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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무의식 2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갑진년 병자월 경술일 음력 11월 12일

by 단휘

중고생 때의 나는 인간 심리에 대한 소소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관련 서적을 읽기에는, 내가 독서를 어느 정도 즐기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의 일이다. 영상 매체에 대해서도 불편한 시청각 자극이라고 느껴 관련 분야의 영상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뿐더러, 애초에 영상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년 몇 개월 전에 「전지적 할부지 시점」을 계기로 유튜브 어플에 처음 로그인했던 녀석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난 나의 내면을 탐색하게 되었다. 언젠가 연구되었을 법한 내용에 대해서도 전문 용어를 알지 못한 채 혼자 탐구하곤 했다.


나 한 사람에 대한 탐구로는 인간 심리 전반을 이해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일반화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을 가지고 사회 실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변수가 통제되지 않는 소소한 실험은 가끔 했던 것 같기는 하다. 물론 그 '변수가 통제되지 않는'이라는 점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실험인지는 의문이지만. 이제 와서는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언젠가의 이야기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여간 그 당시에 느낀 것 중 하나가, 무의식이라는 녀석은 정말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 나를 속이기에는 나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속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에게 라포 형성을 하는 게 가능했다. 나에게 '하유진'이라는 친구는 존재하지 않지만, 내 안에서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랜선 친구만큼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게 왜 되지, 하면서도 흥미롭게 보는 부분이다. 비단 이 녀석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이제 와서는 의식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 나조차 헷갈리는 정보들도 있다. 그게 헷갈리기 시작할 때쯤 이 짓은 그만둬야지, 하고 판단했지만 말이다.


무의식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면 나의 의식이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어도 나의 내면에서는 그것이 진실이라는 가정 하에 판단하게 된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동기 부여를 할 때 그 무의식의 영역에 닿지 못한다면 의지를 갖지 못한다. 반대로 나의 무의식이 그 필요성을 느낀다면 나의 의식이 귀찮아하거나 거부감을 느낀다고 해도 나는 해 나간다. 때로는 나 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하던 도중 깨닫게 되는 무언가가 내 삶의 방향성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아무 하고나 친해지지 못하는 것도 이 무의식이라는 녀석이 인간관계를 필터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거부하면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상대와 친해질 수 없음을 느낀다. 그런 이에 대해서는 상성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무의식이 허락한 이들만이 내가 친해질 가능성이 있는 존재들이며, '친구'라고 불릴 수 있는 건 친밀도에 의해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저 무의식이라는 녀석이 판단하는 것이다.


하여간 너무 많은 부분들이 무의식의 영역에 블랙박스 상태로 존재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남들이 의식의 영역에서 수행하는 것 중 상당수를 나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수행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녀석만 잘 컨트롤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무의식을 잘 세뇌하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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