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의 흔적

2024년 언저리를 살아가는 녀석을 바라보며

by 단휘

일종의 회고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던 시절, 개발자들이 연말연초에 연간 회고글을 올리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은데 매년 그때그때 내가 사용하는 플랫폼에 회고글을 올리곤 했다. 다양한 플랫폼을 돌아다니다 보니 나의 회고글도 곳곳에 퍼져 있다. 이대로 이곳에 정착한다면 앞으로는 이곳에 쌓이게 되겠지. 확인해 보니 나의 첫 연간회고는 2020년을 마무리하는 글이었던 모양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을 가볍게 훑어본다. 나름 1년의 시간이 응축된 거라 마냥 가볍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나의 삶이라는 게 굵직한 사건 몇 가지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소소한 것들의 연속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어디까지 기록할 것이고 어디까지 생략할 것인지도 애매하고 말이다. 그래도 뭐, 써지는 대로 써보려 한다. 지나온 날들의 기록을 보며 이런 일도 있었지, 하다가 언급할 만한 것들만 모아 봐야지.




병인월의 이야기

병인월은 대체로 계묘년의 연장선이었다. 2월 언저리에 해당하는 시기라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어 SAN치도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고, 그래서 요양 차 바닷마을에 다녀오기도 했던 시기다. 거기서 받아온 게이너 덕분에 51kg 언저리에서 57kg 언저리까지 늘렸다가, 그거 다 먹은 이후로 조금 떨어져서 지금은 54~55kg 언저리를 유지하고 있다. 감기 기운 심할 때는 53kg까지 떨어졌지만 다시 회복되었다. 목표 체중인 60kg까지는 아직 멀었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움직여야지, 라고 하면서도 열심히 먹을 식비를 조달하기 위한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도 올해는 몇 가지 수입 활동을 하긴 했다. 병인월에만 두 가지나 있었다.


설 연휴에는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전 가을 추석 연휴 때 했던 게 처음일 텐데, 명절마다 시간 나면 참여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더라. 사실 이번 추석에도 가능하냐는 연락이 왔었는데, 일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서 불가능하다고, 내년에 시간 되면 함께 하겠다고 답장드렸다. 이번 설에도 특별한 일 없으면 이 단기알바를 하고 싶었지만 놓쳐 버렸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매뉴얼대로의 상호작용을 짧게 하고 넘어가는 일은 다른 일에 비해 꽤나 할 만한 것 같다.


미얀마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의 교재를 제작하는 외주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출판 업계와 유관한 마지막 작업이었다. 기회가 되면 앞으로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데, 포트폴리오라던가 뭘 어떻게 내세워야 할지 잘 모르겠다. Scribus와 Sigil을 다룰 줄 압니다, 라고 해도 보통은 Scribus가 아니라 InDesign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고, 전자책도 굳이 Sigil 안 쓰고 그냥 문서 파일을 PDF로 변환하는 경우도 많단 말이지.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할 줄 아는지 어떻게 어필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역시 InDesign을 배우고 어딘가에 취업해 보는 게 나으려나.


계묘년 가을에 블로그 일일 기록을 시작했는데 120일째 되던 병인월의 어느 날에 그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서서히 안 하다가 그만두기보다는 잘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계묘년 갑자월에 인스타그램 운동 및 일상 계정(이었지만 클라이밍 정기권 끝나면서 거의 그냥 순수 일상 계정이 되어버린)을 만들면서 그곳에도 캐시워크와 함께 하는 하루 마무리를 올리다 보니 내용이 중복되는 느낌도 있긴 했다.


정묘월의 이야기

정묘월에는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 관객리뷰단에 선정되어 연극을 보러 다녔다. 공연을 보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후기를 올렸다. 블로그에 올린 건 개인적으로 올린 거고, 공식적인 활동은 이 계정에서 진행하였다. 원래는 배우 계정이었으나 이제는 그냥 문화 예술 계정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무언가를 보거나 읽거나 하는 것들의 흔적이라거나. 아직은 별다른 내용을 남기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은 극단 활동을 그만둘 때 인사글이라도 남기려고 했는데 정신적 여유가 안 되는 사이에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버렸다.


