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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약속 2

2024년 1월 6일 월요일 갑진년 정축월 을해일 음력 12월 7일

by 단휘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러하다. 친구와 약속을 잡는 것뿐만 아니라 미용실 예약 같은 것도 어려워한다.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찾지 못한 것도 있지만, 요즘 미용실들은 다들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는 것도 내가 미용실을 안 가게 된 데 한몫했다. 덕분에 뒷머리 자르는 걸로 시작했던 게 이제는 없던 앞머리를 만든다거나 숱을 치는 것까지 할 줄 알게 되었다. 이런 "내가 하고 말지" 마인드가 요리 같은 데에도 적용이 되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선뜻 연락을 하지 못하는 건 왜일까. 시간 되냐고, 한 번 보자는 말을 왜 그렇게도 하지 못할까. 그런 걸 할 수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무래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유구한 성향인 모양이다. 해본 적 없다고 해서 못할 건 또 아닐 텐데. 모든 건 언젠가 처음에는 다 해본 적 없는 것이었기에, 해본 적 없어서 못한다는 말은 되도 않는 핑계일 뿐이다. 다만 시행착오를 조금 거칠 수 있을 뿐이지. 그 시행착오를 어떻게 얼마나 거치는지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역시 잘 되지 않는다.


내가 그런 걸 잘 못하다 보니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멋있기도 하다. 내가 못하는 걸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멋있어 보인다. 그 사람에게는 그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멋있다고 했을 때 내가 "그게 왜 멋있는 거지?" 하고 느꼈던 많은 것들도 그들이 느끼기에는 그랬던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서로가 못 하는 걸 보완해 줄 수 있는 친구 집단이 참 좋은 것 같다. 물론 언제까지나 서로에게 의지하기만 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보며 배워 나가다가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의지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난 내가 탐색 및 예약을 잘 못한다고 그런 부분을 늘 주변에 떠맡기는 것 같기는 하다. 가끔은 무슨, 매일같이 의지하고만 있으면서 말은 잘한다.


애초에 나는 못 하는 걸 평균치까지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되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녀석이다 보니, 못 하던 건 계속 못 하는 경향이 있다.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일지라도 최소한의 수준으로는 끌어올릴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늘 언젠가의 미래로 넘기고 만다. 그렇게 미루기만 하지 않고 어떻게든 도전을 해나가는 녀석도 참 대단하단 말이야. 나도 주변에서 배울 게 참 많다. 누군가의 노래 가사처럼 "내겐 좋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가득하긴 쉽지 않은데 말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건 같은 자리에 있었"다.


온전히 붙잡지 못하고, 손을 내밀지조차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뭐시깽깽함이 크다. 아쉬움? 불만? 이게 어떤 감정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나에 대한 감정도, 너에 대한 감정도 모르겠다. 약속이라는 걸 하지 않고도 만날 수 있던 때가 좋았다며 언젠가의 기억에 안주하려고 한다. 좋든 싫든 늘 가야 하는 학교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여간 그래서 만나자고 먼저 말을 걸어주는 친구에 대해 늘 감사하다. 사람을 만나 상호작용을 하는 게 정신건강 개선에 큰 도움이 되는데, 정신건강이 악화될수록 약속을 더 못 잡는 녀석이니. 가끔 적당히 만나 같이 식사도 하고 카페에서 대화도 나누며, 시답잖은 소리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편하게 늘어놓을 수 있는, 어쩌면 이 녀석은 나의 가장 이상적인 친구 아닐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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