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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방황

2025년 1월 27일 월요일 갑진년 정축월 병신일 음력 12월 28일

by 단휘

성인이 된 이래로 늘 속해 있던 집단을 벗어나고,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몇 개월째 보내고 있다. 사실은 그곳에 있을 때부터 한참이나 그런 상태였지만 관성적으로 존재해 오다가, 지난 하반기에야 그 관성적인 움직임을 뿌리치고 나왔다. 그렇게 나왔건만, 여전히 모든 게 불확실하고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점점 더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만 같다.


나에게도 꿈이라는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나는 늘 지식을 익히기보다는 기술을 익히는 쪽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그 어떤 기술도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지는 못한 것 같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것을 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흘러간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붙잡는 게 늦지는 않을 텐데, 이제 와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겠다. 신체 능력에 대한 욕망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면 열등감만 생길 뿐이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유능하고 싶었는데.


이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대체로 자신이 관심 없는 분야에서 유의미한 역량을 드러낸다. 주변에서 그 역량에 대해 칭찬을 하고 부러워하지만 당사자는 다른 역량을 키우고 싶을 뿐이다. 때로는 그런 거 잘해서 뭐 하냐고 자기 비하를 하기도 한다.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괴리가 크다. 그렇게 결국, 가진 것을 외면하고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한다.


내세우기 애매하게 높은 지능과 낮은 신체 능력. 그나마의 신체 능력은 20대 초중반 동안 배우 훈련을 하면서 키워진 것뿐이다. '여자는 근력이 부족해서 어려워하고 남자는 유연성이 부족해서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근력과 유연성이 모두 부족한 녀석'으로 취급받은 바 있다. 체성분 검사를 하면 지방량은 표준인데 근육량이 부족해서 비율상으로 경도비만이 뜨는 녀석이니. 마지막으로 측정하던 시기에는 그래도 경도비만과 표준이 왔다 갔다 하면서 뜨는 정도까지 올라가긴 했는데, 2주 전에 심하게 아픈 이후로 2kg이 감량된 채 회복이 안 되고 있어서 상당히 손실된 상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 상태가 궁금하긴 한데 동네에서 측정하려면 전화 예약이 필수라고 해서 굳이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광화문 역사 내에 인바디 측정기가 있을 때에는 부담 없이 정기적으로 측정해 보곤 했는데 몇 해 전인가 사라졌더라.


기술교육원 지원을 하면서도 거기서 배우는 것들이 나에게 얼마나 유의미한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관심 있는 분야라기보다는 마지막으로 관심 가졌던 분야의 것이라는 점도 애매한 부분이다. 신체적인 역량이 된다면 스포츠 지도사 자격증도 따보고 싶긴 한데 현재로서는 역량이 되지 않는다. 보통은 운동 3년 차 정도에 자격증에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나는 실질적 운동 경력이 1년도 안 되는 입장이니 사실 당연한 소리긴 하다. 꾸준히 하려면 그만큼의 재정적 여유가 필요하니 우선순위를 미루고 일단 뭐라도 고정적인 수입을 만들어야지. 그 고정적인 수입을 만들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일단은 공부를 하며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렇게 또 외면하고 언젠가의 미래로 미루기만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역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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