ‘응답’. 그 단순하면서도 깊은 교차점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다시 열렸다.


“그래서 선교지로 다시 나갔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선교사님은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에는 고단함도, 평화도, 그리고 확고한 소명감도 함께 담겨 있었다. 선교사님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은 평신도 선교사들에게 잘 대해주세요. 근데… 신자분들은 선교사들에게 좀 박해요.”
그 말이 유난히 씁쓸하게 들렸다.


이름은 같지만 ‘선교사’라는 두 글자가 성직자와 평신도의 사이에서 얼마나 다른 무게로 취급되는지
그 간극을 선교사님은 이미 오래 겪어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내 선교사님의 눈빛은 반짝였다.


“그래도요, 아이들 자라는 모습 보면 모든 힘듦이 다 사라져요. 아이가 글자를 읽게 되고 휠체어 타던 아이가 스스로 서 보려고 하고…그런 순간에는 하느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지 참 또렷해져요.”


그 말은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강의였다.


기차역에 거의 도착했을 때 선교사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있다 보니 이제는 은퇴를 준비해야겠죠.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르지만…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데까지는 계속하고 싶어요.”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떠날 준비와 계속 머물고픈 마음이 절묘하게 겹쳐 있는 그 말투. 아마 소명이라는 것이란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붙들고,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는 걸까. 기차역 앞에서 차를 멈추자 선교사님은 잔잔하게 웃었다.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이런 대화가… 큰 힘이 돼요.”

나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선교사님.”


선교사님이 역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래도록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부르는 곳에 응답한 사람. 그리고 그 응답을 평생의 길로 살아낸 사람.


그날 차 안에서 들은 이야기는 강의 그 어느 부분보다 더 강한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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