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1일 수요일 갑진년 병자월 기유일 음력 11월 11일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기억과 또 하나의 이별. 헤어짐은 만남만큼이나 쉽지 않다. 건강한 이별이라는 건 특히 더 그렇다. 손절을 하거나 서로에게 적이 되어 헤어지는 일은 오히려 쉽다. 상처뿐인 이별은 한순간에 쉽게 이루어낼 수 있다. 다만, 이별 후의 시간이 오랫동안 서로에게 부정적인 순간으로 남을 뿐이다. 그런 이별을 많이 봐왔다. 어차피 헤어지는 마당에 더 이상 안 볼 사이니 서로에 대한 감정이 어떻게 남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하지만 난, 그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시작은 2019년이었던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코로나를 만났던 거였구나. 계기는 2016년, 뮤지컬 〈페스트〉. 좋아하는 음악가의 노래로 이루어진 뮤지컬이라고 하여 나의 의지로 보러 갔던 첫 번째 뮤지컬에서 어떤 두근거림을 느꼈다. 뮤지컬, 연극, 무대예술, 연기. 온전히 터놓고 지낼 사람 하나 없던 여고 생활에서 이진에게 플러팅을 하는 것도, 현이나 상은이 같은 녀석들에게 친해지고 싶다고 어설픈 장난을 시도하다가 선그음을 당하는 것도 아닌,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감정이 나를 덮쳤다.
당시 공부 빼고 다 즐거운 수험생 효과인지 진짜 관심인지 알지 못한 채 나의 대학 입시가 끝났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이 전공을 교양처럼 들으려고 지원한 컴퓨터공학과에 수시 합격하였고, 그 이후에도 나는 극장과 연기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대학 연기 동아리에 지원해 보았으나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아직도 연기 관심 있냐면서, 자신의 교회 지인의 배우자가 연기 스터디를 운영하는데 다음 기수를 모집한다며 소개해주었던 게 연기 스터디 한걸음과의 첫 만남이었다.
연기 스터디에 계속 참여하다가 선배 기수에서 창단한 신생 극단에 들어가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3년 반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가 IT 분야에서 지낸 시간보다 연극 분야에서 지낸 시간이 훨씬 길고, 어떻게 보면 성인이 된 이래로 지금까지 연극 분야에서 벗어나 있던 적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이 길을 그만두고 다른 방향성을 찾는다는 것은 완전히 무로부터 시작하겠다는 것과 같은 도전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 분야에서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가뜩이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데 코로나 시즌 디버프를 직격탄으로 맞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도 있었다. 연습에는 나갔지만 적극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단편 팀별 연습도 제대로 잡지 못하였고, 모든 게 어렵게 느껴졌다. 음악에 맞춰야 하는 작품은 더욱 힘들었다. 그냥 음악을 틀어놓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부정적인 작용을 하던 때였는데 심지어 그 음악을 외면할 수 없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니. 의상이니 소품이니 분장이니 하는 연기 외적인, 하지만 공연하고는 밀접한 영역도 나에게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래도 연기 그 자체는 나에게 즐거웠기에 관심 반 관성 반으로 해 나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관성이 더 커졌고, 연기 외적인 부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날 가로막기 시작했다. 도저히 인지가 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 그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기본이라고 한 소리 들을 때면, 내가 무지하고 무능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고정적인 일자리를 얻기를 어려워하는 특성으로 인해 회비를 낼 재정적 여유도 마땅치 않았다. 그리하여 그만둘 것을 고민하기 시작한 게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청년이음센터에서 청년기지개센터까지의 시간이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그저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나의 의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나의 의지로 그만둘 수 있도록. 어떠한 선택이든, 그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나는 이별을 선택했다. 그만두고 싶냐는 상대의 질문에 긍정을 한 언젠가의 이별보다도 더 나아간, 직접적인 나의 선택으로서의 이별. 그리고 이제는, 나의 길을 나아가야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