이 시기에는 청년이음센터 출신 청년 분들이 가끔 불러 주셔서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였는데, 막 친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들 무리에 어색하게 끼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누구네는 비슷한 지역에 살아서 동네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같이 참여한다고 하고, 누구네는 종종 만나서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닌다고 하고… 다들 성장했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센터에서의 내 인간관계는 대체로 동아리 사람들 위주였는데, 동아리 활동이 종료되니 서로 연락도 안 하고 지내서 관계성 자체가 흐지부지된 것 같다.


겨울에 클라이밍 동아리 사람들이랑 마라톤 10km를 뛰었었는데, 그분들과는 또 다른 구성으로 마라톤을 같이 뛰지 않겠냐고 하여 또 10km를 뛰어 보았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겨울에 비해 몇 분 정도 단축되었다. 그날의 마무리는 썩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냥 조금 상성이 안 맞지만 적당히 외면해 가며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분이 나의 불편한 부분을 건드렸고, 그 이후로 그 사람은 점점 나에게 있어서 존재 자체로 부정적인 트리거를 건드리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연초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 상상이나 우연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정서 불안을 야기하곤 한다. 작년에 성북 센터에도 그런 사람이 두어 명 있었지만 그들은 성북구 밖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잘 안 나와서 괜찮았는데, 저 사람은 이곳저곳 다녀서 쉽지 않다.


무진월의 이야기

이쯤까지는 어나더에덴이라는 모바일 게임을 자주 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안 하게 되었다. 메인 퀘스트 나온 데까지 다 따라잡았었는데 이제는 뭐가 얼마나 더 업데이트되었으려나. 콘텐츠가 추가되었다거나 하는 공지 알림을 몇 번 봤던 것 같은데, 다시 하게 된다면 또 한참 따라잡아야 될 것 같다. 크로노 트리거 & 크로노 크로스의 정신적 후속작 격의 게임인데, 나는 이 쪽을 더 먼저 접한 후 크로노 뭐시깽이를 알게 되었다. 어딘가의 G 님의 닉네임이 크로노 트리거의 카에루에게서 따온 거라고 해서 반가웠던 기억도 있고. G 님은 나에게 그렇게 오래된 게임을 어떻게 아냐고 했지만 말이다.


성동구에서 하는 커피 강좌도 듣고 이것저것 하긴 했던 모양인데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월말에는 친할머니 장례 관련으로 조금 정신이 없었던 것 같기는 하다.


기사월의 이야기

청년기지개센터 면담이 있었다. 면담을 하러 생명의전화사회복지관에 간 날에 마침 복지관 1층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작년에 성북 권역 센터 담당하시던 복지사 님을 몇 분 뵈었다. 청년이음센터 활동을 하는 내내 내가 정말 좋아하던 우YB 선생님을 만난 게 특히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몇 분 정도 나를 반겨 주셨다. 그곳의 바자회에서 충동구매한 옷들은 여전히 잘 입고 다니고 있다.


소극장 혜화당 SF연극제가 이 시기였다. 정확히는 정묘월 말부터 기사월 중순까지니 무진월에 넣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만, 내 체감상은 기사월에 가까운 일정이었다. 잘 기억이 안 나는 작품도 있고, 꽤나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남아 있는 작품도 있고... 반쯤 마음이 떠나 있던 나에게 일말의 가능성을 안겨준 〈멋진 신세계〉가 기사월 중순에 SF연극제의 마지막 작품으로 올라갔다. 나를 기대하게 만드는 무언가라... 결국엔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내려갈 한 순간의 가능성이었지만 말이다.


2년에 한 번 짝수년 봄마다 노트북에 설치되어 있는 Ubuntu의 LTS 버전을 높이는 작업을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평소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진행했다. 터미널에서 명령어를 통해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지만, 이 참에 안 쓰는 것들을 날려 버리자며 운영체제 자체를 재설치한다. 그런 작업도 이제 네 번째다. 그런데 지난 세 번을 설치하면서 내가 뭘 설치하고 어떻게 설정했는지 기록을 안 해놔서 매번 기억 저 편을 헤매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문서화를 하며 진행하기로 했다. 그 문서화의 성과는 1년이 더 지난 후에야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기사월 말은 상당히 정신없이 흘러갔다. SF연극제가 끝난 후 또다시 바닷마을로 내려갔다.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를 한 것도 그곳에서였다. 그곳에서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곳에 다 적어내리긴 힘들 것 같다. 관성적으로 흘러가던 것들에 대한 그 어떤... 극단을 그만둘 것을 고민하다가도 결국엔 계속 활동하고 있던 나에게 어떠한 결심을 하게 만든 것도 이 시기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의미로는 한없이 정체되어 있던 나에게 박차고 나갈 원동력을 제공해 준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쯤에 보드게임 글룸헤이븐의 팬메이드 확장, Crimson Scale의 번역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경오월의 이야기

