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되는 시설은 자부담?

형편이 어려울 수록 더 필요한 법인데.

by 단호박

오늘 아침회의 공기는 유난히 뻣뻣했다. 대표이사의 목소리엔 짜증이 묻어 있었고, 보고 순서가 다가올수록 손에 쥔 자료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오늘 내가 내놓은 보고서는 ‘밥차 사업’에 대한 운영 개선 자료였다. 하지만 이 자료는 내가 고민해서 만든 제안이 아니라, 며칠 전 내려온 지시에서 시작된 문서였다.


“내년부터는 밥차 식재료비 전액, 모든 시설 자부담으로 갑시다. 시설장 회의에 올릴 자료 준비하세요.”


지시는 단순했지만, 마음은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그 말 속에 늘 따라붙는 익숙한 문장이 있었다.


“형편 되는 시설은 이 정도 자부담할 수 있잖아요.”


나는 그 순간 자연스럽게 되물었다. 형편 되는 시설? 그 기준은 대체 누가, 어떻게 정하지?


엑셀을 열어 밥차 운영 건수와 지원 인원들을 정리하며 머릿속에서는 계속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올해만 해도 밥차는 20번 현장을 찾아갔다. 총 3,000명의 복지시설 이용자들이 그 작은 도시락과 간식 하나에서 큰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 그걸 잘 아는 나는, ‘전액 자부담’이라는 문장을 자료에 넣는 순간 어떤 시설들은 사실상 밥차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밥차는 원래 형편이 어려운 시설일수록 더 필요한 사업인데, 그 시작점에 “자부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붙여버린다면 이게 과연 밥차의 취지와 맞는 걸까?


밥차가 현장에서 어떤 의미인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도시락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던 모습, 노인시설 어르신들이 따끈한 간식을 들고 “고맙다”며 손을 꼭 잡아주던 순간, 장애인 생활시설 종사자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날들.


밥차는 단순한 ‘차량 지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잇는 연결선이었고, 작지만 확실한 위로였고, 그 안에서 가장 온기가 느껴지는 사업 중 하나였다. 이 모든 장면을 떠올리면 ‘전액 자부담’이라는 지시는 내게 너무 빠르고 무겁게 느껴졌다. 아침회의에서 대표이사는 다시 말했다.


“예산이 안 되니 어쩌겠어요? 시설이 이제는 재원을 마련해야죠.”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밥차를 가장 필요한 시설들은 늘 가장 형편이 빠듯한 시설들이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말이 유난히 날카롭게 다가왔다. 결국 나는 지시대로 자료를 만들면서도 마지막 장에 조용히 문장 하나를 남겼다.


“시설장님들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밥차가 멈추지 않도록, 형편의 기준으로 나누지 않도록, 취지를 잃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저항이자 부탁이었다. 회의가 끝난 뒤 사무실로 걸어오며 나는 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형편 된다는 기준이 뭐지? 밥차 사업에서 그 기준을 정말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


밥차는 예산으로만 움직이는 차가 아니다. 그 속에는 사람들의 마음, 이용자들의 기대, 그리고 ‘밥차’라는 이름의 온기가 실려 있다. 그래서 오늘도 박과장은 행정의 지시와 밥차의 취지 사이에서 작은 균형을 잡으며 또 하나의 자료를 만든다.


제발, ‘형편 된다’는 말 앞에서 누군가가 밥차를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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