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4일 화요일 을사년 무인월 갑진일 음력 1월 7일
가끔 옛 지인들의 근황을 전해 듣곤 한다. 오랜만에 누굴 만났다느니 하며 이야기가 들려온다. 한땐 가까웠던 이들도 어느 순간 잊힌 이들도 어딘가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때로는 근황이 궁금한 사람도 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지만 알고 싶으면서도 말을 거는 것조차 하지 못 하는 상대도 있다. 주변 사람들도 그의 근황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니 애초에 그런 걸 물어볼 필요 없이 곁에 있는 친구로 남았다면 좋았겠지만 말이다.
어제는 상성이 맞지 않아 (피하고 안 만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상호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상대도 만나고, 상성이 안 맞는 것까지는 아닌데 성향이 많이 달라서 굳이 서로의 삶에 침범하지 않는 상대도 스쳐 지나가고, 마지막 남은 나의 서울 친구도 마주치고, 오랜만에 다양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했다. 일주일쯤 지난 주말에도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그들은 나와의 우호도나 친밀도 편차가 크지 않았지만 어제 마주친 사람들은 그 정도가 정말 제각각이었다. 그들을 마주하고 나니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굳이 근황을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의 무의식이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전체적인 느낌을 알아버렸다는 착각을 하는 모양이다.
학생 때의 인맥이라거나 하는 오래된 기억 속 존재들은 이미 오래전에 근황이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이다. 어차피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존재라는 걸까. 당장은 곁에 있지 않지만 앞으로도 유의미한 관계를 이어 나가고자 하는 상대에게만 근황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곁에 있지 않아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그런 친구들 같은 존재 말이다.
어떤 이들의 근황은 따로 묻지 않아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무언가를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죽어가는 이에 대해서는 안타깝지만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 본인이 자초한 인간관계의 파멸에 대해서도 최근에 들었고, 그나마 삶을 지탱해 주던 애인이랑도 헤어진 것 같던데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웬만해서는 본인이 어련히 알아서 살아가겠지, 하고 넘기곤 하는데 저 사람만큼은 당장 오늘 생존해 있을지조차 미지수로 느껴진다. 작년 하반기에 청년기지개센터 지원했다고 듣긴 했는데 마주치지는 못한 것 같다. 토익책 수령 명단에 있었으니 그래도 센터도 방문하고 했던 모양이긴 한데, 그 이후 최근 몇 주 사이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것 같단 말이지.
뭐, 그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할 게 아닌 것 같고. 아무튼 난 그렇게 소셜 미디어에서 가볍게 접할 수 있는 근황이 좋다. 교실에 앉아 있다 보면 들려오는 급우들의 이야기 같다고 해야 하나. 서로에게 의식적으로 묻지 않아도 각자 늘어놓는 이야기 속에서 당연한 듯 서로의 일상을 알고 있는 그런 느낌이 좋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마주하면 그것에 대해 따로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그런 게 좋아서 나 또한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는 것 같다. 밤마다 그날의 이야기를, 때로는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한 마디 툭 던지기도 하며, 나의 소식을 전한다. 네트워크 너머 저 어디에 존재할 너의 소식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