기사월의 연장선으로서 경오월을 시작했다. 그러다 경오월 중순쯤에야 새로운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청년기지개센터 OT도 진행되고, 익숙한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마주하게 되는 어떤 정보들.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이야기와 이제 와서 듣게 되는 어떤 진실들. 역시 인간관계는 알다가도 모르겠고, 정말 복잡한 것뿐이다. 나와 상성이 맞지 않는 이들 중에는 상성이 맞지 않아 거부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성 이슈로 함께 하긴 힘들지만 멀리서나마 응원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경우 적당히 거리감을 유지하며, 만나면 그럭저럭 잘 지낸다. 이SG 님이 그랬고, 김YS 님이 그랬다. 무슨 차이일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상종할 수 없는 존재와 적당히 거리감 두며 만나는 존재를 구분 짓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 의문은 한참이나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경오월 중순인가 말인가 언제쯤 대학생 때의 친구들을 만났는데, 이제 와서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들은 나를 그 시절처럼 대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 혼자 어떻게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 어떤 이질감이 두려웠다. 한창 혼란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기지개센터 팀별 OT 날에도 한 청년 분에게 실수를 한 것 같고, 그래서 그 청년 분이 그것에 대해 신경 쓰여서 지하철에 물건을 두고 내렸다고 하고, 결국 다음날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혜화로 돌아온 그 청년 분이랑 다른 청년 한 분 껴서 셋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경오월 말에는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언제부턴가 매년 구경 가고 있다. 언젠가 나도 저 독립출판 부스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약간은 있다. 부스비가 생각보다 비싸다는 말을 듣긴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대형 출판사 부스보다 독립출판 부스를 더 좋아한다. 아마 ‘책마을’이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다. 대형 출판사 부스를 전체적으로 가볍게 훑은 후 책마을 부스에서 본격적으로 즐긴다. 충동구매를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구매해 온 책은 나의 템포로 1년 내내 조금씩 읽어 나간다. 매년 1년 치 읽을 책을 사가지고 온다고 봐도 무방할지도. 이번 도서전에는 함께 둘러보는 파티원이 있었는데, 난 역시 대학생 때 IT 분야의 행사에 참여할 때 그랬듯이 일행들하고 각자 템포대로 보고 끝나고 만나자며 따로 둘러보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하여간 도서전은 위험한 곳이다. 식사하는데 만 이천 원 쓰는 건 아까워하면서 만 칠천 원짜리 책은 그냥 막 결제해 버리는 나 자신을 보면 그걸 실감하게 된다.


신미월의 이야기

기사월 말에서 비롯된 혼돈이 가라앉지 못한 채 이어지고 있었다. 불안정하게 흘러가던 나의 삶이 언제부턴가 관성적으로 흘러가며 유래없는 평온을 유지했었지. 그리고 그 관성이 깨지며 평온이 깨진 것이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면 언젠가는 깨져야 할 평온이기는 했다. 그렇게 변증법적으로 성장해 가기 위한 ‘반’이었을 뿐이다.


당시 최근에 있던 일부터 10여 년 전의 기억까지 머릿속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휘몰아쳤다. 그러는 와중에 청년기지개센터 프로그램도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성동구 지역 커뮤니티 킹십리에도 발을 들이기 시작하고, 서울청년 마음건강지원사업 상담을 받기 시작하는 등 새롭게 시작되는 것도 많았다. 어떻게 보면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대부분의 것들은 짧게 스쳐 지나가는 것들일 뿐이었지만.


