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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아무리 바빠도

2025년 2월 1일 토요일 갑진년 정축월 신축일 음력 1월 4일

by 단휘
이 글은 언젠가 서비스 종료된 플랫폼에 작성했던 글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기존에 작성된 글은 2021년 11월 19일 금요일에 작성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이것만은 하자"고 정해놓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리고 이를 잘 실천할 수 있다면, 보다 나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지치고 힘들어도,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다가도, 이것 하나 붙잡고 있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수월한 편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이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때로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이마저도 놓치게 되더라도,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그 무언가를 시작으로 첫 발을 딛는다면 이 또한 괜찮지 않을까. 거기서부터는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거창하게 한 번에 완벽한 삶으로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최소한의 무언가로 정해 놓았던 것을 떠올리며 일단 그것만이라도 되찾는 거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 루틴으로 돌아오면, 거기서부터는 그 이상의 무언가로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매일 특정 시간에 무언가를 할 수도 있고, 매일 특정 분량의 무언가를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주기가 하루가 아닐 수도 있고,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의 무엇을 붙잡을지는 정말 제각각의 영역인 것 같다. 전공이나 직업과 유관한 훈련을 계획적으로 수행한다거나, 아니면 짧은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겠지. 개발자 혹은 그 지망생이라면 알고리즘 문제를 풀어볼 수도 있고, 배우 혹은 그 지망생은 적당한 대본을 꺼내 낭독해 볼 수도 있다. 혹은 문필 활동을 하고 있다면 매일 적당한 주제 하나를 정해 그것에 대해 써 본다거나. 물론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악기 연습이나 외국어 공부, 독서나 산책 같은 것을 꾸준히 하는 것도 삶에 있어서 유의미한 시간을 쌓아가는 게 될 것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정리는 꼭 한다" 같은 사소해 보이는 걸로 시작해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정말 힘들 땐 하기로 한 만큼의 무언가를 해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그것을 온전히 해낼 수 있는 날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자. 도저히 안 되겠으면 하는 시늉만이라도 하고 넘어가면 그것을 완전히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 시늉만 했다가는 허울뿐인 루틴이 되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붙잡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는 게 아무것도 안 하다가 시작하는 것보다는 좀 더 수월할 테니 그런 식으로라도 이어나가는 게 나쁘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것들은 삶을 내던지지 않도록 하는 어떤 지표가 되면서도, 쌓이고 보면 스스로에게 유의미한 발전을 가져다주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이것은 내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럴 만한 의욕도 충분하여 여유가 없는 삶을 살던 시기에 썼던 글이지만, 바빠서 일상생활이 흐트러질 때뿐만 아니라 무기력함에 일상생활이 흐트러질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난가을, 내가 다시 글이랍시고 짧은 끄적임을 남기기 시작한 것도 어느 정도 그런 목적이 있기도 했다. 정말 뭐라도 아침 루틴을 만들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고 복지사 님께 쫑알거린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충동적으로 저질렀던 것 같은데, 역시 그냥 저지르고 보는 게 나은 일들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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