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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추적

2024년 1월 4일 토요일 갑진년 병자월 계유일 음력 12월 3일

by 단휘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당장은 강렬했어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때로는 떠올리려고 애쓰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런 망각과 탐색 사이의 방황 끝에 최근에서야 무언가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을 통한 추적. 구체적인 것까지 적어 내릴 수는 없겠지만 탐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게 말이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다이어리에 삶의 흔적을 기록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잘 기록하지 않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기껏해야 온라인상에 대외적인 사건 위주로 작성해 놓은 것이 전부다. 언제 구급차에 실려 갔는지, 언제 정서 불안이 유독 심했는지, 이런 것에 대한 기록이 어느 순간부터 중단된 것이다. 그중 일부는 몰라도 아무래도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다른 일부는 추적할 수 있다면 해두는 게 좋다. 내가 내 방의 식물에게 언제 물을 주었는지와 같은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내가 추적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한다.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기록이 언젠가 유의미한 단서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약간의 정신적인 이슈가 있는 것 같다. 가위눌린 것처럼 이명과 함께 눈이 떠지지 않는 상태로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두려운 장면들이 펼쳐지다가 겨우 눈을 떴다. 불 꺼진 방안의 어둠 속에 그 장면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보이는 것만 같았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보이기에 눈을 감고 잠들기가 두려웠다. 가구들이 보일 정도로 어둠에 적응했을 때에는 옷장 서랍이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가끔 있던 일이라 두려움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랍이 일렁이는 모습은 처음 봤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면 그런 모습이 보이는 거지? 결국 난 불을 켤 수밖에 없었다. 이런 특이 현상은 언젠가 무언가의 단서로 작용할 수 있으니 추적할 수 있게 기록해 놔야지. 가끔 그런 현실이 아닌 시각적 자극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이 있는데, 보통 피로에 지쳐 기절하듯 잠들 때까지 잠들지 못한다.


이렇게 적어놓은 단서들을 언제 사용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사용하게 될 수도 있고, 나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다른 누군가가 사용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에 대해 언제였는지, 혹은 언제부터 얼마나 반복되어 왔는지 탐색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기록을 하기 시작한 요즘 같은 때에는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내용이라면 기록하겠지만, 아주 가끔은 내가 기록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추적해야 할 때가 있다. 최근에 무언가에 대해 기록이 있는지 찾아 헤매다가 결국 포기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역시 일상의 너무 많은 것들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초등학생 때는 4학년 때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5학년 내내 완전히 잊고 있다가 6학년 때 다시 같은 반이 되어서야 그의 존재 자체를 떠올리게 된 일이 있었다. 학생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27~28명씩 세 반으로 한 학년 당 9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였는데 거기서 가장 친했던 친구를 망각하기란. 그탓인지 때로는 잊지 않을 것 같은 것도, 아주 일상적인 것도, 방심하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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