이번 여름은 폭염이 어쩌고 하는 역대급 더위였다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못 견딜 정도의 더위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평소의 여름에는 얇은 외투를 입고 다녔기에 올해 여름에 한 겹 더 벗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더 이상 벗을 게 없었으니 체감 온도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긴 하다. 체질적인 문제로 선크림을 못 바르다 보니 이번 여름에는 피부를 참 많이 태워 먹은 것 같다. 튼튼한 노란색 2단 우양산 하나를 장만해야지 한 게 지난여름의 일인데 아직도 언젠가의 미래로 미루고 있구나. 왜 노란색이냐고 한다면 그건 「아침의 눈」의 영향이라고 해두겠다.


임신월의 이야기

임신월에는 조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려 했던 것 같다. 나와 상성이 맞지 않는 게 분명한 사람이어도 그럭저럭 지내보려는 시도를 하고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늘 그랬듯 상성이 맞지 않는 자와의 유의미한 상호작용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말이다. 상성이 맞지 않는 이들 중 상종할 수 없는 자와 적당히 넘기면서 지낼 수 있는 자의 차이를 이번 겨울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때 시도했던 사람은 완전히 전자에 해당했던 것 같다. 가끔 나는 상성이 안 맞는 걸 느끼는데 상대는 나에 대한 우호도가 높은 기묘한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데, 그런 경우에는 적당히 선을 긋고 거리감을 둔 채 지내면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 상대의 나에 대한 우호도가 높지 않은 경우에는 서로에게 다가갈 생각을 안 하니 서로 멀어질 수밖에 없고, 부정적이었던 기억만이 남은 채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이미지로 점점 강화될 뿐이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의 시도뿐만 아니라 다른 도전도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하고 직장을 다니고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내가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충동적으로 신청한 미래내일 일경험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막연한 두려움에 참여 직전까지도 이걸 참여하는 게 맞나 고민을 많이 했다. 아무 근거 없는 두려움이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결국엔 사전직무교육 기간에 잡혀 있던 청년기지개센터 프로그램들을 모두 취소하고 일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그나마의 용기가 가미된 충동적인 결정에 대해 여기서 또 도망쳐 버리면 영영 도망치기만 할 것 같아서 한 발 내디뎌 보기로 했다. 강의 프로그램은 그렇다 쳐도, 난타 프로그램이랑 요리 프로그램은 빠지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취소한 요리 프로그램의 빈자리를 차지했던 청년 분을 이 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상호작용을 하는 사이가 되어 신기했던 기억도 있다.


충동적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 것도 임신월 말의 일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신청했는데 바로 선정되었다. 몇 번의 도전 끝에 선정되는 사람도 있고 하다던데... 주변 사람들을 보면 한 번에 선정된 게 두 명, 그렇지 않은 게 두 명,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안 물어봤잖아? 근데 그걸 물어볼 정도로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애초에 몇 년째 올라온 글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니.


계유월의 이야기

성남시에서 진행되는 뉴비 여성 클라이머를 위한 강습으로 계유월을 시작했다. 이 또한 임신월에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충동적으로 신청한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정도의 경기권에 대해서는 이동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게 된 것 같다. 서울 동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성남시 정도면 서울의 서쪽 끝자락 가는 시간이랑 얼추 비슷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갈 만한 거리인 것 같더라.


처음으로 핸드폰을 잃어버려 보기도 하고. 카페에 떨어져 있던 걸 다음날 무사히 찾았지만 말이다.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근데 오히려 그날 이후로 센터 청년 분들이랑 전체적으로 편하게 잘 지내게 된 것 같다. 연초에 느꼈던 이질감이 사라진 게 이쯤부터인 것 같다. 그들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 있는 존재가 아닌, “우리”라고 느껴지기 시작한 시기. 분명 작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나에게 “우리”로 인식된 것은 상당히 최근 일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된 데에는 미정이의 영향이 큰 것 같은데. 어떤 의미로든 나에게 꽤나 큰 영향을 준 녀석이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내 친구로 존재하길 기대했던 녀석이기도 하고.


