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조직에서 살아남기 #2]
다른 사람들의 편의를 다 봐주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끔은 억울한 마음이 든다. "왜 나는?" 이 말은 내 안에 쌓인 감정의 응어리와 불만을 가리킨다. 나는 왜 항상 배려의 마지막 순서에 놓이는 걸까? 내가 속한 부서나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걸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마침내 이런 질문에 닿는다. "그럼 나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사람이야?"
조직에서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대우받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누구에게는 더 많은 기회와 유연함이 주어지고, 다른 누군가는 똑같은 상황에서 더 많은 책임과 희생을 요구받는다. 나 또한 그러하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는 배려와 융통성을 보여주면서도, 나에게는 늘 "규정"과 "의무"만을 강조한다.
처음에는 이것을 "내가 잘해서 그런가 보다"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내가 잘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맡기는 거라고, 내가 책임질 능력이 있기 때문에 배려를 덜 주는 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단순히 칭찬이 아니라, 내 위치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런 역할과 태도를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내가 그 역할을 받아들일 거라고, 내가 반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 자신이 그런 역할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하며 스스로를 희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희생이 곧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내가 배려를 양보하고, 어려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참는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내가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정말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사람인가?"
그 답은 분명하다. 아니다. 나는 나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을 자격이 있고, 나 역시 타인과 똑같은 배려와 편의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게 편의를 봐주지 않는 것, 나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의 태도의 문제다. 하지만 나는 그런 태도를 묵인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참아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왜 나는?"이라는 물음이 나올 때마다, 내 안에 쌓인 억울함을 그냥 삼키는 대신 작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야 한다. 나도 배려받고, 이해받아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다. 오랜 시간 참아왔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내가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나는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 맡고 있는 일,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은 조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그 시선을 바로잡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편의를 요구할 수 있고, 내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요구하는 만큼 나를 배려해달라고 말할 수 있다.
"왜 나는?"이라는 질문 속에 담긴 억울함은 더 이상 나를 갉아먹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힘으로 변해야 한다. 나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 나만의 가치를 가진 독립적인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