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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음식

2025년 1월 28일 화요일 갑진년 정축월 정유일 음력 12월 29일

by 단휘

음식을 섭취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식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한 뒤 그것을 섭취하고 뒷정리를 하는 일련의 과정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을 즐기는 이들도 있는 모양인데 나는 도저히 그것이 즐겨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구매하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심지어 음식을 섭취하는 것조차 대체로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뒷정리는 아마 애초에 즐기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뒷정리는 충분한 여유 자금이 있으면 외주를 맡길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사 먹으면 그만이다. 물론 직접 만들어 먹는 것에 비해 식비가 많이 들겠지만, 식재료에 해당하는 금액만 비교해서 그렇지, 번거로운 과정들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이게 이 가격이라고?' 싶은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요즘 물가는 알다가도 모르겠어서 어느 정도가 적당한 가격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그 앞뒤 과정은 외주를 맡길 수 있지만 음식을 섭취하는 것 그 자체는 어떻게든 직접 해야 한다는 게 매일매일 마주하는 이슈 중 하나다.


가끔 만족스러운 음식을 섭취하게 된다면 그건 좋긴 한데,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보통은 음식 그 자체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이가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그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만족감이 나오는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땐 좋아했던 음식이 혼자 먹거나 다른 사람이랑 먹을 땐 시큰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제는 잘 먹던 음식을 다른 때에는 건드리지도 않을 수도 있는 이 음식 취향의 무작위성은 무엇을 먹을지 정할 때 정말 번거롭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기본적인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애매한 편이다. 대부분의 음식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그럭저럭의 영역에 속한다.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구간과 맛없다고 느끼는 구간이 매우 좁은 것 같다. 음식에 대한 선호가 정규 분포를 띈다면 양극단의 아주 좁은 구간만이 맛있다와 맛없다일 것이다. 사람들이 별로라고 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대체로 그냥저냥이라면서 먹고, 엄청나게 맛있다고 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맛집이 나에게는 그냥저냥의 영역일 것이기에 굳이 웨이팅까지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어딜 데려가도 대체로 실패하지는 않지만 성공하지도 않는 느낌? 유명한 빵집에서 사 왔다는 애플바질 잠봉뵈르 샌드위치를 받아먹으며 '아 재작년에 센터에서 먹었던 바질버터 샌드위치 맛있었는데' 하고 생각하는 녀석이니 말이다.


특별히 막 좋아하는 음식도 별로 없고, 맛있다고 느끼는 구간도 좁고 (다행히 맛없다고 느끼는 구간도 좁지만) 여러 가지로 인해 뭐 먹을지 고르는 것 자체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급식이 나오던 시절이 좋았는데,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는 밥과 반찬으로 이루어진 식사 구성을 안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메뉴를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보다는 차라리 밥과 반찬으로 이루어진 급식을 선택할 것 같다. 사실 음식에 잘 안 질리는 편이라 영양 균형 괜찮고 준비, 섭취, 정리의 과정이 간단한 음식이 있다면 그것만 먹고 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말이다. 실제로 몇 날 며칠 월남쌈만 먹고살기도 했다. 나중에는 야채 썰기 귀찮아서 적당히 씻기만 하면 되는 새싹채소처럼 더 간단한 재료 위주로 사용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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