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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약속

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갑진년 병자월 신유일 음력 11월 23일

by 단휘
이 글은 언젠가 서비스 종료된 플랫폼에 작성했던 글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기존에 작성된 글은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에 작성되었다.


약속; 할 것과 하지 않을 것, 그것에 대한 선언. 사전은 정의합니다.
― 「Promise」 of 『Bare: the Musical』


살다 보면 종종 약속인지 아닌지 매우 모호한 무언가를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기약 없는 "언제 밥이나 먹자" 류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그것을 약속의 시작으로 여기는 이와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인사치레로 여기는 이가 골고루 섞여 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인식이 동일하다면 문제없겠지만, 서로 다를 경우에는 상황이 애매해진다. 약속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아니었던 것 같아 "또 나만 진심이지"를 느꼈다는 사람도 있고, 관습적인 인사로 한 말에 상대가 진짜로 약속을 잡으려고 해서 당황했다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늘 그런 식의 표현을 썩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약속으로 여기고 고려해야 하는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말로 넘겨야 하는지, 동일한 표현이라도 누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하는지에 따라 약속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엔 그냥 판단을 보류하고, 상대가 그것에 대해 추가적인 언급을 하면 약속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다면 아닌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다만 그 언급이 있기까지, 혹은 그 말이 잊혀 사라질 때까지 쓸데없이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는 것뿐이다.


언젠가의 "공연 보러 갈게요" 또한 판단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래서 보러 오겠다는 말일까, 아니면 그냥 하는 소리일까. 보러 온다는 말인 줄 알고 공연 및 할인 정보를 전달했지만 별다른 응답이 없던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올 거면 오고 말 거면 말겠지 하고 그냥 넘기게 되었다. 가뜩이나 신경 쓸 거 많은 상황에서 저 사람이 온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판단하고 있을 정신적 여유가 없다. 더 이상 지인 관객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던 결정타를 날린 게 아마 살미 님이었지.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불필요한 신경쓰임을 반복적으로 야기한다면 거기에 쏟는 에너지 낭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다가 그 사람 자체와 상호작용을 안 하게 될 것만 같다. 약속인지 인사치레인지 모를 저 무언가는, 약속을 할 거면 확실하게 하고 아닌 거면 빈말로도 안 했으면 좋겠다. 가까운 곳에서 나를 괴롭히며 내가 스트레스받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라면 인정. 꽤나 성공적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외에도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말을 한다거나, 음질이 좋지 못한 소리를 낸다거나, 다양한 방법이 더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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