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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흥미

2024년 1월 19일 일요일 갑진년 정축월 무자일 음력 12월 20일

by 단휘

나 이런 거 좋아했었지, 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때가 있다. 분명 좋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삶에서 완전히 잊혀 사라져 있던 무언가를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마주한 순간. 그토록 좋아하는 걸 어쩌다 붙잡고 살지 못했을까. 분명 부와 명예보다는 흥미를 쫓아 살아가는 녀석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흥미를 느끼는 영역을 등지고 살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문제를 풀다 왔다. 공부하려고 만난 건 아닌데 공부를 하다 왔다? 공부한답시고 만나서 잡담만 나누다 오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잡담 나누러 갔다가 공부하다 온다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아무튼 그렇게 됐다. 한 가지만 한 것도 아니고, 컴퓨터활용능력 시험의 컴퓨터 일반 과목부터 시작해서 정보처리기사 시험의 소프트웨어 설계 과목 및 소프트웨어 개발 과목, 그리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 교과까지. 이것저것 건드리다 왔다. 졸업한 지 몇 년 된 전공자가 전공 분야를 건드리지 않고 살다가 시험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고 온라인 모의고사를 보면 결과가 어느 정도 나올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었는데 하다 보니 수능 모의고사까지 갔다.


수학이나 퍼즐 문제 푸는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른 문제 푸는 것도 좋아하더라. 틀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서 문제 푸는 걸 편하게 여기지는 않았는데, '공부 안 하고 푼다'는 전제를 서로 알고 있는 상태라서 그런지 그런 거부감은 별로 없었다. 내가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문제 푸는 걸 즐기는 것 같다. 명확하게 알지 못했던 부분도 조금씩 선명해지는 느낌이고, 꽤나 재밌...다고 주장하면 컴활이나 정처기나 수능을 준비하는 이들의 질타를 받을 수도 있겠군. 하지만 얼마나 맞고 틀리고와는 별개로 흥미롭긴 했다. 너무 즐거운 나머지 내 앞에 나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은 채(?) 20번 문제까지만 풀어보기로 해놓고 40번을 향해 풀어 나가기도 하고 말이야.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주변을 안 보게 된다는 나의 특성을 정말 오랜만에 마주했다.


문제 푸는 것 자체도 즐겁지만 그게 왜 답인지 설명해 주는 것도 꽤나 즐겁다는 점에서 '내가 이래서 교육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었지' 하는 걸 새삼 떠올리기도 했다. 교사보다는 강사가 더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기와 이것저것이 어렴풋하게 스쳐 지나간다. 생각해 보면 개념을 처음부터 가르쳐 주는 것보다 오답풀이를 도와주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건 선호의 영역일 뿐, 공부한 지 너무 오래된 분야라 개념 설명에 어려움이 있어서 그렇지 머릿속에 들어 있기만 하다면 개념 설명도 거부하는 건 아니다.


역시 교육이 답인가? 이 분야가 내 분야인가? 슬슬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 같다가도 뚜렷한 무언가로 수렴되지 않는 느낌이다. 돌고 돌아 결국엔 IT 분야로 돌아가는 게 무난한 선택지인 것 같기도 하고, 이왕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거 해보고 싶던 거 다 도전해 보고 싶기도 하고. (이것도 당장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급하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소리긴 하다.) 올해는 생각만 하지 말고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접근해 가며 기다 아니다를 판단해 보는 시간을 가져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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