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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스트레스

2024년 1월 18일 토요일 갑진년 정축월 정해일 음력 12월 19일

by 단휘

차분히 가라앉힌다. 의식적으로 스트레스에 대응한다. 대응하려 시도한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기관부터 망가지는 경향이 있다. 위장부터 대장까지 성한 데가 없는 느낌이다. 그 미묘한 꿀렁거림이 위경련의 통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신경 쓴다. 무언가 외부를 향한 스트레스의 표출이 있을 땐 목이 아프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는 걸 보니 내부적인 이슈다. 조금 진정되고 나면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게, 뭐에 대한 스트레스 반응이지?


클리어하고 나면 진상을 알려주는 게임처럼, 이 스트레스라는 녀석도 대응하고 나면 원인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것은 늘 무의식의 영역이라 유추해 내기 쉽지 않다. 원인을 알아야 그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든 뭘 하든 할 텐데 그걸 파악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끝까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일도 많이 있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의 대부분의 위경련은 그렇게 원인도 모른 채 찾아왔다. 왜 유독 그 몇 해 동안 그런 게 심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리 심하지 않게 지나갈 수 있었을 것 같은 반응도 다른 것과 겹치면 더 힘들어진다. 가령 감기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나에게 있어서 작은 꿀렁거림은 식은땀을 내기에 충분했다. 학생 때도 늘 위경련 하나만 있을 땐 그럭저럭 핫팩을 써가며 견딜 만했는데 조금이라도 다른 변수가 섞이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수준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었다.


하여간 결국 뭐였을까. 예상이 전혀 안 가는 건 아니긴 하다. 그건 그냥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무언가다. '내 친구'로 취급되는 존재, 그리고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존재, 그리고 '아무리 해도 친구는 못 된다'고 판단되는 존재, 그리고... 어쩌다 보니 어제저녁부터 주변 사람들과 한 마디씩 근황 토크를 하다 보니 주변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남아있더라. 내가 인지하는 관계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세요?'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인지하는 관계보다 거리를 두는 사람에게는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이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인간관계라는 건 다른 그 무엇보다도 나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다. 나와 상대, 그리고 상황, 여러 가지가 맞물려서 이루어지는 관계에 대해서 나의 의지만을 관철하려 들 수는 없겠지.


철없는 10대 시절에는 그런 짓을 하기도 했다. 조그맣던 꼬마 네온이는 루나의 친구가 되고 싶어서 무작정 다가갔고, 결국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친구는커녕 주변에 머물지도 못하는 녀석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아직도 거기서 비롯된 두려움이 나로 하여금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먼저 다가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걸까. 네온이와 루나의 일을 어느 정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도 아주 최근 일이니... 차차 극복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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