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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방 구조

2025년 1월 31일 금요일 갑진년 정축월 경자일 음력 1월 3일

by 단휘

어릴 때부터 방 구조를 종종 바꿔 왔다. 나와 나의 형제가 쓰는 방은 조금 더 큰 방과 조금 작은 대신 창문이 있는 방인데, 아주 어릴 땐 작은 방을 형제와 같이 쓰고 반대쪽 큰 방은 컴퓨터와 책장이 있는 방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크면서 큰 방에 침대와 옷장을 두고 작은 방에 각자의 h형 책상을 하나씩 두고 생활했다. 각방을 쓰게 된 건 아마 중학생 때쯤인 것 같은데 나의 형제가 큰 방을 차지하고 내가 작은 방을 쓰게 되었다. 이후 고등학생 때 나와 나의 형제가 같은 사람에게서 수학 과외를 받게 되면서 큰 방을 공부 방으로, 작은 방을 침대 방으로 쓰게 되었다. 그리고 입시가 끝나고 다시 방을 나누며 내가 큰 방을, 나의 형제가 작은 방을 쓰게 되었다. 조금 작더라도 창문 있는 방이 좋다며 먼저 채가더라. 이 방은 겨울에도 환기하려면 선풍기를 틀어야 한다.


그렇게 몇 년에 한 번씩 방을 싹 드러내고 옮겨야 하는 수준의 방 구조 변경을 해서 그런지 방 구조를 바꾸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큰 방에서 사는 내내,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방 구조를 몇 번이나 바꾸었는지 셀 수 없다. 늘 "이것보다 최적의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의심을 품고 살았다. 결국 연에 두어 번 정도는 방 구조를 바꿨다. 크게 바꾸기도 하고 일부만 바꾸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로 침대를 없애고 침대 서랍을 대신할 서랍장을 새로 장만하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로 h형 책상을 분해해 책장만 쓰고 책상 나무판은 구석에 세워 두다가, 대학을 졸업한 후 작년인가 재작년쯤에 다시 책상을 조립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크게 바꾸는 것 없이 어느 정도 정착했다. 여기서 '어느 정도'라는 것은, 그 사이에 새 책장도 추가되고 수납공간은 많은 변동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옷장도 안 입는 옷 처리할 때마다 옷 배치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지금은 현 상태보다 최적의 무언가는 현재의 조건으로는 더 찾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서쪽 벽에 닿아 있는 h형 책상은 데스크톱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데스크톱, 액정 타블렛, 닌텐도 스위치, 플레이스테이션4가 이곳에 있다. h형 책상과 세트인 책장이 두 개 더 있었는데 원래 h형 책상에 사용하는, 책장의 일부에 서랍처럼 문이 달려 있는 책장은 그 문 부분이 망가져서 버렸고, 언제부터인가 나머지 책장 중 하나를 책상과 함께 h형으로 쓰고 있었다. 그러다 방치되어 있는 나무판을 다시 조립하면서 책장을 양쪽에 두고 h가 아닌 H형으로 사용하고 있다. H형이 되어버린 책상 반대편에는 나무판을 치워놓은 동안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과제를 해야 할 때 구매했던 좌식 노트북 거치대가 놓여 있어 노트북을 사용할 땐 여전히 바닥 공간을 이용한다. 노트북 거치대 뒷편으로는 옷장과 행거가 배치되어 있다. 남쪽 벽에는 가장 최근에 들여온 책장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 원래는 책장이지만 다용도 수납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적당한 높이에 있는 한 칸은 책상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무드등과 독서대, 그리고 만년필 잉크가 그곳게 구비되어 있어,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무언가 읽고 쓸 때는 그 공간을 이용한다. 그 공간들 사이에 있는 바닥 공간은 요를 깔면 가득 차는 정도의 공간으로, 밤에는 요를 깔고 잠을 자지만 평소에는 그냥 늘어져 있기도 하고, 요가매트를 깔고 운동을 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닌텐도 스위치를 구입한 이래로는 방에서 링피트를 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 왔다.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북쪽 벽에 방치되어 있는 디지털 피아노에 대해서는 약간 고민이 남는다. 이 녀석은 방에 책상이 없는 동안 책상 대용으로도 가끔 쓰였던 녀석이다. 어릴 때 거실에 있던 피아노인데 버린다고 할 때 버리긴 좀 아까운 것 같아 방에 들여 놓았다. 이게 내 방에 있으면서 피아노로서 작동한 건 음악에 대한 정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을 받으러 다니는 동안 조금 건드려 본 게 거의 전부인 것 같다. 오래된 녀석이라 안 눌리는 버튼과 열심히 눌러야 겨우 눌리는 버튼들이 좀 있긴 한데, 피아노로만 쓰려면 그럭저럭 쓸 만하다. 중고 거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처리할 거면 대형 폐기물로 버려야 할 것 같다. 지금은 거의 CD들을 나열해놓는 등의 수납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단은 그대로 두긴 하는데 이 녀석을 계속 가지고 갈 것인지 처분할 것인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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