청계천 따라 걷기라던가 운동하는 서울광장 프로그램 같은 데에 참여하기도 하고, 청년의날 행사도 여의도와 광진구에서 두 탕이나 뛰었다. 이수역 근처에서 두더집 커뮤니티에서 만난 분들과 디자인 스터디도 하기 시작하고(이건 결국 네 달쯤 지난 뒤에 그만뒀지만), ... 청년기지개센터 프로그램은 일경험 프로그램과 겹쳐서 불참한 게 많았지만 그 외적으로 개인적인 활동을 많이 참여했던 것 같다. 계유월 중순에는 첫 번째 권역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했다.


갑술월의 이야기

사람들이랑 성수동 팝업스토어 구경도 가고, 보드게임도 하러 가고, 대모산에서 야외 암벽도 타보고... 많은 상호작용이 있었다. 13-18시 출근이라 시간을 활용하기가 썩 좋지 않지만 퇴근 후의 시간을 대체로 사람들과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다 갑술월 말부터 09-14시로 업무 시간이 변경되면서 퇴근 후에 청년기지개센터 우리집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15시쯤부터 문 닫을 때쯤까지 그곳에 있다 보니 익숙한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한 번은 한강명산트레킹 때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센터 내방 공간에서 마주쳤던 분이었다.


확실히 업무 시간이 오전에 쏠려 있으니 나머지 시간을 활용하기가 수월하더라. 보통 센터에 혼자 있을 땐 Trail of Ash 번역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고, 아는 사람이 있으면 상호작용을 하곤 했다. Crimson Scale의 초벌 번역은 3개월 만에 끝났는데, Trail of Ash는 그것보다 양이 적지만 일경험 프로그램 등 다른 일정이 많아 결과적으로 걸린 기간은 조금 더 길었던 것 같다.


을해월의 이야기

살면서 한 번쯤은 유행을 따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렇게 주장하며 피크민 블룸을 시작했다. 나보다 먼저 시작한 친구가 세 명. 그 외에도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나에게 친구 요청을 건 사람들은 그렇다는 것이다. 기존에 만들어 놓았던 Mii 캐릭터를 약간 손봤다. 캐릭터 디자인은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보통은 캐릭터 디자인을 할 때 슈하라 군 베이스의 남캐를 많이 하는데, 이번에는 왠지 다냐 베이스의 여캐로 하게 되었다. 무에서부터 작업한 게 아니라 기존의 Mii 캐릭터를 만들 때 내 모습을 최대한 담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 나 이후로도 두어 명 더 시작했지만 배터리 이슈로 다들 결국엔 떠나가서 결국 남은 친구들은 나쟈와 별이뿐이더라. 이후로 본가 게임도 접하게 되었는데, 나는 블룸보다 본가 쪽이 더 취향이었다.


을해월의 어느 날에는 헌혈 30회를 달성하여 은장 포장증을 받았다. 블러드도너 컬렉션이라는 걸 주던데 이건 뭐지... 하여간 유공패는 이름 및 날짜 각인으로 인해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나중에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 분명 3주 정도 걸린다고 했다가 그 와중에 업체에 무슨 이슈가 있어서 더 지연되었다고 하는데... 갑진년이 끝날 때까지 못 받은 그것은 언제쯤에나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연초에 서울둘레길이 8코스에서 21코스로 개편되면 매주 한 코스씩 돌아보자, 하는 러프한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는데, 막상 개편된 이후에 단 한 코스도 돌지 않고 있다가, 누군가의 스탬프북을 보니 문득 나도 돌고 싶어져서 서울둘레길을 돌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고려하다 21코스부터 역행하기로 하였는데, 역행하는 김에 코스 자체를 역주행해 보았다. 돌면서 스탬프 찍는 김에 손목닥터9988에도 인증을 하고 말이다. 정작 그 스탬프북의 주인은 프로그램 참여하러 가서 찍은 게 전부일 뿐, 둘레길을 돌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을해월 중순의 체홉단편선은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반쯤 마음이 뜬 상태로 적당히 보내는 건 그럭저럭 괜찮았고. 내가 어디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난 생각보다 나의 템포가 중요한 녀석이구나. 내가 편하게 느끼는 속도보다 빨라질 경우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다. 반대로 내가 편하게 느끼는 속도보다 느려질 경우에는 답답함을 느끼고 말이다.


