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동의 계절
오늘 퇴근 인사를 드리러 박부장 앞에 섰다. 그저 하루를 마무리하는 평범한 인사였다.
그런데 박부장의 뜻밖의 질문이 나를 멈춰 세웠다.
“이번 인사이동 때… 인사위원회에서 박과장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하지?”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자 박부장은 다시 되물었다. “아니, 여기 남고 싶은 거야? 아니면 이동하고 싶은 거야?”
그 질문 하나가 오래된 기억을 흔들어 깨웠다.
예전에도 똑같은 질문을 받고 솔직하게 “이동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던 날. 그리고 돌아온 결과는 시외지역 발령이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조직의 인사가 사람의 역량보다 빈 자리를 우선할 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분이 있는 이동 희망자.
'너가 이동을 희망했고, 우리는 이동해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너에게 있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떠나고 싶습니다. 1월이면 더 좋겠습니다.”
사실 나는 본부 최소 근무 기준 4년을 이미 채웠고, 올해 12월이면 만 5년을 정확히 채우는 사람이다.
형식적으로도 이동이 가능한 시점이다. 하지만 이 시점보다 더 무겁게 내 마음을 눌러왔던 건
본부에서 내가 맡아온 ‘사이(間)’의 역할이었다.
사회복지 행정 체계와 가톨릭 문화를 모두 이해해야 하는 자리,
두 영역의 상황을 조율하고, 양쪽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자리. 이건 일반 조직에서 흔히 말하는 ‘특수직’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너무 힘들었다. 정말 지쳤다. 그래서 떠나고 싶었다. 이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버텨온 시간만큼은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랐다.
그 작은 인정조차 없이 그저 “5년 채웠으니 보내도 되는 사람” 정도로 취급되는 건 억울했다.
하지만 오늘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은 내가 올해 7월에 인사발령이 예정되었었으나 최종적으로 번복되었다는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사팀 최과장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문득 불안해졌다. 최종 결정은 결국 최고 결재권자가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중간에 서 있는 인사팀이
부정확한 정보로 나를 설명하거나, 내 뜻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자신들 입맛에 맞게 짜맞추지는 않을까.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도 아니기에 그 불안은 결코 근거 없는 상상이 아니다.
조직의 인사 구조에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작은 왜곡 하나가 한 사람의 삶과 가정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걸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란다. 제발, 중간에서 누군가의 편의대로 내 의도가 왜곡되지 않기를. 누군가의 계산을 위해 내 역할이 폄하되지 않기를.
잘못된 정보가 나를 대신해 말하지 않기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떠나는 순간까지 내가 감당해온 시간들이 제대로 전달되고, 제대로 이해되고, 제대로 평가받기를 바란다.
그게 욕심일까. 다른 게 아니다. 그저—나는 떠나고 싶지만, 최소한의 인정은 받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한 곳으로 밀려나는 일만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