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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사진

2024년 2월 2일 일요일 갑진년 정축월 임인일 음력 1월 5일

by 단휘

2018년 12월에 찍은 걸 마지막으로 6년 하고도 두어 달 만에 증명사진을 찍었다. 보통 증명사진의 유효기간은 6개월이고 짧으면 3개월 이내의 것을 요구하기도 하는 것을 생각하면 참 오래 안 찍긴 했다. 외모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 6개월이 넘은 시점까지 최근에 찍은 사진이라고 주장하며 사용했던 것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스무 살 때 찍은 사진으로 그렇게 우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메일로 받은 사진 파일을 증명사진 디렉토리에 집어넣으며 보니 내가 사진 파일을 가지고 있는 다섯 번째 증명사진이다. 2010년, 2016년, 2018년, 2025년. 한 장은 증명사진 디렉토리에 들어있긴 하지만 증명사진이 아니라 고등학생 때의 대입 원서 사진이다. 이번에 찍은 사진이 지금까지 중 유일하게 스트레이트 펌을 하지 않은 상태더라. 안 하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지만 2018년의 사진까지는 아직 머리를 편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머리를 만들었다 없앴다 몇 번 반복했는데 앞머리가 있는 상태로 증명사진을 찍은 건 2010년 이후로 처음이다.


사진은 그럭저럭 괜찮게 나왔다. 곱슬 잔머리의 흔적은 사진관의 보정으로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구나 싶기도 하고. 크기 때문인지 재질 때문인지 인쇄된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화면으로 봤을 때 유독 잔머리가 눈에 띄는 것 같다. 사실 다듬으려면 다듬을 수 있는 부분이긴 할 텐데, 하며 임의 수정 버전의 파일을 하나 만들어 버리긴 했다. 잔머리를 조금 더 정리하는 방향으로 사진을 수정했다. 사진을 편집하는 건 익숙지 않지만 잔머리 다듬는 것은 몇 번 해봤더니 그래도 좀 나은 것 같다. 적당히 정면에서 봤을 때의 체감 머리숱을 줄여주는 반묶음으로 하고 찍었는데 그냥 뒷머리가 안 보이게 완전히 묶고 찍는 게 더 나았으려나 싶기도 하고. 깔끔하기는 그게 더 깔끔했을 것 같긴 하다.


증명사진만 찍은 지 오래된 게 아니라 그냥 사진 자체를 잘 안 찍는 편이긴 하다. 사진 찍히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막 크기는 않은데 나를 찍어줄 사람도 없고 직접 찍는 걸 즐기지도 않다 보니 자연스레 내 사진이 잘 남지 않는 것 같다. 내 사진뿐만 아니라 주변 사진도 잘 안 찍는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인스타그램에 일일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의식적으로 오늘의 사진 한 장 정도는 남기려고 하다 보니 그나마 조금 찍기는 하는데, 올리려고 보니 그날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연말에 미정이가 찍었던 사진을 같이 구경하며, 가끔은 사진을 좀 남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사진을 남겨도 찍어놓고 보지도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그렇게 훑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 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사진을 많이 찍는 녀석이 되어버리진 않지만 말이다. 그럴 땐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녀석을 친구로 두는 것도 방법인데,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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