을해월 말에는 약간의 다리 부상이 있었다. 두더집 스터디를 위해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있는 상태에서 낙엽에 미끄러져서 그 무게로 넘어졌는데, 하필 무릎 살짝 아래쪽이 바닥에 누워 있는 나무토막에 부딪힌 것이다. 약간 부어오르고 멍이 들었고, 당일에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서 불편한 통각이 느껴졌는데 며칠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다니며 서울둘레길을 쉬었더니 괜찮아졌다. 다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 사람들이랑 마라톤을 뛰러 갔다는 건 여담. 세 번째 10km 코스였는데, 첫 번째 때 95분, 두 번째 때 82분 나온 것에 이어 이번에는 71분으로 또 기록이 단축되기는 했다. 나름 테이핑도 하고 보호대도 착용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하고 가긴 했다.


을해월 끝자락에 계엄령이 터졌을 때에는 한참 동안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었는데 가족들은 다들 국회로 간다고 나갈 준비를 하더라. 10년 전의 나였다면 같이 나갔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남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당장 우리의 삶에 닿아 있는 영역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노동 운동이나 인권 운동만큼이나, 그것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고,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나아가는 것임을 나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난 그저 침묵한 채 세상 앞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을까.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럴까 봐~”라는 식으로 은근슬쩍 내리깔던 어딘가의 페미니즘 운동가와 아무리 정정해도 정체성을 부정하고 다르게 언급하려고 하는 어딘가의 노동 운동가가 한몫했겠지만, 굳이 공론화하고 싶지는 않으니 길게 말하진 않겠다.


병자월의 이야기

문득, 방 꼬라지가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잘 버릴 수 있는 걸까. 수납공간에는 물건들이 대충 쌓여 있고 바닥에도 쌓여 있고 이것저것... 뭐가 많다. 그렇게 병자월 초에 시작한 방 정리는 병자월 말까지 이어졌다. 정축월에도 약간의 부차적인 정리 작업이 있었지만 말이다. 재활용 쓰레기만 보통 사이즈의 종이가방을 세 번 채울 정도가 나왔고, 일반 쓰레기도 10L짜리를 가득 채웠다. 불필요한 것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많다.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물건이 많다. 어떻게든 더 나은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데 말이다.


작년부터 고민하던 극단 생활은 병자년 중순으로 들어서기 전에 정리했다.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그만두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도 되고 생각이 많아졌지만, 언제까지나 언젠가의 미래로 결정을 미루고 관성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극단을 그만둘 것을 고민하게 된 이래로 나보다 먼저 그만둔 이들이 두어 명 있었는데 썩 좋은 방식으로 그만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나의 어려움을 토로했던, 그나마 마음을 열고 있던 이들은 다들 나갔구나, 싶기도 하고. 하여간 그런 상황이라 내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지어야 할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단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한 적당한 시기에 그럭저럭 무난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의 일은... 차차 생각해 봐야지.


서울둘레길은 병자월 중순쯤 완주했다. 완주 인증서와 배지, 리본을 주더라. 마음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완주 인증하러 와서 기지개에서 왔다고 하면 기념품 더 챙겨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정작 인증하러 갔을 땐 말을 못 꺼냈다. 이런 거 말 꺼내기란 쉽지 않구나. 더군다나 오전에 둘레길을 돌다 보니 하필 점심시간 직전에 서울창포원에 도착하여 쉬셔야 할 때 추가 업무를 하는 번거로운 상황을 야기한 것 같아서 더 말이 안 나왔던 것 같다.


1년 전 청년이음센터의 송년회는 초대받지 못해 못 갔었는데 이번에는 갈 수 있어서 좋았다. 분명 청년이음센터 처음 들어갈 때 면담하면서는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을 거라고 했는데,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문자로는 전달이 안 되고 카카오톡으로만 오는 공지가 있던 모양이다. 연락을 못 받았다고 따로 문의해 보니 이미 카카오톡으로 다 안내된 사항이며 송년회 참여는 마감되어 추가 모집이 불가하다고 답변을 받았다. 그랬던 청년이음센터와는 달리 청년기지개센터는 공지를 잘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동행팀 챌린지 참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동행팀 송년회라고 하길래 팀별 송년회를 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팀은 송년회가 없던 모양이다. 마중팀 청년 분이 아쉬워하시던데... 이런 부분은 이후 사업에서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팀 구분이 사라질 예정이라고 하니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정축월의 이야기

병자월 말에 Trail of Ashes 초벌 번역을 마쳤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에 다른 번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번역팀 없이 혼자 진행한다. 원래는 전체 프로젝트 팀에게 “제가 이 언어 번역을 하고자 합니다” 하고 이슈 생성을 한 뒤에 승인 나면 시작하는 게 일반적인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번역 방식이지만, 가이드라인이 잘 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라, 그냥 저질러 버렸다. 보니까 번역이 진행된 언어가 딱 하나 있는데, 완성되지 않은 채로 1년 전에 머물러 있더라. 저렇게 번역되다 만 느낌이 싫어서 로컬에 조금씩 커밋해 두고 한 번에 PR을 날리려고 한다. merge 안 해주면 비공식 번역으로 한국인 사용자들 보라고 두지, 뭐. 정축월이 끝나는 시점에 살펴보니 파일 개수를 기준으로 절반 지점은 넘었으니 이 정도 속도로 한 달 정도 마저 하면 끝날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정축월 들어서 친구들과 원온원으로 만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사람들과 다 같이 모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런 시간도 난 꽤나 좋아한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꽤나 유쾌한 일이다. 시답잖은 소리를 내뱉든 진지한 이야기를 하든, 아니면 아무 말 없이 그저 함께 존재하고만 있더라도. 이런 친구들이 두세 명 정도 있는 것만으로도 삶이 참 괜찮구나, 싶기도 하고.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는 사이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정축월 중순에는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심각한 수준의 감기로 며칠 동안 앓아누웠다. 그렇게 일상생활이 안 되는 감기는 처음이었다. 뭐라도 해봐야지 했는데 두통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냥 누워만 있었다. 사흘 동안 식사도 한 끼 밖에 못 먹었던 것 같다.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는 핸드폰도 언제 꺼졌는지 모르게 꺼져 있었다. 누구는 감기 걸렸을 때 2주가 넘도록 기침이 안 떨어졌다길래 좀 걱정했는데 그래도 사흘 정도 뻗어 있으니까 조금씩 살 만해 지더라. 다만, 그렇게 양호한 상태로 감기 기운 자체는 오래가긴 했다.


정축월 말에는 처음으로 내 주도로 센터 청년들과 함께하는 모임을 가졌다. 파티원 모집에 대해서는 외주를 맡겼지만. 청년기지개센터 행사에서 받은 치킨 기프티콘을 사용하고 보드게임을 하다 왔다. 서로에게 무해한 사람들로다가 적당히 모았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행사에서 같이 다녔던 사람들이더라. 처음부터 같이 다니려고 했던 건 아니고 둘씩 왔다가 합류했던 거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았다. 나에게 무해한 존재일 수 없어서 초대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내가 상대에게 무해한 존재일 자신이 없어서 초대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부르려고 했는데 선약이 있어서 못 온 사람도 있고, 너무 늦게 떠올라서 패스한 사람도 있고, ... 사람 모으는 것도 참 미묘한 일인 것 같다.




새삼, 저게 1년도 안 지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은 매년 하게 되는 것 같다. 사소한 일이라 생략한 이야기와 오프더레코드라 작성하지 못한 이야기까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흔적들을 눈으로는 훑어봤다. 생각보다 오프더레코드의 영역이 많더라. 그런데 오프더레코드의 영역을 생략하고 봐도 이것저것 많이 하긴 했다. 다만 그것들이 대체로 돈 되는 일과는 거리가 있어서 그렇지. 사실 돈 되는 일도 하고는 싶은데 쉽지 않다. 이반이 1인출판 하던 때야 교정교열 외주 작업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내세울 만한 경력도, 타고 흘러갈 인맥도,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대부분 본인이 다니던 출판사에서 외주를 받곤 한다는데, 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하여간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고 을사년. 뱜이다, 뱜. 올해는 공부를 좀 하고 싶은데... 내 환경과 이것저것이 허락해 줬으면 좋겠다. 일단 기술교육원 합격하면 거기나 다니며 생각해 봐야지. 듣자 하니 올해는 중부 교육원과 남부 교육원이 무슨 통합 때문에 정신이 없을 거라고 하던데. 어찌 되었건 이것저것 공부하고 여러 가지를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유의미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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